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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9/05/07 19:15:46 |
Name | 알겠슘돠 |
Subject | 동반자살 아닌 타살… 아이들은 부모도, 죽음도 선택할 수 없었다 |
http://news.zum.com/articles/52292195 2일 전 어느 기사에 달았던 저 리플이 생각나게 합니다. https://kongcha.net/?b=34&n=15317&c=73770 아직도 소유물로 여기는 인식이 언제쯤 고쳐질 것인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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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비뚤게 보는것 같지만 전 다르게 봅니다.
부모는 불행했어도 아이들은 행복하게 살 수 있는거 아니냐고 하지만 현실은 정상적인 부모가 있는 집안 아이들조차 행복하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미래도 마찬가지구요. 하물며 고아원에 맡겨지게될 아이들이 성장해서 행복을 찾을 가능성을 고려하는건... 막연하고 무책임한 낙관주의가 아닌가 싶습니다. 막말로 아이들에게도 생존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 그 아이들을 책임져줄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나중에 나이먹어서 죽을래야 죽을 용기도 안나는 상황에 산 송장처럼 살 바엔 그냥 아무것... 더 보기
부모는 불행했어도 아이들은 행복하게 살 수 있는거 아니냐고 하지만 현실은 정상적인 부모가 있는 집안 아이들조차 행복하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미래도 마찬가지구요. 하물며 고아원에 맡겨지게될 아이들이 성장해서 행복을 찾을 가능성을 고려하는건... 막연하고 무책임한 낙관주의가 아닌가 싶습니다. 막말로 아이들에게도 생존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 그 아이들을 책임져줄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나중에 나이먹어서 죽을래야 죽을 용기도 안나는 상황에 산 송장처럼 살 바엔 그냥 아무것... 더 보기
좀 비뚤게 보는것 같지만 전 다르게 봅니다.
부모는 불행했어도 아이들은 행복하게 살 수 있는거 아니냐고 하지만 현실은 정상적인 부모가 있는 집안 아이들조차 행복하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미래도 마찬가지구요. 하물며 고아원에 맡겨지게될 아이들이 성장해서 행복을 찾을 가능성을 고려하는건... 막연하고 무책임한 낙관주의가 아닌가 싶습니다. 막말로 아이들에게도 생존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 그 아이들을 책임져줄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나중에 나이먹어서 죽을래야 죽을 용기도 안나는 상황에 산 송장처럼 살 바엔 그냥 아무것도 모를때 죽는게 훨씬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들이 아이들과 동반자살을 하는것은 소유물로 여기는게 아니라 부모로서의 해줄수 있는 마지막 책임을 다하는게 아닐까 싶네요.
부모는 불행했어도 아이들은 행복하게 살 수 있는거 아니냐고 하지만 현실은 정상적인 부모가 있는 집안 아이들조차 행복하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미래도 마찬가지구요. 하물며 고아원에 맡겨지게될 아이들이 성장해서 행복을 찾을 가능성을 고려하는건... 막연하고 무책임한 낙관주의가 아닌가 싶습니다. 막말로 아이들에게도 생존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 그 아이들을 책임져줄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나중에 나이먹어서 죽을래야 죽을 용기도 안나는 상황에 산 송장처럼 살 바엔 그냥 아무것도 모를때 죽는게 훨씬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들이 아이들과 동반자살을 하는것은 소유물로 여기는게 아니라 부모로서의 해줄수 있는 마지막 책임을 다하는게 아닐까 싶네요.
행복에 대한 보장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동시에 반드시 불행할 사람도 없습니다.
그 불확실성에 대한 선택을, 그 가치판단을 왜 부모가 하고, 생사여탈권을 무슨 권리로 가진다는 겁니까.
걔 중에 행복해질 사람이 전혀 없을까요?
책임져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써 사회보장제도가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 본인이 자립을 하던, 입양이든 어떤 형태로든 행복한 삶으로 갈 가능성은 일정 부분 열려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무 것도 모를 때 죽을 게 나을 지도 모른다던가,... 더 보기
그 불확실성에 대한 선택을, 그 가치판단을 왜 부모가 하고, 생사여탈권을 무슨 권리로 가진다는 겁니까.
걔 중에 행복해질 사람이 전혀 없을까요?
책임져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써 사회보장제도가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 본인이 자립을 하던, 입양이든 어떤 형태로든 행복한 삶으로 갈 가능성은 일정 부분 열려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무 것도 모를 때 죽을 게 나을 지도 모른다던가,... 더 보기
행복에 대한 보장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동시에 반드시 불행할 사람도 없습니다.
그 불확실성에 대한 선택을, 그 가치판단을 왜 부모가 하고, 생사여탈권을 무슨 권리로 가진다는 겁니까.
걔 중에 행복해질 사람이 전혀 없을까요?
책임져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써 사회보장제도가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 본인이 자립을 하던, 입양이든 어떤 형태로든 행복한 삶으로 갈 가능성은 일정 부분 열려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무 것도 모를 때 죽을 게 나을 지도 모른다던가, 부모로서의 마지막 책임일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게 훨씬 나이브한 생각으로밖에 안 보입니다.
말씀하신 부분엔 하나도 동의할 수 없네요.
그 불확실성에 대한 선택을, 그 가치판단을 왜 부모가 하고, 생사여탈권을 무슨 권리로 가진다는 겁니까.
걔 중에 행복해질 사람이 전혀 없을까요?
책임져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써 사회보장제도가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 본인이 자립을 하던, 입양이든 어떤 형태로든 행복한 삶으로 갈 가능성은 일정 부분 열려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무 것도 모를 때 죽을 게 나을 지도 모른다던가, 부모로서의 마지막 책임일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게 훨씬 나이브한 생각으로밖에 안 보입니다.
말씀하신 부분엔 하나도 동의할 수 없네요.
그거 '보육원 출신들은 구질구질하게 살아갈 바에야 그냥 어릴 때 다 일찍 죽는 게 나았을걸'를 함축하는 주장이십니다.. 차별발언이에요.
행복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만을 가지고 아이들의 살 권리를 주장하는것이 무책임하다는겁니다. 누군가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행복을 얻게 될수 있지만 그게 결코 다수가 되기도 힘들 뿐더러 유의미한 가능성이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사회보장제도가 있죠. 고아들을 위해 여러 의무를 면제하거나 우대사항을 주고 국가적인 수준에서 사회에 적극적으로 편입시키려고 합니다. 그렇게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아가 아닌 정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나는 사람들이 행복을 얻을 가능성보다는 훨씬 적습니다.
이유는 간단하죠. 세상... 더 보기
사회보장제도가 있죠. 고아들을 위해 여러 의무를 면제하거나 우대사항을 주고 국가적인 수준에서 사회에 적극적으로 편입시키려고 합니다. 그렇게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아가 아닌 정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나는 사람들이 행복을 얻을 가능성보다는 훨씬 적습니다.
이유는 간단하죠. 세상... 더 보기
행복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만을 가지고 아이들의 살 권리를 주장하는것이 무책임하다는겁니다. 누군가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행복을 얻게 될수 있지만 그게 결코 다수가 되기도 힘들 뿐더러 유의미한 가능성이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사회보장제도가 있죠. 고아들을 위해 여러 의무를 면제하거나 우대사항을 주고 국가적인 수준에서 사회에 적극적으로 편입시키려고 합니다. 그렇게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아가 아닌 정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나는 사람들이 행복을 얻을 가능성보다는 훨씬 적습니다.
이유는 간단하죠. 세상은 커녕 사람 자신 조차 의지만을 가지고 바꾸기가 힘드니까요. 부모들이 삶을 비관해서 자신들을 버리고 자살했다는 정신적인 고통은 항상 따라다닙니다. 인격 성장에 가장 중요한 시기인 아동기와 청소년기때부터 심각한 트라우마를 갖고 살게되는데 성인이 돼서도 그러한 트라우마를 무탈하게 완전히 극복하는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안좋은 영향을 미치게 되죠. 물론 사람이 인격적으로 성장하는데 있어서 고통은 필요합니다만 그 고통이 극복도 불가능할 뿐더러 항상 자신을 괴롭힌다면 그저 비인간적인 고통이죠. 누군가가 행복해질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그렇지 못한 다수에게 필연적인 불행이 뒤따르는게 명백함에도 생존권을 요구하는건 이기적인 생각이 아닐까요.
사회보장제도가 있죠. 고아들을 위해 여러 의무를 면제하거나 우대사항을 주고 국가적인 수준에서 사회에 적극적으로 편입시키려고 합니다. 그렇게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아가 아닌 정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나는 사람들이 행복을 얻을 가능성보다는 훨씬 적습니다.
이유는 간단하죠. 세상은 커녕 사람 자신 조차 의지만을 가지고 바꾸기가 힘드니까요. 부모들이 삶을 비관해서 자신들을 버리고 자살했다는 정신적인 고통은 항상 따라다닙니다. 인격 성장에 가장 중요한 시기인 아동기와 청소년기때부터 심각한 트라우마를 갖고 살게되는데 성인이 돼서도 그러한 트라우마를 무탈하게 완전히 극복하는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안좋은 영향을 미치게 되죠. 물론 사람이 인격적으로 성장하는데 있어서 고통은 필요합니다만 그 고통이 극복도 불가능할 뿐더러 항상 자신을 괴롭힌다면 그저 비인간적인 고통이죠. 누군가가 행복해질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그렇지 못한 다수에게 필연적인 불행이 뒤따르는게 명백함에도 생존권을 요구하는건 이기적인 생각이 아닐까요.
제 친구중에 고아가 있는데요, 지금은 연락이 좀 뜸하지만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친하게 지냈던 친구 중 한명이었습니다.
얼마나 인싸였는지 처음에는 몰랐다가 친해진 지 몇년 만에야 제가 한 말실수때문에 그 친구가 고아인지 알았어요.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이 친구는 죽는게 나을 인생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네요?
다른 사람의 인생을 함부로 재단하려하지 마세요. 그런 비난을 받을 사람들은 따로 있습니다.
얼마나 인싸였는지 처음에는 몰랐다가 친해진 지 몇년 만에야 제가 한 말실수때문에 그 친구가 고아인지 알았어요.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이 친구는 죽는게 나을 인생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네요?
다른 사람의 인생을 함부로 재단하려하지 마세요. 그런 비난을 받을 사람들은 따로 있습니다.
첫 댓글은 공감을 할 수가 없었는데, 두번째 댓글을 보고 타키투스님의 생각을 좀 더 명료하게 알 수 있었네요.
말씀하신 부분(특히 트라우마)에 공감되는 부분도 있구요.
다만, 저는 삶의 가능성을 타의에 의해 닫을 수 있다는 부분에는 동의를 못하겠습니다.
저는 죽음이 말씀하신 필연적인 불행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불행하다고 생각해서 그 소수의 행복 가능성에 더 방점을 두고 또한 유의미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부분에서 타키투스님과 제 의견이 갈리는 것 같아요.
또한 행복은 매우 상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서, 죽는 게 더... 더 보기
말씀하신 부분(특히 트라우마)에 공감되는 부분도 있구요.
다만, 저는 삶의 가능성을 타의에 의해 닫을 수 있다는 부분에는 동의를 못하겠습니다.
저는 죽음이 말씀하신 필연적인 불행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불행하다고 생각해서 그 소수의 행복 가능성에 더 방점을 두고 또한 유의미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부분에서 타키투스님과 제 의견이 갈리는 것 같아요.
또한 행복은 매우 상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서, 죽는 게 더... 더 보기
첫 댓글은 공감을 할 수가 없었는데, 두번째 댓글을 보고 타키투스님의 생각을 좀 더 명료하게 알 수 있었네요.
말씀하신 부분(특히 트라우마)에 공감되는 부분도 있구요.
다만, 저는 삶의 가능성을 타의에 의해 닫을 수 있다는 부분에는 동의를 못하겠습니다.
저는 죽음이 말씀하신 필연적인 불행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불행하다고 생각해서 그 소수의 행복 가능성에 더 방점을 두고 또한 유의미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부분에서 타키투스님과 제 의견이 갈리는 것 같아요.
또한 행복은 매우 상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서, 죽는 게 더 나을 (미래의 삶)을 부모를 포함한 타인이 재단하고 판단하는 게 옳지 않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이기적이며 무례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말씀하신 대로 이기적일 수도 있고, 나이브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저는 삶은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위 기사와 같은 동반자살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말씀하신 부분(특히 트라우마)에 공감되는 부분도 있구요.
다만, 저는 삶의 가능성을 타의에 의해 닫을 수 있다는 부분에는 동의를 못하겠습니다.
저는 죽음이 말씀하신 필연적인 불행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불행하다고 생각해서 그 소수의 행복 가능성에 더 방점을 두고 또한 유의미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부분에서 타키투스님과 제 의견이 갈리는 것 같아요.
또한 행복은 매우 상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서, 죽는 게 더 나을 (미래의 삶)을 부모를 포함한 타인이 재단하고 판단하는 게 옳지 않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이기적이며 무례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말씀하신 대로 이기적일 수도 있고, 나이브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저는 삶은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위 기사와 같은 동반자살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음... 일단 논란이 있을 수도 있는 의견인 것 같은데 용기내서 공유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에 호응해서 상당히 비주류에 속하는 의견을 저도 제시해보고 싶은데, 저는 세상에서 제일 과대평가된 두 가지 가치가 '행복'과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이견이 많을 것 같은 돈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 해보면 많은 돈을 축적하는 것이 행복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실제로 중시하고 있는 가치는 그게 아닌 경우가 많더라고요. 다만 본래의 목표를 수행하는 수단적 가치로서 돈이 워낙 쉬운 해결책... 더 보기
음... 일단 논란이 있을 수도 있는 의견인 것 같은데 용기내서 공유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에 호응해서 상당히 비주류에 속하는 의견을 저도 제시해보고 싶은데, 저는 세상에서 제일 과대평가된 두 가지 가치가 '행복'과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이견이 많을 것 같은 돈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 해보면 많은 돈을 축적하는 것이 행복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실제로 중시하고 있는 가치는 그게 아닌 경우가 많더라고요. 다만 본래의 목표를 수행하는 수단적 가치로서 돈이 워낙 쉬운 해결책이라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착시에 빠진 경우가 대부분이죠. 예를들어 부모로부터의 인정은 가족주의가 강조되는 한국의 일반적인 가정 환경을 떠올려봤을때 자녀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로 채택할 확률이 높은데 돈이 이것을 달성하는 것에 있어서 너무나 잘 먹히다보니 그토록 돈에 얽메는 것 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부모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애초에 그토록 중요한 가치가 아니었거나 그들이 돈을 그리 중시하지 않는 성격의 사람들이었다면 굳이 그것에 그렇게까지 높은 가치를 부여할까라는 의문점이 계속 멤돌아서요. 이는 배우자와 자녀로부터 존경 받는 것을 자신의 최대 가치로 설정한 꽤나 일반적으로 상정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동일한 맥락에서 파악 가능하고요. 그러니까 삶의 목적이라는 것이 돈의 액면 그 자체의 가치인 단순히 얼마나 많은 재화를 축적할 수 있는가라는 물욕 그 자체에서 나온다는 환원론적 설명은 인간의 삶이 갖는 맥락적 다면성을 상당 부분 누락시키고 있다고 봅니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보면 오히려 돈 그 자체가 아닌 그 이면이 암시하는 바-부모에 대한 효, 가장의 희생, 자기 과시, 경쟁에서 승리했다는 도취감 등등-이 갖는 힘이 훨씬 강한 편이라고 보는 편이 맞겠죠. 실제로 제 자신의 인생을 돌아봐도 저를 가장 가슴뛰게 만들고 희열에 잠기게 했던 순간들은 돈 그 자체와는 상당히 무관한 것들이 많기도 했고요. 물론 그렇다고 방글라데시의 행복지수를 들먹이면서 가난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진 않습니다. 가난이 개인에게 안겨주는 비루함과 고난은 결코 무시할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고 2요인 이론에서 금전이 상당히 중요한 위생요인에 중 하나에 해당하는 것도 이 때문일테니까요. 다만, 굳이 여기까지 이야기한 것은 이어지는 현대적 '행복론'을 비판하고 싶어서 그런 것인데요. 행복이라는 개념이 통용되는 방식은 위에서 언급한 돈이라는 개념이 한계를 보이는 양상과 상당히 닮아 있거든요. 모두가 삶의 목적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것에는 쉽게 동의하면서도 정작 행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번민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죠. 이는 근본적으로 행복을 정의하는 방식에서 오는 문제라고 보는데, 인생의 목표를 마치 게임이 그렇듯 특정 조건을 충족시킨 후 달성가능한 하나의 완결된 상태로 보는 것에 근본적인 하자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상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서요. 이와 관련해서 차용되는 사고실험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 그렇다면 과연 마약중독자는 일반인보다 본질적으로 더 행복하다는 결론에 이르러야 하느냐 같은 것이 있겠고요. 그러니까 애초에 행복이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것을 포섭하기엔 한 개인의 인생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행복의 정의에 대해 물으면 구체적이고 특정 가능한 사밀한 무언가로 시작하는 경향이 짙죠. 그 결과 행복의 외연은 지나치게 커져서 모든 것을 포괄하는 동시에 그 어떤 것도 의미하지 않는 허상으로 전락해버리고요. 그래서 행복은 살아가면서 어떻게든 달성해야만 하는 어떠한 가치이고 그걸 해내지 못한 삶은 살 가치 없는 삶이다라는 주장은 제게 상당히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저런 말로 재단하기 이전에 삶은 다양한 '경험'만이 그 자체의 유일한 구성 요소로서 존재할 뿐이고 타인의 눈으로 그 경험들이 갖는 가치를 객관적으로 재단하는 것은 개인의 경험이라는 말의 정의상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돈을 둘러싼 가치들이 그렇듯, 행복에 대한 정의가 다들 제각각이듯 개인이 살아가면서 맥락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모든 요소들 속에서 창발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극단적인 유물론자인 저는 그것만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부모의 선택이 더욱 더 안타깝게 느껴지네요.
아이들의 살 권리를 주장해주는 것도 다른 어른,
아이들의 삶을 마지막까지 책임진다고 죽여주는 것도 다른 어른인데,
그 상황에 처한 아이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초점을 맞추면 좋겠습니다
부모의 자녀살해 후 자살에 포함되는 아이들은 보통 어린 유아이고 그 아이들은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봅니다. 그 아이들에게 죽음이 뭔지 제대로 설명해준다면 다수의 아이들이 죽고 싶지 않다고 할거에요.
저는 타키투스님 추가 댓글도 읽어보았는데, 설령 아이들이 부모 자살 후 혼자 살아보다가 힘들고 괴로워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더 보기
아이들의 삶을 마지막까지 책임진다고 죽여주는 것도 다른 어른인데,
그 상황에 처한 아이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초점을 맞추면 좋겠습니다
부모의 자녀살해 후 자살에 포함되는 아이들은 보통 어린 유아이고 그 아이들은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봅니다. 그 아이들에게 죽음이 뭔지 제대로 설명해준다면 다수의 아이들이 죽고 싶지 않다고 할거에요.
저는 타키투스님 추가 댓글도 읽어보았는데, 설령 아이들이 부모 자살 후 혼자 살아보다가 힘들고 괴로워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더 보기
아이들의 살 권리를 주장해주는 것도 다른 어른,
아이들의 삶을 마지막까지 책임진다고 죽여주는 것도 다른 어른인데,
그 상황에 처한 아이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초점을 맞추면 좋겠습니다
부모의 자녀살해 후 자살에 포함되는 아이들은 보통 어린 유아이고 그 아이들은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봅니다. 그 아이들에게 죽음이 뭔지 제대로 설명해준다면 다수의 아이들이 죽고 싶지 않다고 할거에요.
저는 타키투스님 추가 댓글도 읽어보았는데, 설령 아이들이 부모 자살 후 혼자 살아보다가 힘들고 괴로워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그 자신의 자발적 선택이지만, 부모의 자녀살해 후 자살은 자녀의 의사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책임의 측면으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삶을 마지막까지 책임진다고 죽여주는 것도 다른 어른인데,
그 상황에 처한 아이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초점을 맞추면 좋겠습니다
부모의 자녀살해 후 자살에 포함되는 아이들은 보통 어린 유아이고 그 아이들은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봅니다. 그 아이들에게 죽음이 뭔지 제대로 설명해준다면 다수의 아이들이 죽고 싶지 않다고 할거에요.
저는 타키투스님 추가 댓글도 읽어보았는데, 설령 아이들이 부모 자살 후 혼자 살아보다가 힘들고 괴로워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그 자신의 자발적 선택이지만, 부모의 자녀살해 후 자살은 자녀의 의사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책임의 측면으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아파서 차마 클릭조차 못해놓고 댓글다는 게 좀 웃긴 일이지만, 논의가 엉뚱한 방향으로 튀는 것 같아 망설이다 씁니다.
저 부모들이 아이를 소유물로 여겼는지, 경제적 혹은 사회적으로 실패한 자신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그 실패를 그대로 물려받아 살게 될 앞날이 암담해 내린 (정당하다는 게 아니라 그 깜냥에선 피할 수 없어) 결정일지 누가 알 수 있을까요. 게다가 그걸 알아낸다고 해서 이미 일어났고 일어날 비극들을 막는데 무슨 도움이 될까요.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지금 우리 사회가 저렇게 덩그라니 남겨진 아이들에게 ... 더 보기
저 부모들이 아이를 소유물로 여겼는지, 경제적 혹은 사회적으로 실패한 자신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그 실패를 그대로 물려받아 살게 될 앞날이 암담해 내린 (정당하다는 게 아니라 그 깜냥에선 피할 수 없어) 결정일지 누가 알 수 있을까요. 게다가 그걸 알아낸다고 해서 이미 일어났고 일어날 비극들을 막는데 무슨 도움이 될까요.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지금 우리 사회가 저렇게 덩그라니 남겨진 아이들에게 ... 더 보기
마음이 아파서 차마 클릭조차 못해놓고 댓글다는 게 좀 웃긴 일이지만, 논의가 엉뚱한 방향으로 튀는 것 같아 망설이다 씁니다.
저 부모들이 아이를 소유물로 여겼는지, 경제적 혹은 사회적으로 실패한 자신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그 실패를 그대로 물려받아 살게 될 앞날이 암담해 내린 (정당하다는 게 아니라 그 깜냥에선 피할 수 없어) 결정일지 누가 알 수 있을까요. 게다가 그걸 알아낸다고 해서 이미 일어났고 일어날 비극들을 막는데 무슨 도움이 될까요.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지금 우리 사회가 저렇게 덩그라니 남겨진 아이들에게 생존 이상의 삶은 보장해줄 수 없는 곳이라는 것 뿐이죠. 그러니 이런 비극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본인의 하드보일드함이나 전지적 신통력의 PR보단 경제적으로 실패하면 죽는 것 외엔 별다른 수가 없는 이 황당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논의 뿐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게 저 무죄한 죽음 위에 운좋게도 삶의 기회를 빼앗기지 않은 사람들이 보탤 수 있는 유일한 인간적인 조의이기도 하겠고요.
저 부모들이 아이를 소유물로 여겼는지, 경제적 혹은 사회적으로 실패한 자신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그 실패를 그대로 물려받아 살게 될 앞날이 암담해 내린 (정당하다는 게 아니라 그 깜냥에선 피할 수 없어) 결정일지 누가 알 수 있을까요. 게다가 그걸 알아낸다고 해서 이미 일어났고 일어날 비극들을 막는데 무슨 도움이 될까요.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지금 우리 사회가 저렇게 덩그라니 남겨진 아이들에게 생존 이상의 삶은 보장해줄 수 없는 곳이라는 것 뿐이죠. 그러니 이런 비극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본인의 하드보일드함이나 전지적 신통력의 PR보단 경제적으로 실패하면 죽는 것 외엔 별다른 수가 없는 이 황당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논의 뿐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게 저 무죄한 죽음 위에 운좋게도 삶의 기회를 빼앗기지 않은 사람들이 보탤 수 있는 유일한 인간적인 조의이기도 하겠고요.
저도 동의합니다. 저게 잘한 짓이이 못한 짓이니가 중요하지 않죠. 니가 못사는건 사회탓이 아니고 너의 노오오오오오오오력이 부족해서다와 뭐가 다릅니까. 사회적 책임이 아니라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버린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보입니다.
실제 자식을 키우는 분들 중에. 정말 저런 선택을 해야할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면, 과연 혼자 죽는 선택을 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리고 혼자 죽는 것도 사실 책임없는 짓이지요. 그렇다고 당장 죽기 직전까지 숨이 턱에 찬 사람한테 "너 그러먄 못 써" 라고 말하는 데에서 끝나는 것이.. "... 더 보기
실제 자식을 키우는 분들 중에. 정말 저런 선택을 해야할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면, 과연 혼자 죽는 선택을 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리고 혼자 죽는 것도 사실 책임없는 짓이지요. 그렇다고 당장 죽기 직전까지 숨이 턱에 찬 사람한테 "너 그러먄 못 써" 라고 말하는 데에서 끝나는 것이.. "... 더 보기
저도 동의합니다. 저게 잘한 짓이이 못한 짓이니가 중요하지 않죠. 니가 못사는건 사회탓이 아니고 너의 노오오오오오오오력이 부족해서다와 뭐가 다릅니까. 사회적 책임이 아니라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버린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보입니다.
실제 자식을 키우는 분들 중에. 정말 저런 선택을 해야할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면, 과연 혼자 죽는 선택을 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리고 혼자 죽는 것도 사실 책임없는 짓이지요. 그렇다고 당장 죽기 직전까지 숨이 턱에 찬 사람한테 "너 그러먄 못 써" 라고 말하는 데에서 끝나는 것이.. "노오오오오오오오오력이 부족해"라고 말을 들어온 세대가 한다는 것이 참..
마지막으로 애 가진 부모는 사실 이런 기사에 답글 달기 힘들 것 같습니다. 님 말씀처럼 클릭해놓고 마음이 아파서 댓글 못달거든요. 그리고 저는 자살한 분이 심정적으로 이해가 됩니다...
실제 자식을 키우는 분들 중에. 정말 저런 선택을 해야할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면, 과연 혼자 죽는 선택을 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리고 혼자 죽는 것도 사실 책임없는 짓이지요. 그렇다고 당장 죽기 직전까지 숨이 턱에 찬 사람한테 "너 그러먄 못 써" 라고 말하는 데에서 끝나는 것이.. "노오오오오오오오오력이 부족해"라고 말을 들어온 세대가 한다는 것이 참..
마지막으로 애 가진 부모는 사실 이런 기사에 답글 달기 힘들 것 같습니다. 님 말씀처럼 클릭해놓고 마음이 아파서 댓글 못달거든요. 그리고 저는 자살한 분이 심정적으로 이해가 됩니다...
대체적으로 다른 커뮤니티나 주위 사람들의 인식, 그리고 이 홍차넷의 댓글을 봐도 마찬가지인데, 사람들 인식 자체가 좀 빗나간거 같아요. 저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실패해서 죽는게 아닙니다. 자살하는 사람의 문제는 돈이 아니라 정신이에요. 돈이 정신적 문제를 만든다? 맞아요. 그런데 여기서 필요한 명제는 그게 아니죠. 정신적 문제를 만드는것은 오직 돈 뿐이다 혹은 거의 9할 이상은 돈이다 이 명제가 성립해야 저 인식이 맞는거죠.
아무리 경제적 약자에게 돌파구를 만들어주고 만들어줘도 상대적 빈자계층은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 죽는 이유는 경제적 지원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정신적 문제에 대한 돌파구가 없어서 그런거죠.
아무리 경제적 약자에게 돌파구를 만들어주고 만들어줘도 상대적 빈자계층은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 죽는 이유는 경제적 지원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정신적 문제에 대한 돌파구가 없어서 그런거죠.
가능하지도 않은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어설프게 쓰는 예산 반만 빼서 국민들 마음 돌보는데 쓰면 지금보단 훨 상황이 나아질거에요. 장담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돌보는 예산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일 수 있을까요. 죽음을 늘 생각하던 때와 지금 제 상황을 비교해보면, 타인의 공감과 위로는 밑빠진독으로 흘러내려갔고, 결국 희망을 실체적으로 느끼는 지점까지 기어올라가야만 마음이 바뀌더군요. 기어오르는 과정에 도움을받았지만 그건 국가가 예산을 정책으로 소비하여 가능한 과정은 아닌것 같고, 절망적인 마음을 희망적인 태도로바꾸는데는 결국 사회적 관계망 내에서의 역할과 경제적 자립에대한 어느정도의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불가능해보이지만 한없이 줄일수있는 경제적불평등의 완화가아닐까요.
상당수의 죽는 사람들은 희망을 실체적으로 느끼는 지점까지 기어올라가려는 생각조차 더 이상 할 수 없으니까 죽는거죠. 이 사람들에게 로프 던져주고 식량 던져주고 발판 만들어주고 해봐야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입니다. 아예 돌파구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일생을 보내온 극빈층만이 오직 그러한 종류의 지원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죠.
그런데 본문의 나와있는 케이스 보세요. 성인 둘이 눈맞아서 결혼해서 애까지 낳고, 일부는 개인회생까지 신청할만큼 사회 물 먹을만큼 먹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망... 더 보기
그런데 본문의 나와있는 케이스 보세요. 성인 둘이 눈맞아서 결혼해서 애까지 낳고, 일부는 개인회생까지 신청할만큼 사회 물 먹을만큼 먹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망... 더 보기
상당수의 죽는 사람들은 희망을 실체적으로 느끼는 지점까지 기어올라가려는 생각조차 더 이상 할 수 없으니까 죽는거죠. 이 사람들에게 로프 던져주고 식량 던져주고 발판 만들어주고 해봐야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입니다. 아예 돌파구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일생을 보내온 극빈층만이 오직 그러한 종류의 지원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죠.
그런데 본문의 나와있는 케이스 보세요. 성인 둘이 눈맞아서 결혼해서 애까지 낳고, 일부는 개인회생까지 신청할만큼 사회 물 먹을만큼 먹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망 내에서의 역할과 경제적 자립에 대한 믿음' 이 없어서 죽었을까요? 살면서 희망과 역전이라는 개념을 아예 한번도 본 적이 없어서 저랬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그래서 소용 없다는거에요.
이런 토픽으로 얘기하다보면 '세컨드 찬스' 가 없는 사회라 경제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이런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세컨드 찬스 주면 그거 누구나 다 잡을 수 있습니까? 거기서도 실패할 사람은 실패합니다. 그럼 끝이죠. 써드 포쓰 찬스 만들어줘도 안될 사람은 안됩니다.
홀덤 토너먼트만 봐도 그 별거 아닌 더블업 못하고 판에서 나가떨어지는 사람이 수두룩하고, 사람 128명만 모아서 패자진출 룰로 가위바위보 토너먼트 대회 열면 '가위바위보 7연패하는 재수없는 놈' 이 반드시 1명은 나옵니다. 그보단 좀 낫지만 '6연패하는 재수없는 놈' 은 2명이 나오고. '5연패하는 재수없는 놈'은 4명이나 나옵니다. 경제 정책으로 이 사람들 다 구제해줄 수 있나요?
절망적인 마음을 희망적인 태도로 바꾸는데에는 정신과 전문의의 진찰과 처방, 상담심리 전문가의 상담, 그리고 공동체 사회의 회복이 세가지가 가장 효과적이고, 명백한 개선을 보장하는 유일한 옵션입니다. 맨 뒤에껀 이미 돈만으로 해결 될 문제가 아니지만, 앞에껀 어떻게든 됩니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질 수 있어요. 그런데 안합니다. 왜냐면 여전히 현대인들은 '환경을 만들어주면 정신적인 문제는 스스로 어떻게든 극복이 된다' 하는 정신에 대한 이상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나이 젊고 건강한 사람들 길가다 넘어져서 무릎 까지고 손 베이고 이런거 그냥 내버려둬도 대부분 며칠 있으면 낫습니다. 근데 다리 잘렸으면 수술 받아야죠. 마찬가지에요. 결혼해서 애까지 낳고 사업까지 할 수 있었던 환경의 사람들이 한번 넘어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걸 구원해줄 수 있는 방법은 마음의 상처를 수술해주는것뿐이에요. 자원은 유한하고, 모든 사람이 죽을때까지 재도전할 기회를 줄 수는 없습니다. 더 큰 불행만 야기할뿐이에요.
그런데 본문의 나와있는 케이스 보세요. 성인 둘이 눈맞아서 결혼해서 애까지 낳고, 일부는 개인회생까지 신청할만큼 사회 물 먹을만큼 먹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망 내에서의 역할과 경제적 자립에 대한 믿음' 이 없어서 죽었을까요? 살면서 희망과 역전이라는 개념을 아예 한번도 본 적이 없어서 저랬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그래서 소용 없다는거에요.
이런 토픽으로 얘기하다보면 '세컨드 찬스' 가 없는 사회라 경제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이런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세컨드 찬스 주면 그거 누구나 다 잡을 수 있습니까? 거기서도 실패할 사람은 실패합니다. 그럼 끝이죠. 써드 포쓰 찬스 만들어줘도 안될 사람은 안됩니다.
홀덤 토너먼트만 봐도 그 별거 아닌 더블업 못하고 판에서 나가떨어지는 사람이 수두룩하고, 사람 128명만 모아서 패자진출 룰로 가위바위보 토너먼트 대회 열면 '가위바위보 7연패하는 재수없는 놈' 이 반드시 1명은 나옵니다. 그보단 좀 낫지만 '6연패하는 재수없는 놈' 은 2명이 나오고. '5연패하는 재수없는 놈'은 4명이나 나옵니다. 경제 정책으로 이 사람들 다 구제해줄 수 있나요?
절망적인 마음을 희망적인 태도로 바꾸는데에는 정신과 전문의의 진찰과 처방, 상담심리 전문가의 상담, 그리고 공동체 사회의 회복이 세가지가 가장 효과적이고, 명백한 개선을 보장하는 유일한 옵션입니다. 맨 뒤에껀 이미 돈만으로 해결 될 문제가 아니지만, 앞에껀 어떻게든 됩니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질 수 있어요. 그런데 안합니다. 왜냐면 여전히 현대인들은 '환경을 만들어주면 정신적인 문제는 스스로 어떻게든 극복이 된다' 하는 정신에 대한 이상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나이 젊고 건강한 사람들 길가다 넘어져서 무릎 까지고 손 베이고 이런거 그냥 내버려둬도 대부분 며칠 있으면 낫습니다. 근데 다리 잘렸으면 수술 받아야죠. 마찬가지에요. 결혼해서 애까지 낳고 사업까지 할 수 있었던 환경의 사람들이 한번 넘어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걸 구원해줄 수 있는 방법은 마음의 상처를 수술해주는것뿐이에요. 자원은 유한하고, 모든 사람이 죽을때까지 재도전할 기회를 줄 수는 없습니다. 더 큰 불행만 야기할뿐이에요.
저는 심리상담도 10주 가까이 받아본 입장에서 좋은 경험이고 마음을 추스리는데 도움을 받았지만 그 경험을 포함하더라도 말씀하신 부분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정신과 처방이나 심리상담과 같은 행위에는 금전적비용뿐만아니라 시간과 기회비용을 소모해야하고, 공동체사회의 회복이나 복구는 사회체제구조랑 따로 만들수가 없는 부분이라 어느쪽이든 정책과 예산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서 효과적일거야? 에 회의적입니다. 그리고 결혼하고 애낳고 직업있고 가정을 꾸릴수록 더 나아질거란 희망의 가능성이 줄어 절망적일수도 있고, 어떤게 트리거가 됐을지는 모르지만 ... 더 보기
저는 심리상담도 10주 가까이 받아본 입장에서 좋은 경험이고 마음을 추스리는데 도움을 받았지만 그 경험을 포함하더라도 말씀하신 부분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정신과 처방이나 심리상담과 같은 행위에는 금전적비용뿐만아니라 시간과 기회비용을 소모해야하고, 공동체사회의 회복이나 복구는 사회체제구조랑 따로 만들수가 없는 부분이라 어느쪽이든 정책과 예산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서 효과적일거야? 에 회의적입니다. 그리고 결혼하고 애낳고 직업있고 가정을 꾸릴수록 더 나아질거란 희망의 가능성이 줄어 절망적일수도 있고, 어떤게 트리거가 됐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정신건강은 심리상담이나 약물치료만큼이나 본인이 처한 외부적, 내적상황의 교통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특히 공동체 사회의 회복이라는 관점에서도 그 사회가 각자의 주체를 대하는 문화에 따라 효과가 다르게 나타나고, 거기에는 경제 이외에도 많은 요소가 포함되겠습니다마는, 경제적 희망이 있으면 여타 다른 요소들을 포섭하기가 훨씬 쉬워지는건 명백한 사실이고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사회모순을 붙들고 있는 학자들도 경제 중심적인 환원이 위험하다고하지 경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임을 부정하지 않아요. 인간은 외부구조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속에서 정신도 구성되는거고 외부 변화없이 스스로의 마음이나 정신을 치료하는걸로 지속적인 변화가 유지되진 않습니다. 커피를 들이부어서 잠깨는 거랑 비슷한거지.. 결국 이쪽 저쪽을 같이 완화시켜야만하는거고 그럼에도 죽는사람은 존재하겠지만 정책관점에서보면 경제적 불평등을 많이 완화시키고 호황에대한 기대감이 있는 상태에서 가처분소득을 늘려갈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마음도 정신도 케어하기좋은 문화나 인프라를 만들어나가는게 효과적으로 보입니다. 사실 이미 인프라가 그렇게나쁘지도않고요. 심리상담센터든 의료보험적용되는 정신과든.. 이런데 방문하고 싶은데 못가는 분들의 가장 큰 걱정이 기록에남아서 경제활동이나 금융활동에 제약이 생긴다는 두려움입니다. 역설적으로, 마음을 케어하기 전에도 이미 경제적 요소는 강하게 사람을 옥죄고 있는거죠. 주장하신 바를 실천해도, 더 나아지지않는다는 절망이나 더 힘들거라는 전망앞에서는 효과가 의심된다는 부분도 큰 질병이나 가정의 경제적문제로 경력, 시간, 금전적 손해를 통해 삶에서 쌓아둔 것들을 잃은 분들이 재기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도움 없이는 결국 극빈층으로 전락하거나 사회바깥으로 밀려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입니다.
위의 논의들은 첫 댓글에서 나온 아이들의 생사결정권을 왜 부모가 결정하는 것이 마지막 책임이지 않을까에 대한 반론일 뿐이지, 이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 것은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문제를 배제한 게 아니라, 논의를 한정한 거죠. 다른 층위의 논의를 가져오셔서 비판을 하시는데 조금 당황스럽긴 하네요.
그리고 잘못한 것인지, 아닌지 중요하지 않다고 하시는데 동의할 수 없네요. 정말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이런 비극을 줄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사회적 책임에 대한 부분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히 공감합... 더 보기
그리고 잘못한 것인지, 아닌지 중요하지 않다고 하시는데 동의할 수 없네요. 정말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이런 비극을 줄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사회적 책임에 대한 부분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히 공감합... 더 보기
위의 논의들은 첫 댓글에서 나온 아이들의 생사결정권을 왜 부모가 결정하는 것이 마지막 책임이지 않을까에 대한 반론일 뿐이지, 이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 것은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문제를 배제한 게 아니라, 논의를 한정한 거죠. 다른 층위의 논의를 가져오셔서 비판을 하시는데 조금 당황스럽긴 하네요.
그리고 잘못한 것인지, 아닌지 중요하지 않다고 하시는데 동의할 수 없네요. 정말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이런 비극을 줄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사회적 책임에 대한 부분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히 공감합니다. 그러면 못 쓴다에서 그치자는 것도 물론 아니고요.
‘노오력’이란 단어를 아주 혐오하는 세대 중 한 사람의 입장에서 이런 식으로 단정지어 말씀하시는 것은 굉장히 불쾌하네요.
그리고 잘못한 것인지, 아닌지 중요하지 않다고 하시는데 동의할 수 없네요. 정말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이런 비극을 줄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사회적 책임에 대한 부분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히 공감합니다. 그러면 못 쓴다에서 그치자는 것도 물론 아니고요.
‘노오력’이란 단어를 아주 혐오하는 세대 중 한 사람의 입장에서 이런 식으로 단정지어 말씀하시는 것은 굉장히 불쾌하네요.
경제가 중요하지 않다는것이 아닙니다. 이미 경제적 재기 인프라는 사회에서 정말 죽어라 갖출만큼 갖췄고, 더 이상 예산 투입이 큰 의미가 없을정도로 잘 되어 있다는 얘기지요. 물질과 정신의 밸런스가 중요한데, 한국은 후자가 너무 심하게 무너져 있어요. 전자에 돈을 더 쓰는게 의미가 없어보일정도로 무너져 있다는 얘기에요..
가령 본문에 나와 있는 회생같은 케이스가 대표적인 예시죠. 회생이나 개인 워크아웃 같은 제도가 경제적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을 정도로 잘 갖춰져 있는가? 관련 업계에서 일해보고, 실제로 가족 중 1인이... 더 보기
가령 본문에 나와 있는 회생같은 케이스가 대표적인 예시죠. 회생이나 개인 워크아웃 같은 제도가 경제적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을 정도로 잘 갖춰져 있는가? 관련 업계에서 일해보고, 실제로 가족 중 1인이... 더 보기
경제가 중요하지 않다는것이 아닙니다. 이미 경제적 재기 인프라는 사회에서 정말 죽어라 갖출만큼 갖췄고, 더 이상 예산 투입이 큰 의미가 없을정도로 잘 되어 있다는 얘기지요. 물질과 정신의 밸런스가 중요한데, 한국은 후자가 너무 심하게 무너져 있어요. 전자에 돈을 더 쓰는게 의미가 없어보일정도로 무너져 있다는 얘기에요..
가령 본문에 나와 있는 회생같은 케이스가 대표적인 예시죠. 회생이나 개인 워크아웃 같은 제도가 경제적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을 정도로 잘 갖춰져 있는가? 관련 업계에서 일해보고, 실제로 가족 중 1인이 회생을 진행중인 입장에선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저렇게 회생을 진행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고, 그로 인한 본인의 정신적 스트레스입니다. 한국 사회는 이걸 해소할 방법이 없어요.
상담이나 정신과 진료에 대한 경제적 부담, 그리고 주위의 시선과 경제활동의 제약등을 말씀하셨는데 저는 이게 경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회의 정신적인 문제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선 홀대와 몰이해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단 인프라가 문제가 아니에요. 전반적으로 그렇습니다.
가령 본문에 나와 있는 회생같은 케이스가 대표적인 예시죠. 회생이나 개인 워크아웃 같은 제도가 경제적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을 정도로 잘 갖춰져 있는가? 관련 업계에서 일해보고, 실제로 가족 중 1인이 회생을 진행중인 입장에선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저렇게 회생을 진행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고, 그로 인한 본인의 정신적 스트레스입니다. 한국 사회는 이걸 해소할 방법이 없어요.
상담이나 정신과 진료에 대한 경제적 부담, 그리고 주위의 시선과 경제활동의 제약등을 말씀하셨는데 저는 이게 경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회의 정신적인 문제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선 홀대와 몰이해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단 인프라가 문제가 아니에요. 전반적으로 그렇습니다.
부모 책임이네 마네라는 문제 자체가 본질에서 떨어져 있습니다. 생사 결정권이 부모에게 있네 마네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포인트에요. 논의를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포인트를 논의하는 겁니다. 병이 있다면, 원인을 치료해야 그 병이 치료가 되는 겁니다.
저는 자살하는 사람 굉장히 많이 봅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하루에도 2~3명씩 죽겠다고 약먹고 온 사람 치료해서 퇴원시키고 그랬습니다. 이야기를 나눠보면 대부분은 경제적인 이유입니다. 아주 젊은 분들은 또 다릅니다. 그리고 노인분들은 거기에 몸이 아파서 자살을 선택합니... 더 보기
저는 자살하는 사람 굉장히 많이 봅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하루에도 2~3명씩 죽겠다고 약먹고 온 사람 치료해서 퇴원시키고 그랬습니다. 이야기를 나눠보면 대부분은 경제적인 이유입니다. 아주 젊은 분들은 또 다릅니다. 그리고 노인분들은 거기에 몸이 아파서 자살을 선택합니... 더 보기
부모 책임이네 마네라는 문제 자체가 본질에서 떨어져 있습니다. 생사 결정권이 부모에게 있네 마네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포인트에요. 논의를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포인트를 논의하는 겁니다. 병이 있다면, 원인을 치료해야 그 병이 치료가 되는 겁니다.
저는 자살하는 사람 굉장히 많이 봅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하루에도 2~3명씩 죽겠다고 약먹고 온 사람 치료해서 퇴원시키고 그랬습니다. 이야기를 나눠보면 대부분은 경제적인 이유입니다. 아주 젊은 분들은 또 다릅니다. 그리고 노인분들은 거기에 몸이 아파서 자살을 선택합니다. 밑에 분이 경제적인 이유가 다가 아니라고 하셨는데, 제가 본 그 수많은 자살 시도자들은 대부분 경제적 이유 때문입니다.
결국 원인은 작살난 사회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경제 기반이 와장창 무너져서 그래요. 그나마 남아있는 기업들이 다 해외로 뛰쳐 나가는데 일할 곳이 어디에 있나요. 그런 와중에서 나 혼자 힘들다고 자살하면, 그것은 그럼 괜찮은 건가요? 그것도 문제가 있는 것이라면, 자살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자살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며 이야기가 시작되었겠죠.
저도 다 같이 죽는 선택을 하는 것이, 마지막 책임을 다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심정은 이해 됩니다. 혹시 애가 있으신지요? 만약 그렇다면 님이 직장에서 쫓겨나고 빚은 점점 늘어나는 저런 상황에 몰리게 되면, 우리 나라 같은 곳에서 잘 이겨낼 자신이 있으신지요? 저도 제가 전문직이 아니었다면, 자신있게 예스라고 대답 못했을 겁니다.
이런 기저 상황들을 고려해서 다시 문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저런 사람들이 가족들을 다 죽이고 본인도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 왜 잘못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다른 사람을 살해해서? 그것은 당연하지요..남을 살해하고 자기 자신을 해하는 것은, 당연히 범죄입니다. 해서는 안되는 짓입니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 생사 결정권을 부모가 결정하는 것이 문제가 될까요? 당연히 이것도 잘못이지요. 님 말씀대로 이건 윤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이것은 논의가 필요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잘못된 선택을 합니다. 극한으로 몰리기 때문에요. 예전 기근이 들면 아이를 잡아 먹었다는 기록들이 많죠.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유독 더 악해서가 아닙니다. 사회가 몰락했기 때문이지요. 정말 잘못이라는 인식이 부족해서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목숨은 부모에게 달린 것이다라는 인식이 문제라면, 혼자 자살하는 것은 괜찮은 걸까요? 그렇다면 이는 "죽을거면 혼자 죽으세요. 애꿎은 가족들까지 다 데려가지 마세요"라고 공익 광고를 해야하는 것일까요? 말이 안되죠. 자살한다는 것 자체도 문제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이 증가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몰락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 입니다. 여기서 "왜 자살을 선택하느냐?"라고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을 비판하는 것은, 혹은 "죽더라고 혼자 죽지 왜 다 같이 죽었냐"라소 비판하는 것은. 그저 "왜 노오오오오렷하지 않느냐"라고 비판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무슨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자살하는 사람 굉장히 많이 봅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하루에도 2~3명씩 죽겠다고 약먹고 온 사람 치료해서 퇴원시키고 그랬습니다. 이야기를 나눠보면 대부분은 경제적인 이유입니다. 아주 젊은 분들은 또 다릅니다. 그리고 노인분들은 거기에 몸이 아파서 자살을 선택합니다. 밑에 분이 경제적인 이유가 다가 아니라고 하셨는데, 제가 본 그 수많은 자살 시도자들은 대부분 경제적 이유 때문입니다.
결국 원인은 작살난 사회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경제 기반이 와장창 무너져서 그래요. 그나마 남아있는 기업들이 다 해외로 뛰쳐 나가는데 일할 곳이 어디에 있나요. 그런 와중에서 나 혼자 힘들다고 자살하면, 그것은 그럼 괜찮은 건가요? 그것도 문제가 있는 것이라면, 자살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자살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며 이야기가 시작되었겠죠.
저도 다 같이 죽는 선택을 하는 것이, 마지막 책임을 다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심정은 이해 됩니다. 혹시 애가 있으신지요? 만약 그렇다면 님이 직장에서 쫓겨나고 빚은 점점 늘어나는 저런 상황에 몰리게 되면, 우리 나라 같은 곳에서 잘 이겨낼 자신이 있으신지요? 저도 제가 전문직이 아니었다면, 자신있게 예스라고 대답 못했을 겁니다.
이런 기저 상황들을 고려해서 다시 문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저런 사람들이 가족들을 다 죽이고 본인도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 왜 잘못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다른 사람을 살해해서? 그것은 당연하지요..남을 살해하고 자기 자신을 해하는 것은, 당연히 범죄입니다. 해서는 안되는 짓입니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 생사 결정권을 부모가 결정하는 것이 문제가 될까요? 당연히 이것도 잘못이지요. 님 말씀대로 이건 윤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이것은 논의가 필요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잘못된 선택을 합니다. 극한으로 몰리기 때문에요. 예전 기근이 들면 아이를 잡아 먹었다는 기록들이 많죠.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유독 더 악해서가 아닙니다. 사회가 몰락했기 때문이지요. 정말 잘못이라는 인식이 부족해서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목숨은 부모에게 달린 것이다라는 인식이 문제라면, 혼자 자살하는 것은 괜찮은 걸까요? 그렇다면 이는 "죽을거면 혼자 죽으세요. 애꿎은 가족들까지 다 데려가지 마세요"라고 공익 광고를 해야하는 것일까요? 말이 안되죠. 자살한다는 것 자체도 문제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이 증가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몰락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 입니다. 여기서 "왜 자살을 선택하느냐?"라고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을 비판하는 것은, 혹은 "죽더라고 혼자 죽지 왜 다 같이 죽었냐"라소 비판하는 것은. 그저 "왜 노오오오오렷하지 않느냐"라고 비판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무슨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랑은 좀 받아들이시는게 다른거 같아요. 회생이나 개인워크아웃제도같은게 잘되어있나에 대해 저는 회생구제 받은 뒤가 더 문제인데 회생만시켜두면 시장편입과 기회에대한 접근성이 생기냐에대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요. 사회보장이라는것도 그런면에서 파산신청받아주고 빚탕감해주는것만큼이나 자기가 역할을 수행해서 임금을 받고 살 수있는 노동권과 노동안정성이 핵심이라고 보거든요. 국가에서 저소득층 지원이나 개인회생지원책이 잘 되어있지만 이미 드러나있는 문제중 하나가 선별적복지의 선별과정에따른 부작용이고 이건 정신적인 문제에대한 배려나 무관심때문에 일어... 더 보기
저랑은 좀 받아들이시는게 다른거 같아요. 회생이나 개인워크아웃제도같은게 잘되어있나에 대해 저는 회생구제 받은 뒤가 더 문제인데 회생만시켜두면 시장편입과 기회에대한 접근성이 생기냐에대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요. 사회보장이라는것도 그런면에서 파산신청받아주고 빚탕감해주는것만큼이나 자기가 역할을 수행해서 임금을 받고 살 수있는 노동권과 노동안정성이 핵심이라고 보거든요. 국가에서 저소득층 지원이나 개인회생지원책이 잘 되어있지만 이미 드러나있는 문제중 하나가 선별적복지의 선별과정에따른 부작용이고 이건 정신적인 문제에대한 배려나 무관심때문에 일어난다고보지 않습니다. 결국 능력주의가 핵심가치 중 하나인 자유주의 사회의 본질적 한계라고 생각하고, 개별주체가 기댈 수 있는 정체성의 해체중에 자립할 수 있는 능력과 기대의 상실이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일할 능력, 일할 시장, 일하는 역할에서 오는 실존적 희망을 상당부분 보전하는 경제적 회생망이 이뤄져있느냐 하면 전혀 아니다라고 보고요. 비단 가족자살뿐만아니라 중장년 자살수치나 노년빈곤층문제 보면 명백하게 드러나요. 퇴직 이후의 자기 삶에 대한 충격이 심리상담이나 정신과로 해결될 성질과는 다르다고 봅니다. 저는 그런 부분에서 도움이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는데, 본질적으로는 경제적 구제책이 한참부족하다는 입장이고, 그것은 비단 소득뿐만이아니라 자신의 자립이나 역할, 정체성과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말씀하신 정신적 문제도 밀접하게 엮여있다고 느낍니다. 빈곤구제를 떠나서 일자리위협이나 재교육, 재사회화, 노동안정성, 어느것하나 좋다고 볼 영역이 없거든요. 국제노동협약 핵심비준도 못하고 52시간 노동도 부족한 국가에서 노동과 경제보다 정신과 마음케어라는건.. 저는 납득이 안가는거같습니다.
진짜 그런생각하는 무책임한 부모라면 그냥 죽어 없어져주는게 애들입장에서는 앞날에 도움이 되면 될것같은데요? 살아있으면 열심히 살려는 자식들 발목이나 잡지...
다 버리고 죽을거면 부모로서의 책임이나 역할도 다 내버리고 하는거지 뭔 또 그와중에 자식의 행복, 마지막 책임 운운할까요
자식이 부모없이 고통받고 사는게 싫더라도 자살하는 주제에 그럼 그것도 감내하고 죽어야죠 자식이 평생 살며 원망하는것도 감내해야하고. 뭐 얼마나 곱게죽고싶어서...
생활고에 시달려서 자녀 죽이고 자살한 사건 정말 마음아프다. 안됐다. 안타깝다. 제...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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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에 시달려서 자녀 죽이고 자살한 사건 정말 마음아프다. 안됐다. 안타깝다. 제 동정은 거기까지입니다. 근데 자녀를 죽여야만 하는 이유를 뭔가 정당화하듯 설명하기 시작하면 거기에는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을수가 없네요.
자식의 앞날 걱정은 헛소리고, 뭣같은세상 죽기전에 내맘대로 할수있는 생명 죽여본다음에 죽은거죠. 그냥 살인범이에요. 아파트에 불지르고 다른사람 찌르는대신 자기자식 죽이고 간건데 여기 왜 합리화가 들어가는지 이해가 안가네요
다 버리고 죽을거면 부모로서의 책임이나 역할도 다 내버리고 하는거지 뭔 또 그와중에 자식의 행복, 마지막 책임 운운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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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에 시달려서 자녀 죽이고 자살한 사건 정말 마음아프다. 안됐다. 안타깝다. 제 동정은 거기까지입니다. 근데 자녀를 죽여야만 하는 이유를 뭔가 정당화하듯 설명하기 시작하면 거기에는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을수가 없네요.
자식의 앞날 걱정은 헛소리고, 뭣같은세상 죽기전에 내맘대로 할수있는 생명 죽여본다음에 죽은거죠. 그냥 살인범이에요. 아파트에 불지르고 다른사람 찌르는대신 자기자식 죽이고 간건데 여기 왜 합리화가 들어가는지 이해가 안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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