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 22/09/05 00:34:05 |
Name | whenyouinRome... |
Subject | 우리는 조금씩 성장한다. |
안녕하세요. 오늘 풋살 경기 끝내고 집에 와서 괜시리 기분이 좋아서 주절주절 해봅니다. 예전에 탐라에 한 번 쓴 적이 있는데 제가 함께하는 풋살 팀은 굉장히 어린 팀이예요. 그리고 굉장히 못하는 팀이었죠. 대부분 20대 초반이고 저 제 친구, 친한 형 정도만 30대 후반이고 60대 초반 어르신이 한 분 계시죠. 60대 어르신은 왕년에는 진짜 날아다니셨을 것 같은 상당히 센스가 있으신 분이신대 대신 체력이 좀 안 좋구요. 처음에 풋살 하러 갔을 때 진짜 충격받았거든요. 와... 나도 못하는데 여기 친구들도 진짜 찐이구나... 팀 캐리하는 한 두명 빼고는 죄다 공을 찼는데 뒤로 가거나 공은 안차고 상대 발을 차거나 하는 퍼포먼스는 기본이었고 패스도 제대로 못 하고 압박 조금만 들어오면 바로 뺏기로 어버버 타다 골 먹히고... 저는 운동은 안가리고 다 엄청 좋아하는데 문제는 아주 상급의 몸치라 솔직히 답이 안 나오는 수준이어서(이 팀 전에 있던 팀에 선수 모집하던 친구는 형은 진짜 누가봐도 x못하는데 그 열정이 너무 뜨거워서 어쩔 수 없이 불러준다고 했...) 이 팀에 오기 전까지 항상 민폐of민폐였던 캐릭터였는데 이 팀에 오고 나서는 다 못하니 그냥 즐겁게 공을 찰 수 있었습니다. 근데 우리 팀이 하도 다른 팀과의 경기에서 지기만 하니까 져도 애들이 분하거나 이런게 없더라구요. "와 재밌었다 ㅎㅎㅎ" 라던지 골을 먹히고 "이야 우리 잘 했다ㅎㅎㅎ" 라던지... 정신승리만 하더란 거죠..;;;; 저도 못하는 처지지만 전 지고나면 속상하긴 했거든요.. 그 때는 정말 어쩌다 한 번씩 했었으니까 실력도 안 늘고 어디 가면 반코트 가패당하다가 오고... 그래서 어느정도 인원을 맞춰서 매주 하기로 했습니다. 1년 정도는 우리 끼리만 했던거 같아요.. 그래도 열심히 노력한 덕에 좀 늘기도 하고 해서 예전에 항상 털리던 팀을 불러서 한 번 했는데 좀 뭔가 아쉽게 지더라구요. 근데 그 때 애들이 바뀌더라구요.. 지니까 속상해하고 아쉬워하고.. 그렇다고 실수하고 못하는 친구에게 화를 내지도 윽박 지르지도 않아요. 여전히 다들 즐겁게 하지만 지는 것의 속상함을 배웠다고나 할까요? 우리도 연습 열심히 했는데 아직도 안되나.. 그래도 지나? 뭐 이런 느낌을 받는거 같았어요. 그리고 나서 또 시간 되면 매주 안되면 격주로 연습하는데 확실히 1년 2년이 지나니까 젊어서 그런지 확실히 달라집니다. 공 잡는 거, 트레핑, 드리블, 수비, 슛 하나 하나 어느 순간 보면 성장해 있어요.. 그리고 몇 개월 뒤에 다시 부른 상대 팀.. 진짜 단 한 번도 못 이겼던 팀인데 저번에는 정말 아쉽게 한 끗 차이로 졌다면 이번에는 확실히 다르더라구요. 정말 처음으로 이겼다 소리를 해 본 것 같아요. 그 때 다들 정말 좋아했네요. 항상 지고 동네북 들러리만 서다가 처음으로 그 팀을 이겼는데 그 팀 친구들 충격 받는 표정도 눈에 보이고요... 그 뒤로는 거의 그 팀 상대로는 안 졌던 것 같네요. 정말 못하던 애들이 (저 포함) 지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져도 속상한 것도 모르던 애들이 이젠 누구보다도 승부사가 된 기분이 들어요. 오늘 경기 30분 전쯤 우리 팀원이 갑자기 연락이 와서 자기 직장 선배가 소속된 팀이 구장이 없다는데 같이 하자고 제안이 들어왔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부랴부랴 다들 모여서 그 팀과 갑작스런 친선 경기를 하게 됬어요. 전 진짜 엄청 쫄아서 나왔어요.. 아예 안면이 없는 팀 그것도 매주 정기적으로 하는 정기동호회랑 경기를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거든요. 거기다 그런 팀은 일반적으로 상당히 잘 합니다.. 오늘 경기 가면서 우리팀 또 옥수수 다 털리고 슬퍼하겠네 하고 나갔고 실제로 첫 경기에서는 저도 긴장되고 다리가 후달달거려서 실수 연발이었습니다. 역시나 예상대로 상대팀은 코트도 좌 우로 다 쓰고 패스도 정확하고 개인기도 정말 좋았어요.. 와.. 이거 이기기는 커녕 비비기라도 하겠나 싶더라구요.. 첫 무대인거죠.. 우리 팀이 정말 실제로 실력이 늘었는지 확인해볼 검증할 기회였어요. 여지껏 우리끼리 혹은 우리가 아는 친구들끼리만 하다가 아예 낯선 거기다 잘 조직되고 준비되어있는 팀을 상대하는 거였으니까요.. 두 시간 동안 7:7 경기에 양 팀 다 10명이상의 맴버로 로테이션 돌리며 정말 죽어라 뛴 것 같습니다. 첫 경기에서 1:0으로 이기고 있다가 막판에 2골 먹히며 졌는데 제 생각은 의외로 비빌만 하네? 였어요. 심지어 저희는 베스트 맴버도 아니었고(정말 초보인 친구가 수비를 하는 상황이라) 상대는 전부 장난 아니더라구요. 근데 막상 이 맴버로 2:1이라니.. 전 4:0 예상했는데 그 뒤론 다들 긴장이 많이 풀린 것 같아요.. 두번째 경기 3:0 승 세번째 경기 무승부 등등 마지막 경기까지 우리 팀이 승리로 가져오면서 3승1무2패로 마무리 했네요. 토탈 스코어도 두 골 더 넣었구요... 세상에..... 3년 전에 진짜 8:0 6:0막 이렇게 지고 나서 "헤헤헷 재밌었다. 우와 우리는 이길 수 없는 팀이었다 ㅎㅎㅎ" 하던 애들이 이제 사회인 동호회 팀하고 붙어서도 밀리지 않는거 뿐만아니라 오히려 이기는 모습을 보니 너무 감회가 새롭습니다. 저도 우리 팀이 너무 못해서 좋다고(다들 너무 못해서 내가 못해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함) 와이프한데 말하며 축구 나갔던 몸이라... 지난 시간들이 그저 웃고 즐기던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큰 성장의 시간을 준 것 같았어요. 정말 오늘 경기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여전히 상대 팀보다 개인기도 약했고 패스도 어려웠고 주축 맴버들 로테로 쉬러 나간 경기에서는 골키퍼 vs 상대팀일 만큼 반코트 경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발전했고 지는 것의 속상함을 알았고 우리가 나쁘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어요. 개인기와 패스는 끊임없는 압박과 악착같은 수비로 버티고 막았고 우당탕당 올라간 공격에서는 결국 골을 넣었어요.. 아! 그 못하던 저도 오늘 우리팀 주전 맴버로 공수에 걸쳐서 나름 열심히 뛰었어요.. 정말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물론 져도 괜찮긴 해요.. 하지만 정말 못해서 지는거 말고는 아무것도 못하던 우리팀이 이제 어느덧 이렇게까지 성장했다는 걸 보는건 솔직히 더 좋잖아요. 전 지는게 싫었거든요. 힘들어도 더 뛰어주면 좋겠고, 수비수 달고라도 못넣는 깜이라도 슛이라도 하면 좋겠고.. 그냥 지고 웃으며 즐거웠다 하는 것도 좋지만 그러면서도 다음엔 더 잘해야지 하고 노력하는 거 말이예요.. 근데 저도 너무 못하니까 어떻게 안되잖아요.. 다 같이 노력하는 수 밖에... 오늘은 그 노력의 결실중 하나를 맺은 날인거 같아요. 진짜 우리 팀이 이렇게 잘 할 줄 몰랐다니까요.... 흠.. 이제 슬슬 글 마무리를 해야겠는데요. 그래서 뭐랄까... 아무리 못하는 것도 하다보면 늘더라구요. 물론 도저히 답이 없어 보이는건 포기하는게 더 좋을거예요.. 저도 제가 아예 못하는건 그냥 포기하고 말거든요. 그런데 이건 제가 너무 좋아하는 거구 또 우리 팀이 좋아하는 거구 포기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매주 두 시간 정도 시간 내서 즐겁게 웃으며 하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즐겁게 하다보니 이렇게까지 왔네요... 뭐 세상 일이 다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안 그런일이 더 많으니까 세상살이가 힘든거겠죠.. 그래도 어떤 것들은 노력한 만큼 댓가가 오는 거 같아요... 다음 주도 아마 우리 팀은 풋살을 할 꺼고 그 다음 주도 할 거에요.. 다음 주에 저는 아쉽게도 못 하겠지만 그 다음 주에는 저도 뛰고 있겠죠... 우리는 여전히 조금씩 성장할거예요.. 선수는 아니라도 서로 즐기며 행복하게 공을 차겠죠.. 우리 홍차넷 여러분들도 이런 일이 있으심 좋겠어요.. 못하지만 좋아서 했는데 어느 순간 꾸준히 하다보니 그 결과까지 좋은거.. 그런거 하나 쯤은 있어야 세상 살 맛이 나지 않겠어요? 모두 행복한 한 주 되세요..^^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2-09-20 09:29)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