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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8/01/08 20:16:40
Name   quip
Subject   내 것이 아닌 것에 낄낄대며 울기. 메도루마 슌, 물방울
나는 광주와 어떤 연고도 없다. 그리고 당신이 그러하듯 나는 80년 광주에 많은 것을 빚졌다. 나는 광주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역사적 비극에 대해서 어느 정도, 텍스트적인 차원에서 알고 있다. 광주에 빚진 한국인이니까. 나는 언젠가 최은이 쓴 광주에 대한 소설을, 읽었다. ‘읽었다’ 앞에 어떤 부사를 넣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비워두었다. 잘, 도 적절하지 않고 재밌게, 도 적절하지 않고, 완전히, 도 적절하지 않다. 그저 최은의 소설을, 읽었다. 어떻게든.

나는 오키나와에 대해서 모른다. 조용한 휴양지라는 것과 오키나와의 전통주 아와모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편이지만, 오키나와의 나머지에 대해서는 모른다. 중세에는 류쿠국이라는 독립 국가였다가 일본에 지배당하고, 2차대전 시기에 일본 본토의 총알받이 노릇을 하며 피눈물을 흘렸고, 여전히 일본 본토로부터 미묘한 차별을 받고 있다, 는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다. 그러니까, 나는 모른다. 피지배의 역사라거나, 피눈물이라거나, 미묘한 차별이라는 건 아는 사람들도 안다고 할 수 없는 문제이며 나는 심지어 아는 사람도 아니다. 나는 모르고, 그렇기에 또 모른다.

표제작인 첫 소설 '물방울'은 무난하게 시작한다. 어느 늙은 오키나와 농부의 다리가 호박처럼 부풀어오르고, 발가락 끝으로부터 고름이 흘러나온다. 달큰한 풀 향이 나는 맹물이다. 농부의 의식은 멀쩡하지만, 손끝 하나 혀끝 하나 움직일 수 없다. 밤마다 모르는 사람들이 벽에서 튀어나와 농부의 발가락 끝에서 물을 빨아먹고, 농부는 그때마다 사정한다. 환상 동화처럼 시작하는 소설은 천천히 과거들을 불러온다. 전쟁에서 적당히 비열하게, 적당히 인간적으로 살아남은 기억. 전쟁이 끝나고 전쟁의 참상을 ‘감동적으로 각색하여’ 강연하러 다닌 기억. 전쟁을 잊으려 노력한 기억. 죽음 직전의 친구에게 배당된 물을 내가 마셔버린 기억. 지독한 갈증에 시달리던 부상병이 얼굴에 튄 똥물을 핥아먹는 걸 본 기억. 벽에서 나온 사람들은 그 시절의 동료 병사들이었다. 혼자 도망가는 건 나쁜 짓이라고 생각하며 고민하다가 결국은 혼자 도망치는 길에 수류탄으로 미군과 자폭하는 동료를 보며 '아 저새끼들 때문에 나까지 잡히면 어떻게 하지'하고 고민했던 기억. 얼굴 정도를 알던 고향 처자가 붙잡히기 전에 자폭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 그래서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던 기억. 아, 나는 그렇게 전쟁을 잊고 과거를 마음대로 떠들어댄 벌을 받는구나, 하는 반성. 그들을 잊지 않을 것이고, 술을 끊어야겠다는 결심.

이 와중에 남자의 발 끝에서 나온 물은 기적을 보여준다. 대머리에 바르니 머리가 돋아나고, 마시니 '죽은 참새 대가리처럼 쳐져 있던 거시기가 힘찬 비둘기 대가리처럼' 솟아난다. 이 사실을 알아낸 농부의 친척은 이 물을 몰래 팔아먹고, 부작용이 나타나고 한바탕 소동극이 일어난다. 한바탕 소동극이 끝나고, 남자는 병이 낫는다. 병이 나은 남자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모두의 예상처럼 뻔하다. 그는 친척과 아내와 함께 아와모리를 취할 때 까지 마셔댄다. 소설이 끝나고, 그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동안 반성한 대로, 옛 전우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게 될까? 모를 일이다.

많은 고전적인 '전쟁 예술'과 비슷한 느낌의 소설이다. 딱히 오키나와적일 것도 없고, 딱히 특별할 것도 없다. 동화에서 시작하며 과거와 현재가 대비되는 방식이나, '적당히 비열하고 적당히 인간적으로, 그래도 우리는 살아간다'는 메세지나, 무난하고 간결한 그냥 좋은 소설이다. 그래, 오케이. 꽤나 뻔한 이 소설의 읽는 맛을 살려주는 건, 소설의 전개 방식이다. 동화에서 환상에서 과거에서 현실로 한걸음 한걸음씩 조심스럽고 굳건한 발걸음을 내딛는 이 소설은 상당한 긴장을 유지한다.

두 번째 소설 '바람 소리' 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소설은 오키나와 구석 동네, 바다에 맞댄 강가의 절벽에 있는 한 동굴로부터 시작한다. 예로부터 풍장터로 사용되던 동굴이었지만, 이제는 아무도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동굴로 향하는 계단은 전쟁 중에 포격으로 사라져버렸고, 마지막으로 놓여진 시체의 두개골이 동굴 입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강바람이 불어오면 해골은 구슬픈 노래를 부른다. 사람들은 해골을 신성시하고, 또 불경스럽게 여긴다.

어린 시절 전쟁을 겪은 농부가 있다. 어린 시절, 포격을 피해 가족과 함께 산속에 살며 아버지와 함께 가끔 산 아래로 내려가 먹을 것을 구하던 그는 어느날 가미가제 특공대의 시체를 본다. 아버지와 그는 그 시체를 들쳐엎고 풍장터로 옮긴다. 게와 지렁이가 시체를 깨끗히 먹어치우는 그 곳으로. 거기서 그는 특공대원의 소유물이었던 반짝이는 검은 것을 보고 훔친다. 그가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만년필이었으니.

농부의 아들이 있다. 동네 꼬마들 사이에서 2인자격인 그 친구는 어느 날 담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렇다면 내가 그 저주받은 곳에 가지. 증거를 남기고 올 거야'라고 하며 틸라피아 한 마리가 담긴 물병을 가지고 절벽을 타고 동굴로 올라간다. 1인자격인 친구에게 '다음 주에 네가 저 물병을 가져와 봐'라고 말하고 나서 말이다.

농부와 동년배인 마을 촌로가 있다. 만년필도 있고 학교도 다닌, 옛날부터 동네 유지였던 그는 마을의 관광 수입을 늘리고 싶어하며, 노래하는 두개골의 사연을 방송국에 팔고자 한다.

늙은 기자가 있다. 가미가제 특공대원이었던 그는 항공 훈련소에서 신비스러운 동료를 만난다. 오키나와 출격 하루 전날, 그는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다. 친구는 그를 절벽으로 데려가서, 돌연 절벽 아래로 밀어버린다. 그는 큰 부상을 입고 출격하지 못하게 되며, 그대로 전쟁은 끝난다. 후에 그는 전쟁 다큐멘터리 전문 기자가 된다. 그것이 그의 삶을 속죄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제 아무도 전쟁에 관심이 없다. 그는 은퇴를 생각한다. 마지막 다큐멘터리를 찍고자, 그는 특공대원의 노래하는 해골이 있다는 오키나와로 향한다.

하지만 해골은 더 이상 노래하지 않는다. 틸라피아가 담긴 병 때문에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더 이상 해골이 공명하지 않게 된 걸까? 아니면 함부로 동굴에 침입한 것에 대한 저주일까? 첫번째 소설과 마찬가지로 우당탕탕 한바탕 소동극이 펼쳐지고, 해골은 동굴 아래로 떨어져 산산조각나고, 풍장터의 게들에게 잡아먹혔으리라 생각했던 틸라피아는 뿌옇게 녹조가 낀 물속에서, 등지느러미가 뜯긴 채로, 그래도 살아 있다. 농부는 때로 옛 이야기를 하며 여동생을 기억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여동생은 언급되지도 존재하지도 않는다. 만년필에는 불분명한 이니셜이 적혀 있지만 누구 것인지는 모른다. 해골은 정말로 기자의 훈련소 동기였을까? 기자는 오직 해골의 깨진 조각을 보았을 뿐이다. 특공대원의 시체는 관자놀이의 작은 총알 자국 말고는 깨끗하다. 자살일까? 모른다. 그리고 틸라피아는 살아 있다. 뿌옇게 녹조가 낀 병 속에서, 등지느러미가 뜯긴 채로. 그래도.

오키나와 촌구석의 관광 수입에 대한 강박. 평생 농사를 짓던 농부와 대대로 부자였던 마을의 촌로. 풍장. 가미가제 특공대. 전쟁 가해자이자 전쟁 피해자인 전직 특공대원의 속죄. 온갖 미신적인 요소들. 틸라피아. 그 어느 것도 내게 친숙하지 않고, 내게 친숙하지 않은 것들은 내가 모르는 '오키나와'라는 어떤 맥락을 이룬다.

물론 나는 역사적 비극들과, 그래도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읽었다. 텍스트로서의 전쟁은 삶의 전쟁만큼이나 친숙하다. 하지만 이야기에 등장하는 수 많은 소재들은 내 것이 아니며 내게 익숙한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소설을 완전하게 읽어낼 수 없다. 그럼에도 소동극에 낄낄거리며 결국 울어버리고 만다. 좋은 소설이다. 이 작은 요소들이 조금 더 디테일했다면 더 강한 소설이 되었을까? 강하고 촌스러운 소설이 되었겠지.


세 번째 소설부터 본격적으로 오키나와적이다. 제목부터 '오키나와 북 리뷰'다.

형식부터 친숙하게 괴상하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일련의 저작들에 대한 짧은 서평들로만 진행된다. 두 명의 저자의 저작들이 중심이다.

한 저자는, 평생을 오키나와에서 살았다. 어린 시절부터 신기를 느낀 그는 이빨 치료를 받고부터 본격적인 신내림을 받는다. 그는 그의 이빨이, 천왕성으로부터의 신호를 받는 수신기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렇게 오키나와의 전통 무당, 유타가 된다. 그는 천왕성과 오키나와의 연관성에 대한 사상을 설파하며, 여러 책을 낸다. 그의 궁극적인 주장은 '천왕성과의 동맹을 통한 오키나와 독립'이다.

다른 저자는, 오키나와에서 태어나 일본 본토 곳곳을 돌며 일본 근현대사의 격랑을 겪는다. 오사카에서 오키나와 재향 노동자회를 조직하기도 하고, 도쿄에서 공산당 활동을 하기도 하고, 외국에서 무역업에 종사하기도 한다. 그의 주제는 '오키나와의 본토화'다. 오키나와는 오키나와가 아닌, 일본이고, 일본이어야 한다. 그의 주장은 '황태자를 오키나와의 사위로'라는 구호로 축약된다. 황태자비를 오키나와인으로 뽑아, 오키나와가 차별받는 일본의 부분이 아닌 진정한 일본의 일부라는 것을 증명하자는 것이다.

자, 당신은 오키나와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나는 그저 오키나와가 '원래 독립국이었으며, 일본 본토로부터 차별을 받는다'는 정도를 알고 있다. 딱 그 수준의 맥락에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소설은 소설 내적으로 오키나와의 역사성이나, 오키나와가 받은 차별에 대해 구구절절하게 서술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전제고, 이 소설은 그 전제로 소설의 이야기를 펼쳐간다.

전통주의적 샤먼은 오키나와, 나아가 일본, 나아가 전 세계의 좌파들과 연대하여 '사랑과 평화의 오키나와 독립국'을 건설하자고 주장한다. 사실 평화의 고대 문명 아틀란티스는 오키나와 앞바다에 있었다는 주장이 등장하고, 미군 기지에 불시착한 천왕성 외계인이 등장한다. 종횡무진 일본을 떠돌며 노동자회와 공산당 활동을 하던 사상가는 몇몇 정신나간 오키나와 소수 극우파-로 소설에 묘사되는-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샤면과 대립각을 이룬다. 역시 또 한바탕 소동극이 일어나고, 천왕성 외계인 해방 및 오키나와 평화를 위한 미군기지 반대 투쟁이 일어나며, 사람이 죽어나간다. 우당탕탕. 오키나와와 미군기지와 천왕성과 천황이 등장하는, 작지 않은 스케일의 정신 나간 소동극이다. 읽는 내내 미친 듯이 웃었고, 그리고 꽤 울었다. 통합될 수도 없고 분리될 수도 없는 주변인의 이야기는 언제나 슬픈 이야기니까.

오키나와인이 아닌 나는 이 소설의 맥락을 얼마나 읽을 수 있을까. 본토와 붕 떠 있는, 현재는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독립할 수 없는, 그러나 기나긴 독립된 역사를 지닌 이등 시민의 정체성. 망상적 독립과 망상적 통합. 이런 '인류적'인 감각들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도루마 슌은 굉장히 불리한 투쟁을 하고 있다. 그는 오키나와의 소재를 가지고 인류적 감각을 쓰고 있으니까. 이를테면 이러한 인류적 감각의 전제가 되는 '기나긴 독립된 역사를 지닌 이등 시민'이라는 개념적 전제가 삭제되면, 소설의 맥락이 삭제된다. 이걸 소설 안에 완전히 우겨넣자면, 거기부터는 촌스러운 정치가 되지 문학이 되지 않는다.

문학과 정치는 여러가지로 다르지만, 한 가지를 공유한다. '어떻게 나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공유할 것인가' 문학이 불리하다. 정치는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 촌스러워도 좋고, 폭력적이어도 좋다. 문학은 유려해야 한다. 이를테면 어떤 작가가 오키나와 운동을 위한 <글>을 쓴다면, 좀 더 구슬프고 촌스럽고 미주알고주알 해도 좋았을 것이다(참고로 마도루마 슌은 물론 오키나와 정치운동과 깊게 관여되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것은 <소설>이고, 유려해야 한다.

내가 오키나와에 대해 정말 전혀 모른다면-이를테면 나는 마다가스카르에 대해 전혀 아무 것도 모른다-이 소설을 어떤 식으로 읽었을까. 물론 소설은 오키나와에 대한 어느 정도의 '편린들'을 흘린다. 그런데, 그걸로 충분한가. 물론 그걸로 ‘좋은 소설’을 읽기에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더 좋은 소설이다. 그런데 더 좋게 읽히기에 한계가 있다. 내가 모르는, 그러니까 오키나와적인 것으로 가득하니까. 동시에 오키나와적이라 좋은 소설일 텐데. 아, 모르겠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을 인생 소설로 꼽는다. 나는 체코의 사회주의 혁명에 대해 거의 모른다. 그리고 이건 쿤데라를 읽는 데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나는 당신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와 혁명과 역사와 농담과 비극에 대하여 대충 관념적으로 알고 있으니까. 광주만큼 잘 알지 못하지만, 오키나와보다 잘 안다.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를 체코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농담은 노벨상을 받기에 지나치게 똑똑한 작품이기에 노벨상 따위를 받지 못했을 뿐이다. 쿤데라가 오키나와에 태어났다면 마도루마 슌보다 좋은 소설을 썼을까?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마도루마 슌이 체코에서 태어났다면? ‘오키나와 북 리뷰’ 같은 소설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aiko가 오키나와 출신이었다면? 내가 오늘 마도루마 슌의 다른 소설 두 권을 주문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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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도 이렇게 글 잘 쓰고싶다... 이것은 진정성에서 우러나온 명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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