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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6/01/19 11:52:12 |
Name | nickyo |
Subject | 추운날 추억 |
1. 고등학교 1학년 3월 입학때가 생각난다. 겨우 교복이 바뀐 것 만으로도 어른스러워 졌어야 했던 우리. 서먹하고 어색하지만 중학교 입학때처럼 서로를 경계할 이유가 없었던... 어제까지 공부와 담쌓은 아이들도 유난히 점잖아졌던 그 시절. 이상기후로 인해 기록적인 폭설이 3월에 찾아왔고 운동장은 하얀 눈더미가 매트리스처럼 깔려있다. 1학년, 가장 낮은 층에 일렬로 붙어있던 교실 창문너머로 봤던 그 풍경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눈밭 사이로 앞머리가 뜰까 고운 손으로 누른 옆 교정 여고 선배가 있어서 그랬었나? 2. 한겨울, 아직 테이크아웃 커피가 당연하지 않았을 적. 나는 공부용 다이어리를 들고 학원 앞에 서 있다. 독서실에서 학원까지는 길만 건너면 바로였는데, 학원에는 예쁜 여자애들이 많았다. 나도 그 학원을 다녔었으니 몇몇과는 이름을 알고지냈다. 스마트폰이라는게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 시절, 문자메세지를 주고받던 친구에게 선물하려 했던 노란색 스터디플래너. 몇 가지 할말들을 힘껏 고민하고 나갔지만 왜 자기 친구 둘이나 데리고 내려오는건지. 준비한 말을 한 마디 못하고 '자' 하며 퉁명스레 건넨 다이어리가 그애와의 마지막 인사였다. 텅 빈 손이 무지 시렵던 추운 날. 고맙다는 말이 겨울 바람에 실려 왔던가 말았던가... 3. 나는 생일때면 유독 외로웠다. 방학의 한가운데, 억지로 쿨하게 보내왔던 겨울의 출생일. 심지어 만나던 여자들조차 생일을 전후한 시기에는 별로 없었던것같다. 있더라도 생일을 기억해준 이가 있었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 있다. 볼에다 뽀뽀를 하던 동갑내기 여고생... 지금은 유부녀에 애까지 있다던데. 그때는 떡볶이 코트가 유행했는데.. 그걸 입어도 도무지 버틸 수 없던 추운 겨울에, 짧은 치마에 니삭스를 입고 나온 여자애의 마음을 나는 알긴 했을까. 저녁에 체육관을 가야한다고 하니 자기도 약속이있다며 헤어지고는 수년이 지나서야 그때 너 싸가지없었다던 말을 들었다. 약속같은게 있었겠냐? 그러고 나갔는데. 콩, 하고 쥐어박혔다. 싸가지가 없던, 그리고 어찌되어도 좋았던 재회 역시 겨울. 4. 이번 생일은 전혀 춥지가 않았다. 실제로 날씨도 따듯했고, 여자친구도 옆에 있고. 처음으로 정성어린 생일선물도 받아봤다. 별거 아닌 하루에는 생일이라는 이름보다 누군가의 마음이 훨씬 특별함을 만들어준다는 것을. 이젠 테이크아웃 커피는 당연해졌고, 우린 그래서 따스운 커피를 마셨다. 춥지 않았다. 이내 손길 너머로 이어진 체온이 약간 덥다는 생각도 들고. 차가운 입술과 뜨거운 숨결이 맞닿는다. 하얀 입김이 흩어지고, 겨울은 온데간데없이, 외로움도 휴가를 냈는지. 한파가 불어닥치기 전의 겨울날. 한파가 불어닥쳤어도 별 상관 없었을 그날. 5. 올해들어 가장 춥다더라. 올해는 20일도 안지났잖아? 혼자 기상캐스터를 상대로 딴지를 걸며 한 번도 꺼내쓰지 않던 장갑을 꺼낸다. 따뜻하게 입고 나가요 오늘 엄청추워요. 말을 잘 들어야지. 밖으로 나오니 얼굴을 누가 계속 때린다. 나 UFC 나온거니 그런거니 으어 볼과 코가 얼얼하다. 점퍼에 달린 모자를 덮어쓰고 얼굴을 파묻었다. 위잉, 하고 스마트폰이 떤다. 2년이 다 되어 임종을 앞에두신 골골대는 스마트폰... 화면도 제대로 안나와 수번을 껐다 켜야하는 녀석이 왠일로 한번에 딱 켜진다. 보고싶어요. 흐음. 오늘 올해들어 가장 추운거 맞나?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6-01-31 16:57)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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