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6/08/11 06:02:35
Name   이젠늙었어
Subject   미국과 캐나다에서의 술사기
저는 캐나다 알버타주에 이사와서 살고 있습니다.

집 근처에 큰 몰이 있습니다. 여기엔 어마어마한 크기의 월마트도 있고 하이테크 전자제품 전문 매장인 베스트바이도 있고 또 여자분들이 좋아한다는 위너스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자잘한 옷가게, 신발가게, 치과, 이미용원, 스파, 피트니스 그리고 여러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이 몰려있는 푸드코트가 있습니다. 없는게 없다는 월마트를 비롯하여 이 큰 몰에서 절대 구할 수 없는게 있습니다. 뭐냐 하면 술입니다. 맥주 한 캔 살 수 없습니다. 근처에 고등학교가 있어선지 술만 파는 리커스토어조차도 없습니다.

한국에선 모든 소매 잡화점에서 주류를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캐나다 알버타주에서는 리커스토어에 가야 겨우 술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도 밤 10시 무렵엔 문을 닫아서 한참 흥이 올랐을 밤에 술을 구할 수 없게 됩니다. 주당에겐 좀 힘든 나라입니다.

얼마 전에 캐나다 BC 주와 미국 중서부를 여행했습니다. 밴쿠버섬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밴쿠버로 돌아와 국경을 넘었더니 바로 미국 워싱턴 주였습니다. 장을 보러 월마트에 갔는데요, 오오!!! 미국 월마트에선 갖가지 술을 팔고 있었습니다. 한 열에 쫙 도열해 있는 맥주들과 와인들 속에서 참 행복하더만요. 월마트 뿐만 아니라 주유소를 겸하고 있는 컴비니언스 스토어에서도 각종 술이 즐비하니 꼭 한국에 온 것 마냥 설래었습니다.

월마트나 세이프웨이 같은 쇼핑몰에서 그득그득 들어찬 술 복도에서 행복해하며 그날 마실 맥주를 고르곤 했습니다. 왠지 술만 파는 휑한 리커스토어 들어갈 땐 제 자신이 꼭 술꾼 같고 그랬는데요, 미국에선 가족을 위한 쇼핑을 온 김에 같이 마실 맥주나 와인도 한번 사볼까나... 이런 기분이 드는 거죠.

유타주의 모압이라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이전과 다를 바 없이 맥주를 사서 아내와 홀짝였습니다. 그런데 뭔가 묘했어요. 배는 점점 불러오는데 도대체 취하질 않아요. 마시고 있던 스텔라 아루뚜아 레이블을 유심히 봤습니다. 도수가 3.2도에 불과했습니다. 알고 보니 유타는 일반 그로서리에서 파는 맥주는 3.2도를 넘을 수 없고 정상적인 맥주나 와인, 스피릿 류는 전문 리커샾에서만 파는 거였습니다. 거기다 가격도 더럽게 비싸더군요. 유타주는 몰몬교의 본산인데요, 아마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이런 주법이 생긴 것 같았습니다.

와이오밍주는 유타주보다 더 엄격한 것 같았습니다. 월마트에서 술종류를 못찾아서 직원에게 문의하니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오, 맨. 넌 리커스토어로 가야 할거야.' 하더군요. 과연 미국은 50개의 나라가 모여 연방을 이룬 것 같습니다. 한 주의 상식이 다른 곳에서 통용되지 않습니다.

아, 가장 큰 문화충격은요, 캘리포니아주에서 술을 사려고 했더니 젊은 히스패닉계 여성 캐셔가 진지한 표정으로 제 신분증을 요구한 겁니다. 도대체 왜??? 물어보니 제 나이를 확인하겠답니다. 으하하하하하하하… 아내와 배꼽잡고 한참 웃었는데요 은근히 기분이 좋더라고요. 저 아직 죽어버리기엔 이른가봐요.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6-08-22 13:39)
* 관리사유 : 추천 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7
  • ㅋㅋㅋㅋ
  • 마지막 문단이 핵심이군요, 압니다.
  • 마지막 문장 극공감합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10 게임WOW(World Of Warcraft) 해야만 했던 이야기 76 문학소녀 18/10/02 8863 76
204 꿀팁/강좌우리의 뇌에는 청소부가 있어요. 66 눈부심 16/05/12 8872 11
18 정치/사회[나기홍석1탄: 여시사태]호명과 소명, call과 calling 9 난커피가더좋아 15/06/10 8877 0
51 일상/생각생명의 서(書) - 병원 임상 실습을 돌면서 느낀 점 31 삼공파일 15/07/24 8881 0
208 경제한국에서 구조조정은 왜 실패하나?-STX법정관리에 부쳐(상) 26 난커피가더좋아 16/05/25 8888 8
137 문화/예술오이디푸스와 페르스발 14 Moira 16/01/06 8891 5
447 IT/컴퓨터탭 내빙(Tabnabbing) 보안 공격 10 Toby 17/06/07 8896 12
337 게임게임 '헌티드 맨션' 만든 얘기 28 Toby 17/01/04 8899 28
651 문화/예술[강철의 연금술사] 소년만화가 육체를 바라보는 관점(스압) 4 자일리톨 18/06/23 8916 18
699 창작고백합니다 44 파란아게하 18/09/09 8919 96
281 꿀팁/강좌셀카기술학 개론 (1) 19 elanor 16/10/12 8925 7
147 꿀팁/강좌로버트 새폴스키 - 스트레스와 인간 16 눈부심 16/01/31 8927 10
28 과학쥬라기월드흥행에 적어보는 공룡이야기(2)-공룡은 파충류가 아니다 20 개평3냥 15/06/17 8929 0
206 정치/사회. 58 리틀미 16/05/20 8936 16
793 의료/건강마약은 무엇을 가져가는가? 코카인, 히로뽕 6 월화수목김사왈아 19/04/15 8940 18
125 문학인문학, 그리고 라캉 다시 읽기 85 뤼야 15/12/04 8947 7
498 문화/예술브로드웨이와 인종주의 - 흑인 배우가 앙졸라스를 할 때 16 코리몬테아스 17/08/22 8960 8
486 일상/생각여친 이야기 28 알료사 17/08/03 9000 28
410 꿀팁/강좌원룸 구할 때 고려해야 할 것 (#원룸 #부동산 #월세 #자취) 5 이슬먹고살죠 17/04/12 9023 7
594 체육/스포츠축구에서 세트피스 공격은 얼마나 효과적일까 11 기아트윈스 18/02/18 9033 13
248 일상/생각미국과 캐나다에서의 술사기 17 이젠늙었어 16/08/11 9034 7
485 과학알쓸신잡과 미토콘드리아 7 모모스 17/08/02 9044 10
76 문화/예술goodbye. printmaking 18 1일3똥 15/09/24 9046 4
748 일상/생각한국의 주류 안의 남자가 된다는 것 37 멜로 18/12/21 9046 56
141 꿀팁/강좌만장일치의 역설 30 눈부심 16/01/11 9066 11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