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1/09/14 16:23:13
Name   쉬군
File #1   1631601994221.jpg (216.1 KB), Download : 19
Subject   물 반컵


식탁에 물이 반만 차있는 컵이 있다.

혹자는 "물이 반밖에 남지않았네." 라며 아쉬워하고

혹자는 "물이 반이나 남아있네!" 라며 감사해 한다.


저번주 주말에는 아이를 데리고 쇼핑몰과 야외 카페를 다녀왔다.

쇼핑몰에서는 자꾸 내 손을 뿌리치고 공룡모형이 있는 곳으로 하염없이 뛰어가서 우리 부부의 진을 빼놓는다.

가벼운 물놀이가되는 야외카페를 갔더니 발에 물이 들어가서 찝찝하다며 미끄러운 대리석에서 계속 신발을 벗고 있겠노라고 떼를 쓴다.

그리고 집중해서 노는데 옆에 다른 친구가 지나가면서 방해를 한다며 그 친구를 밀어 넘어뜨릴뻔 해서 그러면 안되노라고 타일렀다.

하지만 우리 부부의 마음을 아는지 아이는 그저 자기가 하고싶은 것만 묵묵히 하면서 고집만 부려 더욱 지치게 만든다.


근 2년만에 41개월된 아이의 발달장애 검사를 다시 받고 왔다.

결과는 또래 아이들보다 행동발달이 1년반정도 느리다는것.

언어는 아예 말을 못하고 않으니 하위 0.2%라는 수치가 찍혀있다.

이렇게 노력을 하는데도 부족하다 싶어서 얼마나 더 노력해야 좋아지는걸까 하는 답답함이 밀려온다.


--------------------------------------------------------

식탁에 물이 반만 차있는 컵이 있다.

혹자는 "물이 반밖에 남지않았네." 라며 아쉬워하고

혹자는 "물이 반이나 남아있네!" 라며 감사해 한다.



쇼핑몰에서는 자꾸 내 손을 뿌리치고 공룡모형이 있는 곳으로 뛰어가는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확실히 구분하고 그것에서 즐거움과 행복함을 배운다.

발에 물이 들어가서 찝찝하다며 신발을 벗겠다고 떼를 쓰는 아이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줄 안다는 의미이다.

노는데 방해를 하는 친구를 밀어 내는 건 다른 아이들과의 상호작용을 하고 자신의 기분을 표현할 줄 아는 아이라는 것이다. 물론 미는 행동은 위험하다는건 천천히 가르쳐야 겠지만.

하고 싶은 것, 지금의 기분을 표현 할 줄 안다는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 중요한 부분이다. 이 얼마나 다행일까.



다른아이보다 느리고 아직 말을 못하지만 그래도 2년 전의 검사 결과를 보고 있으니 정말 놀랄만큼 많이 자라고 발전했다.

그리고 다른아이들보다 발달이 느릴 뿐 신체적,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는 의사선생님의 진단도 받았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

결국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거지.

나만, 아내만 지치지 않으면 아이는 점점 자랄테니까.

아이가 느린만큼 우리 부부도 조금 천천히 아이 옆을 지키며 함께 걸어가면 되는 것을.



우리 부부가 앉아있는데 아이가 달려오더니 방긋 웃으며 안긴다.

그 사랑스러운 모습에 우리 부부도 기운을 차리고 다시 노력하자고 마음을 다 잡는다.

물이 반만 담긴 컵이라는건 아직 반이나 더 채울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 부부가 힘겨워서 컵을 깨뜨리지 않는 한, 아이는 천천히 이 컵을 가득 채울 것이고.

그때가 오면 잘했다고 칭찬하며 으스러지도록 안아줘야지.

아프다며 놔달라고 아빠를 밀어낼 그날의 넌 지금보다 얼마나 더 사랑스러울까.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1-09-27 19:01)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63
  • 황구가 정말 귀여워요!
  • 춫천
  • 귀여운 황구
  • 황구는 좋은 아이입니다.
  • ❤️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356 요리/음식수상한 가게들. 7 심해냉장고 24/01/17 2200 20
1332 일상/생각나의 은전, 한 장. 6 심해냉장고 23/09/30 2666 24
1302 일상/생각빨간 생선과의 재회 13 심해냉장고 23/05/21 3154 22
1295 문학과격한 영리함, 「그랜드 피날레」 - 아베 가즈시게 6 심해냉장고 23/04/24 2678 16
1055 게임랑그릿사와 20세기 SRPG적 인생 14 심해냉장고 21/01/23 5682 34
1023 창작어느 과학적인 하루 5 심해냉장고 20/10/27 5194 14
992 창작내 작은 영웅의 체크카드 4 심해냉장고 20/08/05 5361 16
972 창작그러니까, 원래는 4 심해냉장고 20/06/18 5370 13
11 체육/스포츠남성의 정력을 증강시키는 운동 69 스타-로드 15/06/05 43247 0
444 게임Elo 승률 초 간단 계산~(실력지수 법) 1 스카이저그 17/06/03 12231 4
1271 일상/생각인생에서 가장 평화로웠던 한 때 12 스라블 23/01/27 3238 25
1362 기타자폐아이의 부모로 살아간다는건... 11 쉬군 24/02/01 3218 69
1351 기타안녕! 6살! 안녕? 7살!! 6 쉬군 24/01/01 2391 29
1329 기타여름의 끝자락. 조금 더 자란 너 7 쉬군 23/09/14 2228 26
1283 기타아빠. 동물원! 동물원에 가고 싶어요! 27 쉬군 23/03/14 3204 61
1221 일상/생각아이스크림 마이따 아이스크림 (50개월, 말문이 터지다) 72 쉬군 22/07/05 4838 90
1157 일상/생각중년 아저씨의 베이킹 도전기 (2021년 결산) (스압주의) 24 쉬군 21/12/31 4316 32
1126 기타물 반컵 12 쉬군 21/09/14 4524 63
1085 기타발달장애 아이들을 위한 키즈카페 추천 2 쉬군 21/05/04 5815 35
1072 기타그럼에도 사랑하는 너에게. 9 쉬군 21/03/22 4456 34
1067 요리/음식중년 아저씨의 베이킹 도전기. 27 쉬군 21/03/08 4656 29
1014 기타30개월 아들 이야기 25 쉬군 20/10/05 5784 47
624 기타예비 아빠들을 위한 경험담 공유를 해볼까 합니다. 19 쉬군 18/04/30 6523 17
618 기타황구 출현 이틀차 소감 15 쉬군 18/04/19 7124 24
556 일상/생각나도 결국 이기적인 인간 2 쉬군 17/12/02 6101 13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