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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4/01/06 03:00:53 |
Name | 경계인 |
Subject | 환자의 자기결정권(autonomy)은 어디까지 일까? |
위험한 주제로 위험한 시기에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만, 정치적인 이야기는 제외하겠습니다. 야당대표의 경정맥 자상으로 부산대병원에서 서울대병원으로 가족의 요청으로 헬기이송을 하면서,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서울대병원은 부산대병원 의료진의 요청으로 전원을 했다고 밝혔고, 부산대병원은 가족의 요청으로 전원을 했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일을 야당대표 이재명이라는 이름은 빼고 논의해보고 싶습니다. 혹시 댓글을 다시더라도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이야기에는 답하지 않을 것이므로 양해 바랍니다. 제가 주목한 부분은 의료진의 치료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환자와 보호자의 '요청'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부산대병원 의료진은 치료를 권했으나 환자가 전원을 원해서 어쩔 수 없었다라는 인터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의식이 명료한 상태에서 환자가 전원을 원했으니, 당연히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 맞다'라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논의를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환자가 전원을 요구하는 상태에서 의사는 크게 두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1. 환자의 설득해서, 본인의 의료기관에서 환자를 도의적으로 책임지고 치료한다. 2. 환자의 전원요구를 받아들이고, 의사의 책임을 최소화한 상태로 전원을 보낸다. 사실 일반적인 외래현장에서는 상당수가 2번을 선택하게 됩니다. 어차피 전원을 요구할 정도면 긍정적인 의사-환자 관계(rapport) 를 다시 형성하기 어려운 상태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단 의뢰서 작성하고 환자에게 손을 떼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판단하게 되죠. 이런게 쌓이다보니 흔히 말하는 빅5병원으로의 러쉬가 시작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한국에서 일할때 빅5 근처병원에서 일했는데, 필요한 검사 복사하고 차트 정리해서 의뢰서 소견서 써달라는 경우가 거의 매일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보장되어야 하는가? 자기결정권은 헌법에 보장되어있고, 대법원 판례에서 “환자도 자기의 생명과 신체의 기능을 어떻게 유지하는가에 대하여 스스로 결정하는 권능”을 갖는다고 하였고, 환자의 생명 보호에 못지 않게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야 할 의무가 대등한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환자도' 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의료(Practice)라는 것의 구성원은 "의사"와 "환자"이고 치료라는 것은 의사-환자 사이에서 공유된 의사결정 (shared decision making)으로 이루어지는 측면을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의료는 현재 의료'서비스'가 되었고 이것은 시장경제에서의 상품으로 치환되는 상황에서 환자는 소비자로서의 자기권리 확보와 맞물리면서 자기결정권이 확장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돌아보면 불과 몇십년전까지만해도 의료가 서비스라는 측면이 강조되기 전에는 의사결정의 권한이 의사쪽으로 편향된 적이 있었고, 그런 치중된 상황에 대한 정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자기결정권이라는 것의 전제는 '법적으로 능력'이 확보된 환자가 스스로에게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는 것입니다만, 현실에서 의사와 환자 양쪽에서 모두 '불완전함'은 명백합니다. 왜 이렇게 제 전공도 아닌, 잘 알지도 못하는 법분야까지 들먹이면서 서론을 쓰는 이유는 지금 대한민국 의료가 '공공의료'와 '민영의료' 사이 어디쯤에 있는지 알아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국에 있는 동안은 공공의료원에서 근무하였고, 일본에서는 국립대병원에서 대학원생으로, 현재 민영의료의 최첨단을 달리는 미국에서는사립병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일할때 병원에서 이야기하는 '공공의료'라는 것에 대해서 항상 의문을 가졌습니다. 대체 공공의료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진료비를 싸게 하는 것이 공공의료인가? 부자와 가난한 사람 가릴 것 없이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진료를 하는 것이 공공의료인가? 그렇다면 공공의료를 한다고 한다면 어떻게 진료를 하는 것이 공공의료인가? 구체적인 담론은 하나도 없었고, 그저 공공의료를 지켜야 한다는 말이 너무나 허상 같이 느껴졌습니다. 꼭 이것때문에 그런건 아니지만, 제가 일본과 미국을 경험하고 나서는 어느정도 저만의 해석을 찾았습니다. 결국 생각의 차이는 '의료자원이라는 것이 한정된 자원인가?' 라는 질문에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일단, 이러한 답을 갖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미국에서 환자들을 보면서, 그 어떤 것보다 개별환자의 치료를 위해서 모든 것을 올인하는 의사와 그러한 진료비를 감당하는 환자(실제는 사보험)들을 보면서 '이런 시스템에서 당연히 전국민 의료보험이 가능할 리가 없지'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비유하면 미국의료시스템은 헌터 빨무였습니다. 돈이 얼마가 들어가더라도, 어떤 약이든, 새로운 수술방법이든 최첨단으로 시도합니다. 돈이 얼마가 들어가는 것보다, 환자의 치료에 대한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였습니다. 모든 진료방침은 환자입장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환자와 의사의 치료관계는 사실상 계약관계로 받아들여집니다. 환자는 최첨단의 치료를 받아야 하고, 환자가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면 간혹 소송으로 이어지게 됩니다만, 심각한 부작용이나 범죄 같은 고의성이 없다면, 환자들은 본인이 선택한 일에 대한 결과의 책임을 부여받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민영의료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본인이 원하는 치료를 받기 위해서 최대한의 자기결정권을 발휘하고, 발생하는 모든 비용과 결과에 책임을 진다는 것입니다. 의료행위를 하려면 수많은 동의서를 작성해야 하고, 수많은 서류에 사인해야 합니다. 전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공공성이 강조되던 일본에서는 대학병원에 환자가 일차의료기관의 소개장 없이 예약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과 유사하긴 하지만, 한국과 비교하면 일차(의원)-이차(종합병원)-삼차(대학병원) 의료기관들이 팀을 이루어서 움직이다보니, 의료자원의 효율적 분배가 훨씬 쉽습니다. 그리고 대학병원이라고 환자가 많거나 진료행위가 쏠린다기 보다는, 1차에서 주로 외래를 담당하고, 응급이나 입원이 필요한 경우에는 2차, 특이 케이스나 연구케이스는 3차에 배분이 됩니다. 저희 아이가 시내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피부 봉합이 필요해 급하게 119를 불렀는데, 환자 이송에 대해서는 환자의 희망보다는, 현재 의료기관의 상황에 맞추어서 배분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있던 대학병원에서는 응급실도 환자가 안오는데, 담당교수님께 물어봤더니 '응급환자가 많이 오면 교수들과 대학원생들이 연구와 교육에 집중을 못하니 가급적 받지 않기로 정책을 정했다'고 합니다. 나름 최대한 자기위치에서 자기역할을 최대치로 뽑아내자는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미국과는 달랐습니다. 의사-환자관계는 계약관계라던지 환자의 자기결정권 보다는, 의사쪽에 더 중점을 둔 상황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전국민 의료보험을 시행하는 나라이며, 최근 몇년사이 의료의 공공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 상관 없이 모두에게 평등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당연한 상식처럼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비보험이라는 일종의 병원 자유이용권이 생긴 이후로는 의료가 민영화로 흘러가는 것이 가속화 되었습니다. 돈이 얼마가 들어도, 어떠한 의료자원이 소모되더라도,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치료결과에 대한 불만족, 수도권과 지방의 차이등으로 환자들은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하고 방법을 찾아내려 노력들이 최근에 나오고 있는 의대증원, 필수의료 지원등등 이라고 보여집니다. 저는 지금 한국의료가 갖는 의료서비스 불만족의 원인은, 서로 반대 방향 의료시스템의 공존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공의료라는 틀에서 최대한 민영의료의 장점을 살리려는 노력이 지난 세월동안 한국 의료시스템의 발전을 만들어낸건 자명합니다만, 이제는 한계에 도달하지 않았나 싶고, 이제 우리도 새로운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씀드리며 마무리 하겠습니다.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4-01-16 08:34)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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