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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6/07/27 23:08:12 |
Name | 데스꽁치 |
Subject | 혐오를 정당화하는 자들에 대한 혐오감 |
학부 시절, 수업 중에 한 선생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지하철에서 화장을 하거나 고치는 여자들을 보면 화가 난다." 말인즉 이렇습니다. 화장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포장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런데 내가 보는 앞에서 그 화장을 한다는 것은 곧 내가 그 "다른 사람"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내가 보는 앞에서 화장을 고치는 것은 나를 "다른 사람", 다시 말해 '잘 보여야' 할 하나의 주체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저런 대우를 받는 것이 불쾌하다. 또 한번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벽면이 전부 유리로 되어 있는 카페에서 공부를 하거나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고, 그 앞을 지나다닐 때마다 썩 기분이 좋지 않다." 이유는 비슷합니다. "분명히 유리 너머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예 그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나는 저 앞을 지나다닐 때마다 내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저들이 나를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라는 흐름이지요. 어떻게 느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당시 저 이야기가 굉장히 '꼰대 같다'고 생각했고, 타인에 대한 혐오를 여태 주워섬긴 학문을 통해 정당화하려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래서, 뭐 하는 양반이었냐고요? 데리다와 페미니즘 등을 주로 이야기하던 미학과 강사였고, 여성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리 많지는 않지만 몇몇 사람들을 만났고, 여러 글을 읽고, 지금이야 쥐 죽은 듯 지내지만 여기저기 모자란 소리도 더러 하고 다녔습니다. 나경원을 두고 자위녀 운운하며 낄낄거리던 양반들에게 아무리 그래도 그건 경우가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가 수꼴 취급을 받기도 했고, 성소수자 관련 논쟁에서는 호모포비아 겸 '후로게이'가 되기도 했고, 제노포비아 관련된 게시물에서는 별 희한한 욕도 다 얻어먹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 양반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걔들은 욕 먹고 조리돌림당해도 싸. 왜냐 하면..." 저 때 이후로, 자신의 혐오감을 그럴싸한 단어들로 포장하려는 부류에 굉장한 혐오감을 느끼게 되더군요. 조금 뜬금없는 소리입니다만 솔직히 말해 저는 일베 관련 이슈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저들의 문제점이 워낙에 뚜렷하고, 이미 사회 구성원 거의 대부분이 그들을 배척하고 있으며, 저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생산하는 혐오발언과 패악질에 논리적 정당화를 시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거 "언론을 믿지 말고 일베를 믿어."운운하던 양반들이 지금은 정게할배 운운하며 내부에서도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습니다. 아마 그 정당화라는 것이 자신들을 양지로 끌어올려 줄 것이라는 믿음 자체가 박살났고, 계속 음지에서 혐오를 생산하는 쪽을 선호하게 되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작년부터 메르스 갤러리를 위시하여 갑작스레 나타난 남성 혐오 문제는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저들이 일베와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부분은 그 정당화에 있거든요. 저들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미러링'이라는 근본 없는 개념으로 시작하여 혐오발언을 쏟아냈고, 그것을 젠더권력의 전복 시도로 간주한 진보적 인사들이 그 논리를 옹호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혐오의 생산자와 옹호자가 상호작용한 끝에 그네들의 혐오는 양지로 진출하는 데 성공한 듯싶습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지만 이제 진보적 매체에서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남성혐오의 생산자들을 옹호하고 있고, "혐오는 강자의 전유물이기에 '소수자'의 혐오는 혐오가 아니다." 같은 논리를 생산하며 메갈리아와 워마드를 여성운동 연대의 장 정도로 묘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적어도 저는 '일베 때는 왜 침묵하고 이제 와서 난리냐?'는 물음에는 할 말이 있는 셈입니다. 그 친구들은 적어도 자기네 혐오가 정당하다고 말하지는 않았고, 사회가 그것을 용납하지도 않았으니 말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애초에 이 사회에 논리라는 것이 하나의 룰로 자리잡은 이유는 어떤 사안을 폭력이나 악다구니를 쓰지 않고 '원만하게' 해결하자는 최소한의 합의가 아닌가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소위 말하는 '무력투쟁'에 대한 논리화를 그다지 탐탁지 않게 생각합니다. 폭력을 동원하는 순간 이미 논리의 의미는 사라지는 것이지요. 혐오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발화에 혐오가 담기는 순간 어떤 숭고한 목적도 논리의 영역을 벗어나 버리는 것이 아닌지요. 트위터의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나는 나의 젠더권력을 공짜로 포기할 생각이 없다. 나에게서 무언가를 얻어내고 싶다면 정중히 부탁하든가, 싸워서 쟁취하라." '약자'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재수 없는'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만, 저는 저 말에 평등운동의 핵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약자'가 강자가 되지 못하는 것은, 말 그대로 권력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회의 룰은 항상 권력을 가진 자의 입장을 대변하지요. 그렇다면 권력을 가지지 못하는 약자가 사회의 룰까지 파괴하려 들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뻔한 일입니다. '약자가 가진 최대의 무기는 정당성이다.'라는 말의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성평등과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자고 주장하는 이들은 혐오를 통해 젠더권력을 전복할 수 있으며, 자신들의 혐오는 정당한 투쟁의 방식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남연갤과 메갈리아/워마드의 전신인 메르스 갤러리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저들이 진정 쟁취하고자 하는 것이 성평등인지는 알 수 없으되, 저들의 말인즉 그렇다는 겁니다. 물론 여기에는 메갈리아/워마드와 별 관련이 없고 평소 일베의 혐오발언에 학을 떼는 이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겠지요. 이런 이들은 대개 이런 주장을 폅니다. "메갈리아/워마드의 혐오발언은 잘못된 부분이 '없지 않'지만 투쟁의 방식으로서는 유효한 면이 있다." 저는 이러한 진술이 근본적인 면에 있어서 혐오발언의 생산자들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그 '성평등'의 프레임을 쓴 혐오발언이 단순한 '되받아치기'가 아니라 무차별적 폭력의 양상을 보인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저들의 혐오는 '나쁜 혐오'지만 우리의 혐오는 '착한 혐오'다? 타겟팅 미스 이전에, 혐오가 왜 혐오이고, 왜 배척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말이 이렇게도 공허한 것이었던가요. 물론 한국은 여전히 성적 불평등이 만연한 나라이고(굳이 그 불평등이 어떤 것이냐에 대해 논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그 불평등을 해소하여 누구나가 한 사람으로서 오롯이 살아갈 수 있도록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데에는 전면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혐오에 맞서 자신의 혐오를 정당화하고, 그것을 무차별적으로 확산시키는 지금의 흐름은 무언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닌지요. 덧. 글이 쓸데없이 길었습니다. 오늘 JTBC 보도 내용과 정의당을 위시한 진보 3당 및 진보언론의 정치적 자살, 주변 사람들이 시전하는 '혐오의 정당화'를 목도하고보니 심각한 우울감이 들어 그렇습니다. 요즘 하도 논쟁이 첨예하다 보니 최소 하루 두 번씩 진지하게 "실은 내가 진짜 '병신'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되는데, 글쎄요. 이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되든 한동안 썩 유쾌한 기분이 들진 않을 듯싶습니다.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6-08-08 11:37) * 관리사유 : 추천 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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