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롭고 강력한 강제적 수단이란 결국 법과 제도인데,
명문화된 규칙은 공개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일방적으로 기득권만 유리하게 설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는 구조에서 입법부가 자신들 혹은 자신들과 거래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그 수단을 이용하거나
말씀하신 바와 같이 독재자가 그 수단을 악용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러한 상태가 니부어가 바로잡아야 할 '사회의 비도덕성'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가정은 자기 모순이 되어버립니다.
정의롭고 강력한 강제적 수단이란 결국 법과 제도인데,
명문화된 규칙은 공개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일방적으로 기득권만 유리하게 설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는 구조에서 입법부가 자신들 혹은 자신들과 거래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그 수단을 이용하거나
말씀하신 바와 같이 독재자가 그 수단을 악용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러한 상태가 니부어가 바로잡아야 할 '사회의 비도덕성'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가정은 자기 모순이 되어버립니다.
즉, 어떠한 캐릭터를 가진 지도자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그 수단이 정당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잘 정비된 규칙을 정하는 것이 니부어의 사회정의라고 생각할 수 있겠고
도덕적인 개인의 승인 없이 사회가 강제적 수단을 쓴다고 표현하셨는데 이는 엄격히 말하면 틀린 말입니다.
니부어의 탄생이 19세기 말, 활동한 것은 20세기 초인데
이때는 서구에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서서히 자리잡히기 시작한 시기이며 초기 사회주의가 대두되던 시기입니다.
하물며 사회의 권력이란 개인이 위탁함으로서 생겨난다는 사회 계약설은 이미 18세기부터 등장하여
근대에 이르러서는 상세한 내용은 다소 변경되었으나 거의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부분으로
사회의 형성에서부터 이미 도덕적인 개인은 사회에서 발생하는 비도덕적인 상황에 대한 제어권을
사회에 위임했다고 해석해야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