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을 올리는 게시판입니다.
Date 21/02/11 00:26:13
Name   사조참치
File #1   KakaoTalk_20210211_002331372.jpg (137.2 KB), Download : 16
Subject   궁평항에서


원래 주말의 궁평항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햇살도 강하지 않은데 어쩐지 큰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수상하게 사이가 좋은 중년의 커플도 있고, 어쩐 일인지 교복을 입고 까불거리는 학생들도 있고, 스포츠 마스크와 스포츠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과묵한 낚시꾼도 있고요. 저 같이 이상야릇한 사진 관련 용품을 주렁주렁 메고서 기웃기웃 거리다가 사진을 한참이나 찍는 사람도 있고요. 한 잔 드시고 가시라며 은근슬쩍 손님을 유도하는 횟집과 매운탕집. 그리고 바지락 칼국수집까지 말이죠.

코로나가 우리의 삶을 참 많이 바꿔놓았다고 생각해요. 코로나로 인해서 사람들이 하나도 없는 주말의 궁평항이 낯설었어요. 문을 닫은 횟집과 바지락 칼국수집들. 인적이 끊겨 눈이 그대로 쌓여있는 주차장. 이럴 수가 있구나 싶더라니까요.

이 사진을 찍었던 작년 말. 저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고, 그 회사에서 만났던 여자친구와 헤어졌고, 갑작스럽게 반지를 잔뜩 사서 주렁주렁 차고 다니기 시작했고, 몸에 이상이 발견되어 초등학교때 이후로 가장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했던 때였어요. 시끌시끌한 항구에서 기운을 받고자 간 궁평항은 죽은 도시처럼 황량하기 그지 없었고, 그 어색함에 한참이나 카메라를 들고 서성이다가 스무 장 남짓 사진을 찍고 기운이 쭉 빠져서 집에 돌아왔던 기억이 나요.

흐릿한 구름이 가득한 날씨 속에서도 한 줄기 햇빛을 보고서 반사적으로 셔텨를 누르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한참이나 이 사진을 보았어요. 잘 되겠지. 잘 될꺼야.

새해가 되고, 생각보다 꽤 괜찮은 회사로 이직이 순조롭게 되었고, 건강도 많이 괜찮아졌으며, 반지는 여전히 잔뜩 끼고 다니고 있죠. 또 최근에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서 조심스럽게 진전이 되고 있기도 해요 신기하게도. 요즈음의 궁평항은 저처럼 괜찮아졌을까요. 아니면 여전히 한적할까요. 궁금해져서 내일 또 버스를 타고 궁평항으로 달려 가 보려고요.



5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2284 풍경/야경새해 첫 해넘이 나단 21/01/01 3995 5
    2290 풍경/야경[a shot] 겨울의 벚꽃 5 민트라떼 21/01/09 2735 5
    2300 여행스냅[a shot/2nd wk] 어두운 방에 홀로 남아 8 Caprice 21/01/14 3635 5
    2303 풍경/야경[a shot] you must believe in spring 6 blu 21/01/14 3440 5
    2309 기타[a shot] 늦은 밤 총총걸음 6 민트라떼 21/01/17 3130 5
    2329 인물/동물고양이 자랑 6 시테 21/02/08 2966 5
    2334 풍경/야경궁평항에서 4 사조참치 21/02/11 2960 5
    2736 풍경/야경삼양라운드힐 4 blu 24/01/29 6657 5
    2356 풍경/야경프레임 분리 4 blu 21/03/12 3062 5
    2363 인물/동물색수차 효과 연습 5 시테 21/03/23 3544 5
    2366 풍경/야경뒷 산 벚꽃 1 사십대독신귀족 21/03/30 3064 5
    2368 풍경/야경저도 꽃사진 2 시테 21/04/02 2876 5
    2391 풍경/야경지리산둘레길 걷다 찍은 사진 3 4 싸펑피펑 21/05/25 3319 5
    2400 풍경/야경한남동 골목 2 싸펑피펑 21/06/15 3060 5
    2403 풍경/야경한강철교 blu 21/06/23 2964 5
    2408 풍경/야경마당의 코스모스 싸펑피펑 21/07/06 2372 5
    2409 풍경/야경능소화 1 싸펑피펑 21/07/07 2457 5
    2417 풍경/야경선녀바위 일몰 1 정말놀라운가격 21/07/20 3096 5
    2432 일상스냅맛있는 백설기가 될 시간 1 SCV 21/08/17 2829 5
    2434 인물/동물아기 되지빠귀 탈출!! 6 엘에스디 21/08/19 3598 5
    2446 풍경/야경연휴의 산책길 1 shadowtaki 21/09/23 2957 5
    2447 풍경/야경하동 평사리 5 싸펑피펑 21/09/24 3301 5
    2449 일상스냅무화과 케이크 3 싸펑피펑 21/09/28 2911 5
    2451 일상스냅해질녘 구름같은 그림 아니 그림같은 구름 2 Clippy 21/09/30 2940 5
    2462 풍경/야경서울의 가을 야경 2 메존일각 21/10/29 3090 5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