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 16/06/28 11:29:42 |
Name | ![]() |
Subject | 서로 다른 생각이지만 훈훈하게 |
오늘 출근길에 생각해본 잡상을 정리해봅니다. 저는 커뮤니티가 세상을 보는 안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프라인에서 지인들과의 소통만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온전한 시각을 가지기 어려우며, 기자가 작성한 뉴스 기사만을 읽고 생각을 정하는 것 역시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개별 사안들에 대해 특정한 이해관계가 없다고 볼 수 있는 다수가 모인 집단의 구성원들 개인 의견들을 청취하고 그를 바탕으로 사안에 대한 나의 견해를 정리하는게 현 시점에서 가장 바람직한 정보습득의 과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글 하나에 댓글이 많이 달리는 형태의 게시판 구조를 좋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의견을 나누고 정반합을 충분히 거칠수록 사회의 보편적 시각에 더 근접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그 과정을 통해 사안을 다각도에서 바라보아야 비로소 사건의 실체를 온전히 이해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홍차넷엔 가능한 사람이 많이 모이길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일베에서 정보를 습득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내가 그 사람을 신뢰할 수 있을까? 여시에서 내려진 결론을 들고와서 대세라고 말하는 사람의 말을 인정해 줄 수 있을까? 오유, 뽐뿌, 디씨, 스르륵, 딴지라면? 만약 위에 거론한 사이트들에서 모인 의견들을 수용하기 어렵다면, 홍차넷은 어떤 점에서 다를 수 있을지 생각해봤습니다. 제가 생각해본 지점은 두가지입니다. 1. 비판적 입장이 수용가능하여 서로 다른 입장에서의 의견교환이 활발한 분위기 2. 그럼에도 서로를 존중하여 감정 상하지 않고 대화가 진행되는 분위기 어느 한 방향의 의견이 득세한다면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겠지요. 맘에 안드는 놈들은 잘라버리고 우리끼리 똘똘 뭉치면 되니까요. 하지만 이슈를 다각적으로 접근하여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며 보편적이라고 볼 수 있는 입장을 이해하고 나의 견해를 정리하는 것은 어렵게 될 것 같습니다. 쓰고 있는 안경에 색이 끼어버린 것과 같겠지요. 그래서 사안들에 대해 다양한 입장이 허용되고, 정반합이 반복되며 흐름이 만들어지는 그런 구조가 바람직할텐데 이 과정에서 거의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분쟁인 것 같습니다. 분쟁에 대한 피로가 너무도 극심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싸우느니 차라리 마음맞는 사람들끼리 모이는게 낫다'는 생각에 경향성이 있는 커뮤니티들에 모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구요. 저는 이 두 가지 과제를 잘 해결한 곳이 홍차넷이 되기를 바랍니다.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6-07-11 09:37) * 관리사유 : 추천 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6
이 게시판에 등록된 Toby님의 최근 게시물
|
저는 인터넷 게시판을 정보 습득의 통로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팩트를 수집한다고 할까요.
한가지 사건에 대해 신문기사에서도 모든 팩트를 담지 않기 때문에 여러 통로를 활용하여 팩트를 수집하고
내가 수집한 팩트를 근거로 나만의 의견을 새웁니다.
이 과정에서 타인의 의견도 듣게되는데요.. 사실, 특히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나도 맞고, 너도 맞다"라는 결론이 나오기 힘들지 않은가 싶어요..
나와 의견이 다른이를 발견하면 그 의견의 근거를 묻게되고, 그 근거가 타당한지에 따라 나의 의견이 달라질 수도 있는거지요.
... 더 보기
한가지 사건에 대해 신문기사에서도 모든 팩트를 담지 않기 때문에 여러 통로를 활용하여 팩트를 수집하고
내가 수집한 팩트를 근거로 나만의 의견을 새웁니다.
이 과정에서 타인의 의견도 듣게되는데요.. 사실, 특히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나도 맞고, 너도 맞다"라는 결론이 나오기 힘들지 않은가 싶어요..
나와 의견이 다른이를 발견하면 그 의견의 근거를 묻게되고, 그 근거가 타당한지에 따라 나의 의견이 달라질 수도 있는거지요.
... 더 보기
저는 인터넷 게시판을 정보 습득의 통로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팩트를 수집한다고 할까요.
한가지 사건에 대해 신문기사에서도 모든 팩트를 담지 않기 때문에 여러 통로를 활용하여 팩트를 수집하고
내가 수집한 팩트를 근거로 나만의 의견을 새웁니다.
이 과정에서 타인의 의견도 듣게되는데요.. 사실, 특히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나도 맞고, 너도 맞다"라는 결론이 나오기 힘들지 않은가 싶어요..
나와 의견이 다른이를 발견하면 그 의견의 근거를 묻게되고, 그 근거가 타당한지에 따라 나의 의견이 달라질 수도 있는거지요.
타인의 의견보다 그 의견을 갖게된 근거가 결국 중요하지 않은가. 그리고 결국 근거라는 것은 사실에 바탕을 두어야 하고..
그런 소위 말하는 팩트를 얼마나 많이 모았는가가 사안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해서 여성혐오로 보는 시각과 정신병에 의한 범죄로 보는 시각이 나뉘는데요.
이것을 "너도 맞고, 나도 맞다"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은가 싶어요.
여성혐오로 볼 수 있는 근거와, 정신이상자의 범죄로 볼 수 있는 근거를 나열해 놓고
"너는 여성혐오로 보는구나.. 나는 정신이상자의 범죄라고 생각해." 이렇게 넘어가는건 좀 너무 나이브하지 않나...
"너는 여성혐오로 보는구나. 그렇지만 이런이런 근거들을 볼 때 정신이상자의 범죄로 보는게 더 타당해." 라고 하다보면.....키배가 벌어지는거지요.
음. 제가 하려는 말이 잘 설명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전같으면 그냥 그렇구나 넘어갔을텐데.. 글을 보고 뭔가 저의 생각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부족하지만 나름 설명을 해보았는데요.. 설명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주세요.
한가지 사건에 대해 신문기사에서도 모든 팩트를 담지 않기 때문에 여러 통로를 활용하여 팩트를 수집하고
내가 수집한 팩트를 근거로 나만의 의견을 새웁니다.
이 과정에서 타인의 의견도 듣게되는데요.. 사실, 특히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나도 맞고, 너도 맞다"라는 결론이 나오기 힘들지 않은가 싶어요..
나와 의견이 다른이를 발견하면 그 의견의 근거를 묻게되고, 그 근거가 타당한지에 따라 나의 의견이 달라질 수도 있는거지요.
타인의 의견보다 그 의견을 갖게된 근거가 결국 중요하지 않은가. 그리고 결국 근거라는 것은 사실에 바탕을 두어야 하고..
그런 소위 말하는 팩트를 얼마나 많이 모았는가가 사안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해서 여성혐오로 보는 시각과 정신병에 의한 범죄로 보는 시각이 나뉘는데요.
이것을 "너도 맞고, 나도 맞다"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은가 싶어요.
여성혐오로 볼 수 있는 근거와, 정신이상자의 범죄로 볼 수 있는 근거를 나열해 놓고
"너는 여성혐오로 보는구나.. 나는 정신이상자의 범죄라고 생각해." 이렇게 넘어가는건 좀 너무 나이브하지 않나...
"너는 여성혐오로 보는구나. 그렇지만 이런이런 근거들을 볼 때 정신이상자의 범죄로 보는게 더 타당해." 라고 하다보면.....키배가 벌어지는거지요.
음. 제가 하려는 말이 잘 설명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전같으면 그냥 그렇구나 넘어갔을텐데.. 글을 보고 뭔가 저의 생각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부족하지만 나름 설명을 해보았는데요.. 설명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주세요.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밑바탕에 깔린 생각에는 사실 별로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그건 제 개인적인 생각이고요
결국 배척되는 사람 없이 화목하게 의견 교환할 수 있게 운영하겠다는 점에서 충분히 좋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운영진이 무슨 사안을 판단할 때 갑자기 이걸 내적 갈등으로 승화시켜서 어처구니 없는 일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홍차넷은 운영진이 자의적 판단에 대해서 경계하고 있어서 그 점이 가장 좋습니다.
자의적 판단을 해도 상관은 없지만, 그것에 몰두해서 대단한 고민을 한 것처럼 자아도취에 빠지고 모두를 곤란하게 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세상에 너무 많아요ㅠㅠ
결국 배척되는 사람 없이 화목하게 의견 교환할 수 있게 운영하겠다는 점에서 충분히 좋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운영진이 무슨 사안을 판단할 때 갑자기 이걸 내적 갈등으로 승화시켜서 어처구니 없는 일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홍차넷은 운영진이 자의적 판단에 대해서 경계하고 있어서 그 점이 가장 좋습니다.
자의적 판단을 해도 상관은 없지만, 그것에 몰두해서 대단한 고민을 한 것처럼 자아도취에 빠지고 모두를 곤란하게 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세상에 너무 많아요ㅠㅠ
어떤 범죄사건이 생기면 경찰,검찰은 증거를 수집하고 정황을 파악하고 범인이 누구인지 왜 그런 사건이 발생했는지 분석을 대개 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사건이 무엇이든 정치가 개입해 버리면 누구도 신뢰를 하지 못하고 각자 자신이 믿고 싶은 사실들에 매몰되는 경우가 많아요. 천안함사태나 세월호나 정치가 전혀 개입할 일이 없었다면 철저한 수색/분석 후 우리에게 남는 건 '답안지'일 거예요. 그런데 답안지가 있다고 단언하기가 무척 조심스럽죠. 진영논리가 개입해 버리는 순간 '정치적 시각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거든요. (진상... 더 보기
어떤 범죄사건이 생기면 경찰,검찰은 증거를 수집하고 정황을 파악하고 범인이 누구인지 왜 그런 사건이 발생했는지 분석을 대개 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사건이 무엇이든 정치가 개입해 버리면 누구도 신뢰를 하지 못하고 각자 자신이 믿고 싶은 사실들에 매몰되는 경우가 많아요. 천안함사태나 세월호나 정치가 전혀 개입할 일이 없었다면 철저한 수색/분석 후 우리에게 남는 건 '답안지'일 거예요. 그런데 답안지가 있다고 단언하기가 무척 조심스럽죠. 진영논리가 개입해 버리는 순간 '정치적 시각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거든요. (진상조사가 제대로 되고 안되고는 논외로 하고..) 종교도 마찬가지예요.
<그것이 알고 싶다>에 세모자사건이 방영되었을 때 한동안 떠들썩했었죠. 결국 세모자의 사기행각으로 판명이 났는데 만약 이 사건에 (한국형) 보수/진보 진영논리가 개입되었다면 현재까지 그 사건의 진위에 대해 중구난방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았을테고 팩트를 꿰뚫어보지 못한다고 해서 상대가 틀렸다고 몰아부치기도 곤란했을 거예요. 범죄나 사기행각이 아니라 정치적 사건이기 때문이죠.
정치적이면 아예 팩트를 단언할 수조차 없냐면 팩트는 분명 존재합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되지 않은 건 팩트이듯이요. 그런데 과연 우리 모두가 정치적으로 변질되어 버린 모든 사안에 대해 5.18광주민주화운동만큼이나 팩트를 장담할 수 있냐면 꼭 그런 건 아니에요. 팩트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순 있되 자신이 아는 팩트를 상대방이 알지 못한다고 해서 비난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한 정보를 온전히 습득하고 있지 못하고 잘못 알고 있다고 해서 타인을 손가락질할 만큼 내가 전지전능하지는 않은 이유도 있겠고 고급정보를 습득하고 사는 사람들의 경우(만약 있다면), 나의 정보가 제아무리 팩트만을 근거로 했다 하더라도 정보비대칭을 순식간에 수정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내 주장을 강요하면 팩트전도구현이 아니라 감정만 상하게 될 거예요. 특히나 내 정치진영에서 습득한 정보와 정반대의 팩트를 접하게 되었을 때 새로운 팩트로 내 지식을 업데이트하는 과정은 과장되게 말해서 경우에 따라 거의 개종의 노력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상대방의 앎이 확실한 한계를 보이는 경우 얼마든지 나이스하게 정정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비난'할 필요까지도 없고요(이 말씀은 무지랭이인 제가 그런 태도를 견지한단 말이 아니라 저보다 방대하고 정확한 정보를 꿰뚫고 계신 분들의 에티켓에 관한 것이에영.)
그럼 앎의 스펙트럼이 저마다 다양한데 어떻게 이걸, 모두가 앎을 공유하는 커뮤니티로 승화시키느냐의 문제는 개개인에게 '말 할 용기'를 요구합니다. 저만 해도 물어보고 싶은 바보같은 질문이 정말 많아요. 그리고 어떤 사안에 대한 느낌을 피력하고 의견을 나누고 싶은 욕구가 많죠. 그러나 생각만큼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는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질문을 많이 던지는 편이에요. 일본군 성노예문제가 그랬고, 북한해킹문제가 그랬고 브랙시트문제가 그랬죠. 이런 정치적인 의견을 피력할 때나 질문을 던질 때의 문제점은 '발설하는 순간' 그 글 자체가 발제자인 저에게 어떤 프레임을 씌운다는 거예요. 질문을 자주 던지는 저는 사실 내면에선 많은 갈등을 합니다. 심지어는 제가 속으로 생각하는 바와는 다르게 글이 전달되는 경우도 있어요. 제가 프레임을 두려워하며 잔뜩 자의식에 빠져서 글을 썼기 때문일 거예요. 일본군 성노예에 관한 글을 올렸을 때 저는 실은 그동안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탈민족주의적인 이면을 읽고 진보에 배신감을 많이 느꼈었어요. 그치만 '위안부' 이슈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죠. 스스로를 억압하며 쓴 글이라 어떤 분에게는 제 의도와는 반대의 의미로 읽히기도 했어요.
말 할 용기를 갖기 위해서는 독자의 상당한 이해력을 요구합니다. 독자가, 나의 의견을 때로는 '악마의 변호'로 받아들이는 완벽한 이해심을 발휘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부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역발상을 항상 제기해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조직에 존재한다면 그건 이득이에요. 만장일치는 시스템오류를 반영하듯이 한쪽 방향의 논의 또한 오류가 있음을 반영하는 걸 거예요. 그래서 누가 A를 이야기할 때 B를 거론하는 이가 있으면 그는 논의를 풍부하게 해 주는 이로서 독자들이 포용해 줘야 하고 언제나 환영받는 이여야 하며 홍차넷은 그렇드라..가 되어야..
그런 의미에서 전 피아니시모님이 가끔 생각나요. 메갈이나 워마드를 비판하는 건 정당하거든요. 그 분 스스로 상상의 독자들을 상정해 놓고 이미 자신에게 프레임을 씌웠다고 생각하실까봐 마음이 쓰였어요. 편하게 생각하셨으면...제가 그런 두려움에 휩싸이곤 했기 때문에 생각이 나나봐요. 착한 저격 인정해 주세영.
<그것이 알고 싶다>에 세모자사건이 방영되었을 때 한동안 떠들썩했었죠. 결국 세모자의 사기행각으로 판명이 났는데 만약 이 사건에 (한국형) 보수/진보 진영논리가 개입되었다면 현재까지 그 사건의 진위에 대해 중구난방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았을테고 팩트를 꿰뚫어보지 못한다고 해서 상대가 틀렸다고 몰아부치기도 곤란했을 거예요. 범죄나 사기행각이 아니라 정치적 사건이기 때문이죠.
정치적이면 아예 팩트를 단언할 수조차 없냐면 팩트는 분명 존재합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되지 않은 건 팩트이듯이요. 그런데 과연 우리 모두가 정치적으로 변질되어 버린 모든 사안에 대해 5.18광주민주화운동만큼이나 팩트를 장담할 수 있냐면 꼭 그런 건 아니에요. 팩트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순 있되 자신이 아는 팩트를 상대방이 알지 못한다고 해서 비난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한 정보를 온전히 습득하고 있지 못하고 잘못 알고 있다고 해서 타인을 손가락질할 만큼 내가 전지전능하지는 않은 이유도 있겠고 고급정보를 습득하고 사는 사람들의 경우(만약 있다면), 나의 정보가 제아무리 팩트만을 근거로 했다 하더라도 정보비대칭을 순식간에 수정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내 주장을 강요하면 팩트전도구현이 아니라 감정만 상하게 될 거예요. 특히나 내 정치진영에서 습득한 정보와 정반대의 팩트를 접하게 되었을 때 새로운 팩트로 내 지식을 업데이트하는 과정은 과장되게 말해서 경우에 따라 거의 개종의 노력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상대방의 앎이 확실한 한계를 보이는 경우 얼마든지 나이스하게 정정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비난'할 필요까지도 없고요(이 말씀은 무지랭이인 제가 그런 태도를 견지한단 말이 아니라 저보다 방대하고 정확한 정보를 꿰뚫고 계신 분들의 에티켓에 관한 것이에영.)
그럼 앎의 스펙트럼이 저마다 다양한데 어떻게 이걸, 모두가 앎을 공유하는 커뮤니티로 승화시키느냐의 문제는 개개인에게 '말 할 용기'를 요구합니다. 저만 해도 물어보고 싶은 바보같은 질문이 정말 많아요. 그리고 어떤 사안에 대한 느낌을 피력하고 의견을 나누고 싶은 욕구가 많죠. 그러나 생각만큼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는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질문을 많이 던지는 편이에요. 일본군 성노예문제가 그랬고, 북한해킹문제가 그랬고 브랙시트문제가 그랬죠. 이런 정치적인 의견을 피력할 때나 질문을 던질 때의 문제점은 '발설하는 순간' 그 글 자체가 발제자인 저에게 어떤 프레임을 씌운다는 거예요. 질문을 자주 던지는 저는 사실 내면에선 많은 갈등을 합니다. 심지어는 제가 속으로 생각하는 바와는 다르게 글이 전달되는 경우도 있어요. 제가 프레임을 두려워하며 잔뜩 자의식에 빠져서 글을 썼기 때문일 거예요. 일본군 성노예에 관한 글을 올렸을 때 저는 실은 그동안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탈민족주의적인 이면을 읽고 진보에 배신감을 많이 느꼈었어요. 그치만 '위안부' 이슈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죠. 스스로를 억압하며 쓴 글이라 어떤 분에게는 제 의도와는 반대의 의미로 읽히기도 했어요.
말 할 용기를 갖기 위해서는 독자의 상당한 이해력을 요구합니다. 독자가, 나의 의견을 때로는 '악마의 변호'로 받아들이는 완벽한 이해심을 발휘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부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역발상을 항상 제기해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조직에 존재한다면 그건 이득이에요. 만장일치는 시스템오류를 반영하듯이 한쪽 방향의 논의 또한 오류가 있음을 반영하는 걸 거예요. 그래서 누가 A를 이야기할 때 B를 거론하는 이가 있으면 그는 논의를 풍부하게 해 주는 이로서 독자들이 포용해 줘야 하고 언제나 환영받는 이여야 하며 홍차넷은 그렇드라..가 되어야..
그런 의미에서 전 피아니시모님이 가끔 생각나요. 메갈이나 워마드를 비판하는 건 정당하거든요. 그 분 스스로 상상의 독자들을 상정해 놓고 이미 자신에게 프레임을 씌웠다고 생각하실까봐 마음이 쓰였어요. 편하게 생각하셨으면...제가 그런 두려움에 휩싸이곤 했기 때문에 생각이 나나봐요. 착한 저격 인정해 주세영.
저는 커뮤니티에서 유저들 개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더 관건은 '보이지 않는 코어'라는 개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경험적으로 대개의 경우 운영자(운영진)의 마인드와 자질이 커뮤니티의 방향과 지속가능여부를 크게 좌우하더군요. 가장 중요한 건 불확실성을 통제하는 일인데, 사람들이 '이 정도면 상식적이다'라고 생각하는 선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운영의 결정들이 내려지는가 하는 것 말예요.
100분토론의 한 회차에서 출연한 패널들이 아무리 중구난방이라도 손석희가 사회자라면 프로그램의 기본 신뢰틀은 깨지지 않고 시청자들은 다음 프로를... 더 보기
100분토론의 한 회차에서 출연한 패널들이 아무리 중구난방이라도 손석희가 사회자라면 프로그램의 기본 신뢰틀은 깨지지 않고 시청자들은 다음 프로를... 더 보기
저는 커뮤니티에서 유저들 개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더 관건은 '보이지 않는 코어'라는 개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경험적으로 대개의 경우 운영자(운영진)의 마인드와 자질이 커뮤니티의 방향과 지속가능여부를 크게 좌우하더군요. 가장 중요한 건 불확실성을 통제하는 일인데, 사람들이 '이 정도면 상식적이다'라고 생각하는 선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운영의 결정들이 내려지는가 하는 것 말예요.
100분토론의 한 회차에서 출연한 패널들이 아무리 중구난방이라도 손석희가 사회자라면 프로그램의 기본 신뢰틀은 깨지지 않고 시청자들은 다음 프로를 기다리게 되지요. 하지만 종편의 좀 이상한(?) 사회자와 피디들은 아무리 뛰어난 패널들도 바보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거 같아요. 사실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정보나 논쟁의 내용 자체보다는 그런 정보나 논쟁을 부각시키는 틀과 형식이 더 중요할 때가 많은 듯해요. 똑같은 기사라도 그것을 전달하는 매체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독자들이 받는 느낌이 확 달라지는 것처럼.
내가 운영진이라면, 내가 책임자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유저들에게 그런 진지한 고민을 가끔 하게 해주는 것이 운영진의 스킬인지, 아니면 운영진 같은 건 공기처럼 필요하지만 안 보여도 좋다고 유저들이 생각할 만큼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더 좋은 운영인지, 잘 모르겠어요. 홍차넷은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독특한 커뮤니티 같아요. 가장 불안한 건 역시 서버비용...흑
100분토론의 한 회차에서 출연한 패널들이 아무리 중구난방이라도 손석희가 사회자라면 프로그램의 기본 신뢰틀은 깨지지 않고 시청자들은 다음 프로를 기다리게 되지요. 하지만 종편의 좀 이상한(?) 사회자와 피디들은 아무리 뛰어난 패널들도 바보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거 같아요. 사실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정보나 논쟁의 내용 자체보다는 그런 정보나 논쟁을 부각시키는 틀과 형식이 더 중요할 때가 많은 듯해요. 똑같은 기사라도 그것을 전달하는 매체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독자들이 받는 느낌이 확 달라지는 것처럼.
내가 운영진이라면, 내가 책임자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유저들에게 그런 진지한 고민을 가끔 하게 해주는 것이 운영진의 스킬인지, 아니면 운영진 같은 건 공기처럼 필요하지만 안 보여도 좋다고 유저들이 생각할 만큼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더 좋은 운영인지, 잘 모르겠어요. 홍차넷은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독특한 커뮤니티 같아요. 가장 불안한 건 역시 서버비용...흑
본문에 적은 것 처럼 다양한 의견을 듣고 싶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은 공간이 되길 바라는 점도 있구요.
떠나는 회원들이 있더라도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신규회원의 유입이 있어야겠지요.
드나드는 회원들이 많아지면 서버 비용도 증가하지만, 그와 함께 광고수입도 증가합니다.
광고수입의 증가가 서버비용의 증가보다 약간 많기 때문에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비용측면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도 광고수입으로 서버비를 내고 있구요.
홍차넷의 회원증가추이는 아주 완만해서... 지난 1년간은 거의 회원수가 비슷하게 계속... 더 보기
떠나는 회원들이 있더라도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신규회원의 유입이 있어야겠지요.
드나드는 회원들이 많아지면 서버 비용도 증가하지만, 그와 함께 광고수입도 증가합니다.
광고수입의 증가가 서버비용의 증가보다 약간 많기 때문에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비용측면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도 광고수입으로 서버비를 내고 있구요.
홍차넷의 회원증가추이는 아주 완만해서... 지난 1년간은 거의 회원수가 비슷하게 계속... 더 보기
본문에 적은 것 처럼 다양한 의견을 듣고 싶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은 공간이 되길 바라는 점도 있구요.
떠나는 회원들이 있더라도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신규회원의 유입이 있어야겠지요.
드나드는 회원들이 많아지면 서버 비용도 증가하지만, 그와 함께 광고수입도 증가합니다.
광고수입의 증가가 서버비용의 증가보다 약간 많기 때문에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비용측면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도 광고수입으로 서버비를 내고 있구요.
홍차넷의 회원증가추이는 아주 완만해서... 지난 1년간은 거의 회원수가 비슷하게 계속 유지되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예상하기로는 앞으로는 매년 130% 정도로 오랜기간 천천히 회원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근거는 없습니다 ㅎㅎ
떠나는 회원들이 있더라도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신규회원의 유입이 있어야겠지요.
드나드는 회원들이 많아지면 서버 비용도 증가하지만, 그와 함께 광고수입도 증가합니다.
광고수입의 증가가 서버비용의 증가보다 약간 많기 때문에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비용측면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도 광고수입으로 서버비를 내고 있구요.
홍차넷의 회원증가추이는 아주 완만해서... 지난 1년간은 거의 회원수가 비슷하게 계속 유지되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예상하기로는 앞으로는 매년 130% 정도로 오랜기간 천천히 회원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근거는 없습니다 ㅎㅎ
목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