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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6/05/21 23:17:50 |
Name | 기아트윈스 |
Subject | 와이프 팝니다 |
때는 19세기 무렵, 청나라 어느 섬 마을. 여기 기아트윈스라는 가난한 살아남기 위해 뭐 더 팔 게 없나 하고 난처하게 주변을 살피던 중 눈에 딱 들어온 게 있었으니 두둥! 바로 처자식입니다. 어차피 지금 이 가정은 한 달을 못버티고 공멸할 위기, 처자식을 팔기로 결심합니다. 구매자가 있어야 할 텐데요. 바로 옆 마을엔 최근 이 때 레지엔의 이러한 사정을 잘 아는 동네 매파 눈부심씨가 접근합니다. "이보슈, 내가 옆동네에서 들은 이야긴데 기아트윈스라는 가난뱅이가 마누라와 애들을 판다드만. 그쪽은 사정이 무척 급해서 그러는 거니 아주 싼 값에 사올 수 있을거요. 게다가 듣자하니 그 마누라가 그렇게 젊고 예쁘다던데 어떻게 한 번 오퍼를 넣어보지?" 레지엔은 벼락을 맞은 듯 기뻤습니다. 일전에 우연히 기아트윈스네 마누라를 본 적이 있는데 인물이 제법 괜찮다고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첫째, 가격 문제가 걱정이고 둘째, 과연 그녀가 자길 좋아할까 걱정이고 셋쩨, 처자식 인신매매는 불법이라는 게 걱정이었습니다. 레지엔의 표정 변화를 예민하게 알아챈 눈부심은 다 안다는 듯이 말을 이어갑니다. "아이구 걱정 놓으시게. 그 친구 지금 다 죽게 생겨서 파는 거라 돈 문제는 없어. 또 어차피 그대로는 다 같이 죽을 판이라 그년도 제발 자길 팔아달라고 조르는 판이라구. 그 뿐인가, 거래 문제라면 계약서를 확실히 받아놓고 나 같은 사람이 중간에서 공증을 하면 될 일이야. 이건 순전히 자네 의지에 달린 일이라구." 레지엔은 마음 속이 시원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이윽고 매파와 논의 끝에 협상 전략을 세웁니다. "그렇다면 눈부심님이 수고좀 해주시죠. 가격은 일단 은자 5냥을 불러봐요. 제가 그정도 까진 융통할 수 있어요. 아이구 그런데 겨우 이 정도를 기아트윈스놈이 받아들이려나 모르겠네요. 어쨌든 첫 호가는 이렇게 부르시고 이야기를 해보다 안되면 최대 이 가격의 두 배 까지는 내도 괜찮아요." 눈부심은 이제 기아트윈스에게 찾아가서 구매자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구체적인 오퍼를 말해줍니다. 기아트윈스 입장에선 다른 오퍼를 받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손해보는 기분이 강하게 들지만 어쩌겠습니까. 오케이 사인을 날리고 날을 잡습니다. ----------------------------------------------------------------------------------------------------------------------- 저 손바닥 도장은 판매자가 찍은 거에요. 가운데 문구는 "심감정원"이라고 읽고 "진심으로 원해서..." 정도로 해석하시면 됩니다. 위와 같은 손도장이 포함된 계약서를 쓰고 나면 즉석에서 돈이 지급되고 판매자의 처자식은 바로 구매자의 집으로 옮겨갑니다. 구매자는 만족할 만한 가격에 처자식이 생겨서 좋고, 매파는 중개료를 벌어서 좋고, 처자식 입장에선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쌀밥에 고깃국이 나와서 좋습니다. 유일한 피해자는 판매자입니다. 판매자 입장에선 실제 시장가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판매자의 급박한 사정을 시장 참여자 모두가 잘 아는 상황에서 거래가 이루어진 거라 본인 스스로 손해보며 팔았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또 팔긴 팔았으되 느껴지는 가책과 그리움 역시 떨치기 어렵지요. 더 문제인 것은 곤궁한 경제사정으로 인해 이렇게 마련한 돈마저 몇 주를 못 넘기고 다 사라진다는 겁니다. 몇 주는 커녕 전당포에서 물건 찾아오고 또 빚을 갚고 나면 당장 다음날에도 남는 게 없는 경우도 많았어요. (판매가는 현재 남아있는 기록 중 최고가가 은자 30냥, 최저가가 동전 200푼입니다. 은자 하나가 동전 1000-1500푼 가량이고, 막노동해서 하루 일당이 동전 50푼인가 그러던 시절이니 이 남자는 고작 4일치 일당에 마누라를 판 거지요) 하지만 판매자에겐 더이상 돈을 마련할 수단이 없습니다. 처자식도 팔았는걸요. 굳이 방법을 찾자면 레지엔을 찾아가서 읍소하는 것 정도가 있겠습니다. 실제로 이런 경우가 꽤 흔했기 때문에 애초에 작성한 계약서에 추가로 찾아와서 징징대지 말 것이라는 문구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판매자들은 구매자를 자주 찾아갔습니다. 결과는 보통 두 가지 중 하나인데 1. 돈을 받아내거나 2. 흠씬 맞거나 입니다. 맞는 거야 뭐... 청나라 소작농의 삶에서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돈을 받아내면 땡큐죠. 그래서 찾아가고, 찾아가고, 또 찾아갑니다. 구매자 입장에선 상대방의 어려운 처지를 악용하여 불공정 거래를 했다는 약간의 가책이 남아있기 때문에 돈을 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물론 그냥 주진 않고 서기와 증인을 대동해서 "다시는 찾아오지 않겠음" 따위의 문서를 쓰게 하고 주지요. 현재 남아있는 자료 중에는 같은 판매자-구매자가 "다시는..." 류의 각서를 네 통이나 연달아 쓴 경우도 있답니다. 각서를 받아가면서도 결국 돈을 네 번이나 추가로 줬다는 뜻이지요. 반면 흠씬 팬 경우에는 추후 두 가지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나는 두들겨 맞은 기아트윈스가 도망가든 죽든 여튼 다시는 나타나지 않고 일이 잘 마무리되는 것, 다른 하나는 기아트윈스가 관가에 가서 소를 내는 것 입니다. 후자의 경우가 아주 고약해질 수 있는데, 대개 이런 식으로 소장을 쓰기 때문이에요. "아이고 나으리 제발 살려주십시오. 제가 어느날 농삿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보니 처자식이 사라진 것 아니겠습니까. 미친 듯이 찾아다니다보니 레지엔이라는 놈 집에 갇혀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저놈은 납치 강간범입니다. 저놈을 잡아다가 엄히 다스리시고 제 처자식을 돌려주십시오." 하고 엎드려서 엉엉 울고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고 데굴데굴 꿀꿀 난리를 칩니다. 그러면 담당 관리는 '어이구 또야....?' 하는 표정으로 접수장을 씁니다. 내용은 대략, "또 한 건의 불법 인신매매-->진상부리기 케이스인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만의 하나라는 게 있으니 일단 접수시켜줌." 레지엔은 현청에 소환당할 때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그동안 잘 보관해 두었던 계약서를 가져갑니다. 그걸 제출함으로서 납치강간 혐의를 벗기 위해서지요. 하지만 이런 거래 자체가 불법이지 않겠어요? 그래서 레지엔도, 기아트윈스도 적당히 곤장을 맞습니다. 하지만 청나라 소작농의 삶에서 조금 맞는 것 정도야 뭐...'ㅅ' 거래 자체가 무효가 되었으므로 처자식은 많은 경우 처가집으로 갑니다. 또 기아트윈스가 레지엔에게 받았던 판매대금 역시 돌려줘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 돈은 이미 빚을 갚는다든지 먹을 걸 산다든지 하는 식으로 다 사라진 후지요. 이렇게 되면 판 놈도 산 놈도 다 패배자가 되고 처가집 장인어른만 승리자가 됩니다. 딸이 이제 법적으로 미혼상태가 되었으니 다시 지참금을 받고 혼인 시장에 내보낼 수 있거든요. 혼인 시장에 내보내려면 매파를 써야겠지요? 그래서 (꼭 눈부심은 아니더라도) 어떤 매파는 추가소득을 보겠지요. 물론 당시에도 아주 드문 경우지만 마누라 대여계약서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내용은 대략 판매자는 구매자에게 마누라를 5년간 대여해주고 그 사이 태어난 아이들은 다 구매자의 아이로 인정한다는 등입니다. --------------------------------------------------------------------------------------------------------------------- 한 워크숍에서 위의 책을 쓴 저자가 이 내용으로 발표를 했어요. 제가 참 재밌는 (interesting) 주제네요 했더니 그양반이 다 안다는 듯이 씩 웃으면서 "세상에 와이프 파는 얘기보다 더 재밌는 게 뭐가 있겠어요? (What can be more interesting than this?)" 하더군요. 그 내용이 인상 깊어 이렇게 정리해서 올려봅니다. 또, 본 글에 등장하는 모든 닉네임은 허구의 인물이며 여보 사랑해♡ 참조: Matthew Sommer, Polyandry and Wife-Selling in Qing Dynasty Chin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5.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6-05-29 23:30) * 관리사유 : 추천 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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