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 게시판입니다.
Date 20/04/08 17:19:46
Name   [익명]
Subject   대학때 조별 수업때 이야기.
행정병으로 복무후 복학하고
타과 전공및 본과전공으로만 수업표를 꽉꽉 채우고 저녁때는 학생들 가르치며 말그대로 주경야독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학비 벌어서 다니다 보니 돈이 너무 아까워서 전공만 들었습니다.
한 수업이 타과 전공이었는데 조별과제를 많이 내주던 수업이었는데
남자1, 여자1, 여자2 모두 현역 그리고 제가 남자2인 네명의 조였죠. 저만 타과생. 그분들은 셋이 동기.
저는 당시에는 모든 쓰는 시간 계산을 하면서 살던 시절이었고요.


이주에 한번씩 나오는 조별과제인데 제가 혼자하면 세네시간정도면 되겠더라고요.
조별로 모이면 시간먹는 괴물이 될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별과제는 못하겠다. 돌아가면서 하자. 대신 다른분들은 반만해주셔라. 내 차례는 나 혼자하고 여러분들 차례는 여러분들과 내가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니 받아들이더라고요.
8번 제출했는데 두번은 혼자하고 (3-4시간) 남은 여섯번은 다른 조원이 자료정리해온걸 한두시간으로 처리했습니다.
수업 물론 혼자 들었었고요.


제가 이렇게 한건 조별모임으로 하면 엄청 더딜것으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도 더 조원들이 더뎌서
자료정리 고작 하는데 전날 학교에서 꼬박 밤새고 그러더라고요.
그때는 같이 밤새줬습니다. (물론 다른 곳에서 다른 과목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질문 오면 처리해주고.)
조원들이 저를 싫어했을지 좋아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 조가 조별점수는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았던건 맞아요.
여튼 맡은 조원이 학교에서 밤을 새면 저도 같이 밤새고 그 조원 불러서 아침에 같이 식사하고
수고했다 말해주고 수업시간에 인사해주면 목례로 답해주고 교류는 그것밖에 없었네요.


여기까지가 배경설명인데
어느날 밤에 갑자기 조원 여자1이 저한테 문자가와서 혹시 오늘도 학교에 계시냐고 물어서 학교에있다고 했더니
(저는 당시에 학교 일하고 다시 학교 집에서는 잠만자거나 잠도 학교에서 잘때도 많던 시절)
그러면 본인이 학교로 오겠다는 겁니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시던 분이시라 얼마 안지나서 저보고 어디계시냐는겁니다
제가 있는 곳을 알려줬더니 거기로 가겠다고 하더군요.
저는 이때까지 공부하다가 모르는게 있나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잠깐 까페(학교안)로 내려가서 모르는거 가르쳐줘야겠다.
얜 밝고 나 보면 나한테 인사도 잘해주니깐 한시간까지는 얘 공부 가르쳐주는데에 써줄수 있지라며
보시면 웃기겠지만 저 나름은 엄청 선심쓸 각오하고 오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커피한잔 마시려고 자리에 앉았는데
제 예상과는 달리 갑자기 펑펑 우는 겁니다.


저는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기때문에 아직도 그분이 왜 울었는지 모릅니다.
울기 시작하길래 저는 아무 말도 안했어요.
묻는거도 실례라는게 첫째고 물어봐서 말을 하게되더라도 그 분 인생에 뭔가 관여하고 싶지 않았던게 둘째였습니다.
저는 누구씨라고 불렀고 그분은 절 오빠라고 부르던 사이였는데
저는 그분 울길래 아무말도 안하고 가만히 있었는데 한참을 울더니
죄송해요. 오빠 저 가볼게요. 비슷하게 말해서 조심히 들어가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수업시간에 만났을때도 그분은 오빠 안녕하세요 하고 저는 목례하고 끝.
학기 끝나고 오빠덕분에 저희 조원들 좋은 학점 받았다고 감사하단 문자가 와서 저도 덕분에 좋은 학점 받았다라고 감사하다고 답했습니다.


짐작은 대충 하셨겠지만 저는 당시에 고의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었어요.
근데 밝고 명랑하고 사교적으로 저한테도 대해줘서 속으로는 귀여워했습니다. 이성적 매력이 있다 이런게 아니고 그냥 귀여운 후배님이네.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타과출신 복학생 수업에 들어온거 보이면 크게 먼저 인사해주는거 귀엽잖아요.
그 수업에서 유일하게 목적없이 나 보면 반가워하면서 말걸어주던 사람인데.
그치만 사회적 거리두기를 했던 이유가 사람이 다 시간이라서 그랬던거라 그와 상관없이 마찬가지로 거리두기를 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살면서 겪기 쉽지않은 뜬금없는 해프닝이 있었다.


근데 얼마전에 그분 소식을 알게되었습니다. 원래 성격은 저도 엄청 사교적인 스타일이거든요.
한 후배랑 동기를 통해 알게되서 술먹으면 그날마다 서로 필름끊고 도원결의 의식을 시행할만큼 친한척 하게 되었는데
(친한 척이지 실제론 안친한거죠. 친하면 저런거 안하죠 ㅋㅋ 다만 사적 교류를 하는 사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후배가 그 과 출신입니다. 갑자기 저도 잊고있던 그때 일이 생각나는겁니다.
그래서 혹시 걔 아냐고 했더니 동기고 나름 친하대요 형이 걔 어떻게 아시냐고 ㅎㅎㅎ 자기가 최근까지 만나는 몇안되는 동기라고
갑자기 얼굴 한번 보고 싶단 생각이 드는데 이거 만나봐도 되나요?
기억속에 귀여웠고 고마웠던 조원 후배님 하나만 괜히 사라지는거 아닙니까? ㅋㅋ
아니 안만나줄수도 있겠군요. 근데 그분 의사와 상관없이 만날순 있을겁니다. 후배가 제가 원한다면 모른척 자리 만들수 있을거같아요.
근데 저한테는 좋은 기억인데 조원후배님께도 제가 좋은 기억일지도 모르겠고
아니 벌써 10년전이라 기억을 할지조차도 모르겠고..
저는 그분이 남자라도 한번쯤 만나고싶은데 여친한테 뭐라 설명하고 만나야될지도 모르겠고 뭐 그렇습니다.


그냥 제 기억속의 좋은 기억으로 두는게 낫겠죠?
울었다 이런게 좋은 기억이란건 물론 아닙니다. 적극적이고 사교적인 타과 복학생도 신경써주시는 인사잘하는 조원 후배님이 계셨었단 좋은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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