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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8/05/24 06:55:54 |
Name | Erzenico |
Subject | 커피야말로 데이터 사이언스가 아닐까? |
저의 커피 생활은 대략 2008년 정도부터 시작했으니 그리 길지도 그리 짧지도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기간을 돈이 없으니 드립을 먹든지 얻어먹든지 하는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만 전공의 기간 동안에는 의국에 마련된 캡슐머신(2년차) 전자동 머신(3년차 이후)을 체험할 기회도 있었고 무엇보다 약 한 달 보름 전까지 반자동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내린 진한 에스프레소를 즐겼던 생활은 언제 또 다시 돌아올 지 기약이 없는 즐거운 나날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의 지론은 커피든 차든 즐겁게 마시고 여유있는 시간을 잠시라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지만 '맛있는 커피'를 내리는 방법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맛있는 커피란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는 어렵지만, 아로마/테이스트/애프터 테이스트가 조화를 이루면서 원산지에 따른 개성과 로스터가 그 개성을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의도된 맛을 정확히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그 과정이 witchcraft처럼 한 번에 뙇! 하고 나타날 수는 없기 때문에 많은 로스터들은 생두를 소량으로 로스팅해보면서 테이스팅 노트를 작성하고 그 노트를 기반으로 새로운 원두나 기존 생산지의 new crop에 적용하여 시행착오를 줄이고는 합니다. 이것이 로스팅 단계에서의 데이터 사이언스...일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추출 단계에서는 어떨까. 에스프레소 추출은 마치 공식처럼 88-96℃, 9 bar, 25-35sec이 가장 좋은 에스프레소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오랜 기간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찾아낸 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에스프레소의 맛이라는 것도 기준이 조금씩 바뀔 수 있고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연구하는 바리스타들이 종종 두각을 나타내면서 6 bar 안팎의 저기압 추출이나 80도 초반대의 저온 추출 등 다양한 시도들을 적용하여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는 합니다. 이 과정 역시 지난한 반복 추출과 테이스팅을 통해 이루어지는 작업지요. 푸어오버는 물을 끼얹는 방법도 제각각이고 드리퍼도 다양한 등 감성적인 접근이 아무래도 우선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 '몇 그램의 원두로 몇 밀리리터의 커피를 추출할 것인가'의 비율과 '물은 얼마나 첨가, 혹은 안할 것인가?'하는 후첨의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예전 이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 찾아본 결과, 재미있게도 푸어오버의 경우는 한 사람이 다양한 비율을 시도한 자료보다는 여러 사람이 자신의 비율을 공유한 자료가 더 많더군요. 그렇다 하더라도 그 역시 리뷰 자료로서 가치가 있는 나름의 또 데이터 사이언스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맛의 특징 등이 주관적이라는 한계를 제외하면 말입니다. 물론 커피가 정답을 추구하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이걸 데이터 사이언스라고 할 수 있느냐하는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고 테이스팅 노트를 잘 공유하지 않는다는 점 역시 사이언스와는 거리가 있는 특징이긴 하지만 세상 일 갖다붙이려면 어디라도 갖다붙이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상 에스프레소 머신 팔고 병원 들어와서 드립이나 하려니 왠지 처량해서 자신을 달래는 물건으로 커피 저울을 산 Erzenico였습니다.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8-06-04 08:02)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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