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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2/11/02 21:45:47
Name   하마소
Subject   슬픔과 가치
태초의 인터넷, 정확히는 PC통신 따위를 망라한 네트워크 세계는 필시 기술자본을 축적한 이들의 영역이었읍니다. 그 덕일까요. 대다수의 공간은 실증주의에 기반한 기술적 헤게모니의 지배 하에 놓여있었고, 담론 주도자들이 이끌어온 형태 또한 필요 이상으로 건조했지요. 여러 사건과 사태들에 대하여 가치중립적이란 표어를 대동한 접근 이후 사회의 주요한 전제를 해체하여 이행되는 사고 실험 따위는 이른바 담론가들의 지적 유희따위로 드러나곤 했읍니다. 요즘은 웃음벨 마냥 조롱거리로 전락해버린 시사만화의 한 장면, 인터넷은 어떠한 정체에 대한 구분도 없는 초월의 세계라는 장면을 잠시 떠올려 봅니다. 아마 비슷한 정도의 섬뜩함으로, 그 말이 틀리지 않았을 시대가 있읍니다. 모든 종류의 가치와 존엄이 해체됨을 종용받던 공간일 때를 떠올려 본다면.

물론 전연령, 대다수의 인류가 사용하게 된 인터넷은 이러한 특성을 강하게 공유하는 영역이 아니겠지요. 그럼에도 인터넷의 세상은 여전히 실증적이고 건조합니다. 개체가 텍스트로 환원되는 공간에서 개인의 현시를 타인에게 가닿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떠올려보면 긍정보다 부정으로 응답하기 더 용이한 건 무리가 아니지요. 구성원들 간의 친밀과 유대를 인터넷 내 준거 집단이 추구하는 공정과 평등에 가장 반하는 근간으로 지적해온 사례가 셀 수 없어져온 것 또한 이를 입증할만한 근거 중 하나가 되겠죠. 최소한 인터넷이라는 세계가 온유한 감정의 동기화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기능해온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어요. 그래서, 사실 세월호의 경우는 응당 그러할 만 했던 참극인 것과 별개로 꽤나 이례적인 모습으로 나타났읍니다.

모든, 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의 인터넷 페이지들이 이를 추모하며 함께 슬퍼했다는 건 이 사건이 얼마나 불행하며 일어나서는 안될 참극이었는 지를 드러냅니다. 다만 그렇게나 되새기기에 모자람 따위 없는 충격의 비극조차 인터넷이 키워낸 실증적 의지는 이를 다른 방향으로 수용할 것을 요구하죠. 어느 순간 슬픔으로의 침잠 및 정서적 동기화는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지고 폄훼됩니다. 범인을 밝혀내고 처단해야 한다는 이른바 전복적 정서의 발현 앞에서든, 혹은 생산 동력을 저해하는 침잠을 떨쳐내고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는 체제 수호의 의지 발현과 마주하든. 그리고 인터넷을 현실과 유리된 한 줌의 정서, 찻잔 속의 태풍으로 여기기에 2014년은 너무나도 최근이었죠. 정말 중요한 건 그 둘 사이에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잘 것 없다 여겨지는 마음과 마주하는 일이 굳이 밀쳐져야 할 이유를 저는 모르겠읍니다. 다만 그 곳의 광장을 떠들썩하게 만들어온 많은 이들은 그걸 알고 있었겠죠. 무가치한 감정의 거래행위로 여겨지는 것들보다 우월하게 수호되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도.

그 덕일까요, 이 시점에서 저는 몇 년 전인가의 의대생 익사 사건을 떠올립니다. 몇몇 커뮤니티 등을 필두로 한 열광을 등에 업었던 사건이지요. 그 의견들에는 비단 높은 성적으로만 달성할 수 있는 '의대생'이라 물화된 가치를 드러낸 지점과는 좀 다른 의미들이 담겨 있어요. 희생자의 부친을 향한 응원의 대부분에는 '힘든 상황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고 이성과 논리를 바탕으로 수사에 적극 관여하며, 불필요한 감정을 표출하는 등의 행동따위를 억제하여 지켜보는 이들에게 감정적 전이를 시도하지 않는다'는 평이 담겨 있었읍니다. 사실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큰 충격이었어요. 절제와 목적 일변도의 행위 기전을 모범화하여 정형화된 이른바 '개념탑재 피해자'의 자세를 보며, 인터넷 상에서 다뤄지는 개인이란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해체되어야 하는 존재인지를 생각해야만 했으니. 감정을 적극적인 배제의 영역으로 밀어내는 것이 문제와 마주한 이들의 모범으로 여겨지는 건 이미, 혹은 여전히 만연한 감각이라는 걸 실감했읍니다. 비록 그 결말만큼은 그리 만연한 감각을 만족시키지 못했음에도.

지금은 정체성 따위를 파악할 길 조차 흐릿해진 모 씨의 저서에 따르면, 원인 이전에 범인을 찾아 헤메는 사회는 전근대적 사회의 표상이라 했지요. 그러나 범인의 지적을 배제할 수 있도록 원인의 파악을 유리시키는 건 결코 쉬이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상황을 이끌어낸 요소들, 그리고 그 요소들이 존재하는 사회 전반을 소급하여 이를 메타적으로 인지함에 이르지 못한다면 원인에 접근하는 일은 필경 책임 주체의 지적으로 귀결될 뿐입니다. 그 정도의 시야와 의지, 책임을 갖고 분석에 임하는 이들은, 그리고 그런 이들의 언어는 그 중 얼마나 될까요 과연. 결국 그 자리에 남겨지는 건 더 깊은 문제로 이어지지 않을 성토 혹은 냉소가 전부겠죠. 그런 사회에서도, 우리들 중 많은 이들은 삶의 많은 시간을 쏟고 있는 인터넷 속에서 감정과 교감하는 걸 의식적으로 피하곤 합니다. 더 도움되고 쓸모있는 실증적 접근과 함께 해야 한다는 강박 아래에, 감정에 천착한 무능함과 조우하고 싶지 않다는 위기감으로 무장하여. 진짜 무능한 건 무엇일까요. 우리 모두가 반드시 원인 혹은 범인의 정체를 고찰해야 하는 게 과연 짊어질 수 있는, 혹은 짊어져야만 하는 의지이긴 한가요.



또 다시 비극적인 참사가 발생했고, 관련한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솔직한 마음을 가감없이 나누며 기꺼이 슬픔을 떠안으려 하고 있는 모습이 익숙하지만, 역시나 보고 있기 괴로운 이야기들이 여러 매체와 매개를 통해 난립하고 있는 것 또한 현재진행형이죠. 그저 무시함을 넘어 시선을 둘 일말의 가능성조차 주지 말아야 할 그리 많지 않은 위해 언어들을 제외한다면, 그 괴로움의 근간은 종종 우리의 이야기가 필시 옳으며 생산적인 무언가를 담보해야만 한다는 자기 확신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사람의 상상력은 생각보다 넓거나 깊지 않아요. 옳으며 생산적이라 일컬어지는 범주의 언어에 생산적 행위를 향한 함의가 담길 소지가 크다는 건 쉬이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겠죠. 그럼 우리는 대체 무엇을 생산적이라 말해왔을까요.

사고 이후에도 사람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군집을 이루고, 이따금의 혼잡 속에 부딪힘을 경험합니다. 불과 며칠 간의 경험일 뿐이지만, 모두의 움직임에 긴장이 역력해보였어요. 서로를 밀쳐내는 순간이 섬뜩했읍니다. 제대로 밀쳐내지 않으면 내게 위해가 미칠 거라는 우려가 담긴 듯한 움직임에 무언가가 떠올랐읍니다. 무관히 남겨진 사람들은 누구든 자신의 삶을 살아가겠지만, 한파는 알게 모르게 그 남겨진 사람들의 곳곳을 훑고 지나갈테고, 이는 의식하지 않으면 체감하지 못하는 상흔이 되죠. 그저 타인일 뿐이었던 존재가, 나를 위협할 지도 모를 인파의 물결이 될 수 있다는 감각이 사회 전반에 대한 안정감을 공포로 탈바꿈하는 동력으로 전환될 지도 모를테고, 이 걱정이 서서히 머릿 속을 채워나가네요.

마음을 이야기하는 건 그간 '생산적'인 담론으로 여겨져온 영역을 벗어나는 논의겠지요. 언제나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대책은 이를 밖으로 내몰기에 바빴으니. 비극을 계산의 문제로 환원시킴이 당연한 사회에 우리가 놓여있다면, 앞으로의 지하철, 번화가 등의 인파와 마주한 순간은 그저 넘어지지 않기 위한 공포의 단서 이상으로 작용할 수 없을 거예요. 슬픔을 나누고 보듬는다는 건, 같은 비극에 처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서로에게 의식화됩니다. 서로에게 공유되는 잊지 않겠다는 마음이 익숙해질 즈음이 된다 해도 상흔이 바로 사라지진 않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인파 속의 한 걸음에 서로를 향한 약간의 믿음 정도는 더해질 수 있겠죠. 더는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서로로부터 확인할 수 있는 단서로. 그래서, 그 무익하고 무가치하며 비생산적인 행동을 오늘도, 아마 앞으로도 당분간은 떠올릴 수 있는 동안 거듭하게 됩니다. 저는 그냥 무능한 사람으로 남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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