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 게시판입니다.
Date 16/02/10 01:02:14
Name   기아트윈스
Subject   [하스스톤]패치 잡상
이번 패치 소식을 듣고 나서 한동안은 박붐 만들고 낙스 열고 GVG 팩 깐 게 너무 아깝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밸런스를 못잡으니 이놈들이 그냥 카드를 광역삭제하는구나 하고 기분이 나빴지요.

그런데 시간이 조금씩 지나고 레딧 등을 눈팅하다보니 특히 서양권의 여론이 매우 우호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왜 한국에선 게임 접겠다 환불하겠다 하며 생난리가 나는 와중에 양인들은 이 조치를 반기는 걸까요.

당당한 문과생으로서 이런 사회현상을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이것 저것 생각을 펼쳐보았습니다. 이하는 모두 가설이에요.



1. TCG에 대한 친숙도가 다르다.

레딧을 들여다보니 이미 1년 전에 이와 같은 변화를 거의 그대로 예언(?)한 사람도 있더군요.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상상해보아요 따위의 스레드였는데 누군가가 매더게의 선례를 들며 이렇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한 거에요.

그 외에도 "ㅋㅋ 완전 똑같네. 난 사실 벤 브로드가 Wild 라고 말할 때 '어휴, 그래도 Modern이라곤 안하는군' 이라고 혼잣말을 했다니까" 같은 댓글이 있었는데 모던이 뭔가 했더니 매더게의 야생전이더군요 (어.. 그러니까, 야생전이 하스스톤의 모던... 어.. 그러니까 여튼 같은 컨셉트에요)

TCG 문화에 익숙하니만큼 이번 패치에 대해 놀랄 이유가 적었고 또 많은 TCG 게임들이 운용되는 법을 알기 때문에 그닥 이상하게 받아들일 것도 없지 않나 싶어요.

한국이야 뭐... TCG가 성공한 적이 없는 토양이니까요.


2. 과금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헌데 위와 같은 요소만으로 이 뚜렷하고도 현격한 차이가 완전히 설명되는 것 같진 않아요. 뭔가 더 섹시한 해석이 필요해요. 전 그 중 하나가 과금문화라고 생각했어요. 레딧은 전반적으로 무과금러에 대한 조소(?) 문화 같은 게 있어요. 헤비 과금을 안한다 하더라도 카드게임 컨텐츠에 대해 지속적으로 돈을 투자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요. 누군가가 나 같은 무과금러에겐 가혹한 패치다란 식으로 이야기하면 "네 다음 거지"과 같은 댓글이 달려요.

인벤/루리웹 등지에서 블리자드가 컨텐츠를 계속해서 팔아먹으려고 돈독이 올랐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데 비해 여론이 완전히 다르더군요.


3. 불통기업 블리자드?


이건 블리자드 게임을 하는 한국 게이머들의 숙명일지도 모르겠어요. 블리자드사의 하스스톤 팀은 이미 여러차례 정상회담 (summit)을 가졌다고 해요. 이게 뭔 소린가하니 영향력 있고 유명한 몇몇 하스스톤 게이머들과 스트리머들을 초청해서 일종의 간담회를 가지고 정규전/야생전 도입 등에 대해 이미 토론을 했다는 말이에요. 즉, 서구권, 특히 북미 게이머들 입장에선 블리자드는 결코 불통기업이 아니에요. 늘 하스스톤 서브레딧을 모니터링하고, 북미 게임 잡지들의 인터뷰에 응하고, 이러한 중요한 변화가 있기 전에 여론을 알아보기위해 주요 [북미] 게이머들을 불러다가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지요. 북미 게이머들 입장에선 자기들의 여론의 향방이 실제 블리자드의 정책결정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고, 또 자기들이 추종하는 최고의 게이머들/오피니언 리더들/비평가들이 블리자드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고 믿어요 (실제로 그럴 거구요).

이는 한국 게이머들의 상황과는 정 반대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들은 영어를 못하는 천형을 받은 댓가로 블리자드와 무언가 이야기를 하려면 블리자드 코리아를 거쳐야하는데 블코가 무슨 정책결정권한이 있겠어요. 그냥 변방이요 주변인일 뿐이지요.


4. 덱 만들기/덱 굴리기


이건 순전히 가설이에요. 한국 게이머들은 정답을 원하는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공인된 짱 쎈 덱을 최대한 빨리 완성해서 그 덱을 마구 열심히 굴려서 좋은 성적을 내야겠다는 욕망이 있는 것 같아요. 강한 힘을 얻어서 그 힘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싶은 거지요. 그래서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그 정답을 만들어냈는데, 그 짱 쎈 덱을 고생해서 완성했는데 그게 이런저런 대격변으로 인해 더이상 세계 정복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분노하는 거지요.

레딧에서 나온 환영의 말들을 보면 "아 이제 만들 만한 덱은 다 만들어봤으니 빨리 새 재료를 줘. 더 새로운 거 만들어보게. 정규전은 대체 언제 도입되는 거야. 못기다리겠네" 뭐 이런 반응들이 많아요. 이 친구들은 짱 쎈 덱을 굴려서 영원한 이 세계의 지배자가 되는 것보단 만든 건 다시 부수고 그 부순 재료들로 다시 새로운 걸 만들어보고 하는 걸 더 즐기는 게 아닌가 싶어요.

물론 이런 묘사가 지나치게 도식적이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 최소한 제 경우엔 들어맞는 것 같아요. 전 덱 짜는 거고 뭐고 다 귀찮고 짱 쎄다고 공인받은 거 하나 카피해서 마구 굴려서 마구 승리하는 게 재밌거든요. 그래서 고백하건대 메타가 바뀌는 게 별로 반갑지 않았어요... -_-;;


5. 불신사회

이상의 관점들, 특히 3번을 감안하더라도 한국이 불신사회라는 걸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일단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게임 회사에 대한 게이머들의 의견은 [부정적]이 디폴트 옵션이에요. 게임회사와 게이머 사이의 관계를 제로섬으로 인식하고, 따라서 게임회사의 일거수 일투족은 모두 게이머를 등쳐서 게임회사를 배불리려는 수단으로 보지요.

음... 이 부분은 한국 사회 전반의 불신문화에 대해 썰을 풀어야 재미있을 텐데 그 부분은 제 능력이 부족해서 생략합니다.


이것저것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봤는데 어떤가요. 다양한 댓글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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