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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9/12/09 13:42:08
Name   거소
Subject   [펌]벤처허생전
https://liveandventure.com/2019/12/08/venturehuh/?fbclid=IwAR075PfKwCAkVWKiByqFtYT5nLqdAetQuRBLkbQ5LsA39NN0m206AWIgP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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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은 성수동에 살았다. 곧장 중량천 밑에 닿으면, 뚝섬역을 지나 헤이그라운드 건물이 서 있고, 서울숲을 향하여 허름한 오피스텔이 있었는데, 주변 공장의 소음과 먼지를 막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허생은 테크크런치 읽기만 좋아하고, 그의 처가 남의 회사 외주 개발 일을 받아서 입에 풀칠을 했다.

하루는 그 처가 몹시 배가 고파서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평생 창업을 하지 않으니, 테크크런치는 읽어 무엇 합니까?”

허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BM(역자주: 비지니스 모델)을 익숙히 하지 못하였소.”

“그럼 외주 개발 일이라도 못 하시나요?”

“외주 개발 일은 본래 배우지 않았는 걸 어떻게 하겠소?”

“그럼 온라인 쇼핑몰은 못 하시나요?”

“쇼핑몰은 밑천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

처는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밤낮으로 BM만 파더니 기껏 ‘어떻게 하겠소?’ 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오? 외주일도 못한다, 쇼핑몰도 못 한다면, 유튜브라도 못하시나요?”

허생은 맥북을 닫고 일어나면서,

“아깝다. 내가 당초 BM 공부로 십 년을 기약했는데, 인제 칠 년일걸…”

하고 획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허생은 성수동 거리에 서로 알 만한 사람이 없었다. 바로 테헤란로로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누가 강남에서 제일 부자요?”

손씨(孫氏)를 말해 주는 이가 있어서, 허생이 곧 손씨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허생은 손씨를 대하여 길게 읍하고 말했다.

“내가 집이 가난해서 무얼 좀 해 보려고 하니, Series A로 100억을 투자해 주시기 바랍니다.”

손씨는

“그러시오.”

하고 당장 100억을 카뱅으로 송금했다. 허생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손씨 회사의 심사역들이 허생을 보니 거지였다. 유행 지난 롱패딩에서는 튿어진 구멍사이로 깃털들이 너덜너덜하고,  액정 깨진 아이폰 5를 쓰고 있었으며, 코에서는 맑은 콧물이 흘렀다.  허생이 나가자,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저이를 아시나요?”

“모르지.”

“아니, 하루 아침에, 평생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IR도 없이 100억을 그냥 쏘고, 사업자 등록증도 안 챙기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가요?”

손씨가 말하는 것이었다.

“이건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 대체로 펀딩을 받으러 오는 사람은 으레 자기 비전을 대단히 선전하고, 레퍼런스를 자랑하면서도 비굴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고, 말을 중언부언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 객은 행색은 허술하지만, 피칭이 간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엑시트 없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해 보겠다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닐 것이매, 나 또한 그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다. 투자 안하면 모르되, 이왕 100억 주는 바에 사업자 등록증은 받아서 무엇을 하겠느냐?”

허생은 100억을 입수하자, 다시 자기 집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판교로 내려갔다. 판교는 서울과 경기도 창업자들이 마주치는 곳이요, 테크의 길목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프론트엔드 개발자, 백엔드 개발자, 풀스택 개발자며, 디자이너 및 QA 엔지니어를 모두 두배의 연봉으로 불러들였다. 허생이 판교 인력을 몽땅 쓸었기 때문에 온 나라가 모바일 앱 버그를 못 잡는 형편에 이르렀다. 얼마 안 가서, 허생에게 엔지니어를 내주었던 카카오 같은 회사들이 도리어 열배의 값을 주고 그들을 재고용 하게 되었다. 허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100억으로 온갖 인력의 값을 좌우했으니, 우리 나라의 형편을 알 만하구나.”

+++

허생은 늙은 타다 운전사를 만나 말을 물었다.

“바다 밖에 혹시 스타트업 할 만한 동네가 없던가?”

“있습지요. 언젠가 비행기를 타고 동쪽으로 10시간을 날아가서 가주(加州, 캘리포니아) 라는 동네에 닿았습지요. 아마 오레곤과 멕시코의 중간쯤 될겁니다. 야자나무와 레드우드가 제멋대로 무성하고, 파타고니아 조끼를 입은 VC들이 떼지어 놀며, 팀 쿡을 길거리에서 봐도 사람들이 놀라지 않습니다.”

그는 대단히 기뻐하며,

“자네가 만약 나를 그 곳에 데려다 준다면 함께 부귀를 누릴 걸세.”

라고 말하니, 운전사는 규제를 탓하며 인천공항까지만 데려다 주기로 승낙했다.

드디어 비행기를 타고 동쪽으로 가서 그 땅에 이르렀다. 허생은 우버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고 실망하여 말했다.

“모든 물가가 서울보다 두배는 비싸니 무엇을 해 보겠는가? 날씨는 연중내내 좋으니, 단지 골프는 즐길 수 있겠구나.”

“이 동네 아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대체 누구와 골프를 친단 말씀이오?”

우버 드라이버의 말이었다.

“스코어만 좋으면 사람이 절로 모인다네. OB가 날까 두렵지, 사람이 없는 것이야 근심할 것이 있겠나?”

이 때, 샌프란에 수천명의 홈리스 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샌프란 도시에서 이들에게 거처를 제공하려 하였으나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았다. 홈리스들도 AI에 일자리를 뺏겨 배고프고 곤란한 판이었다. 허생이 홈리스 우두머리를 찾아가서 달래었다.

“천명이 우버 운전을 해서 벌면 모두 얼마지요?”

“일 인당 한시간에 20불 정도를 벌지요”

“모두 스마트폰은 있소?”

“없소.”

“자동차는 있소?”

홈리스들이 어이없어 웃었다.

“자동차가 있고 스마트폰이 있는 놈이 무엇 때문에 홈리스가 된단 말이오?”

“정말 그렇다면, 왜 아이폰도 사고, 토요타 프리우스를 사서 우버 운전수가 되려 하지 않는가? 그럼 홈리스 소리도 안듣고 살면서, 집에서는 포트나이트(Fortnite)의 낙이 있을텐데.”

“아니, 왜 바라지 않겠소? 다만 돈이 없어 못 할 뿐이지요.”

허생은 웃으며 말했다.

“실리콘밸리에 살면서 어찌 돈을 걱정할까? 내가 능히 당신들을 위해서 마련한게 있소. 내일 이메일을 열어보면 스톡옵션 계좌가 있으니, 마음대로 가져가구려.”

허생이 언약하고 팔로알토로 내려가자, 홈리스들은 모두 그를 미친 놈이라고 비웃었다.

이튿날, 홈리스들이 이메일을 열어보니, 과연 허생이 에어비앤비 스톡옵션 30만주를 뿌린 것이었다. 모두들 대경해서 허생 앞에 줄이어 절했다.

“오직 멘토님의 명령을 따르겠소이다.”

이에, 홈리스 들이 다투어 스톡옵션을 자기 구좌로 이체하려 하였으나, 신용 한도 때문에 100주 밖에 못했다.

“너희들, 신용 한도가 100주 밖에 안되면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인제 너희들이 개발자가 되려고 해도 신용불량자의 장부에 올랐으니, 갈 회사가 없다. 내가 여기서 너희들을 기다릴 것이니, 한 사람이 100주를 팔아서 개발자 한명씩 꼬셔오너라.”

허생의 말에 홈리스들은 모두 좋다고 흩어져 갔다.

허생은 1천명 인력이 1년동안 버틸 펀딩을 준비하고 기다렸다. 홈리스 들이 빠짐없이 모두 돌아왔다.  개발자들과 함께 팔로알토로 내려가 위워크에 입주했다. 허생이 홈리스들을 몽땅 쓸어 가서 샌프란 도시 안에 시끄러운 일이 없었다.

그들은 리눅스를 깔고 코딩을 시작했다. AWS클라우드를 연동하고, Slack으로 소통하며, JIRA로 버그를 관리했다.  개발 말고 다른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속도가 빨라서 3분기 만에 베타 버전이 나왔다. 허생은 소스코드를 모두 USB에 담아 구글로 가져가서 팔았다. 구글은 시총이 천조나 되는 회사였다. 비전펀드 사태로 마을에 불경기가 들어서, 로펌 비용을 제하고 간신히 1조를 얻게 되었다.

허생이 탄식하면서,

“이제 조그만 유니콘 하나 만들었구나.”

하고, 이에 직원 1천명을 모아 놓고 말했다.

“내가 처음에 너희들과 창업할 때엔 먼저 비지니스 모델을 증명하고 J커브 매출을 그리려 하였더니라. 그런데 펀딩은 부족하고 유니콘만 만들라고 하니, 나는 이제 여기를 떠나련다. 다만, 아이들을 낳거들랑 오른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하루라도 먼저 난 사람이 새모델을 쓰도록 양보케 하여라.”

나머지 소스코드를 모두 지우면서,

“개발하지 않으면 버그 잡는 이도 없으렷다.”

하고 루트 디렉토리에서 “rm -rf” 명령어를 타이핑 하며,

“하드를 복구해서 소스코드 주워갈 사람이 있겠지”

했다. 그리고 파이썬(역자주: 컴퓨터 언어)을 할 줄 아는 자들을 골라 모조리 함께 비행기에 태우면서,

“이 나라가 AI에 지배되는건 막아야지.”

했다.

+++

허생은 한국으로 돌아와 각종 임팩트 펀드에 투자했다. 그러고도 1천억이 남았다.

“이건 손씨에게 갚을 것이다.”

허생이 가서 손씨를 보고

“나를 알아보시겠소?”

하고 묻자, 손씨는 놀라 말했다.

“그대의 허름한 롱패딩이 그대로이니, 혹시 Series A 펀딩을 다 날리지 않았소?”

허생이 웃으며,

“운영수수료로 조르지오 아르마니 양복을 사 입는 것은 당신들이나 하는 일이오. 100억이 어찌 창업가정신을 살찌게 하겠소?”

하고 1천억을 손씨에게 내놓았다.

“내가 린스타트업의 방법론을 몰라, 당신에게 덜컥 100억을 펀딩 받은게 부끄럽소.”

손씨는 대경(大驚)해서 일어나 절하여 사양하고, 투자금을 보통주로 전환하겠노라 했다. 허생이 잔뜩 역정을 내어,

“당신은 나를 바지사장으로 보는가?”

하고는 소매를 뿌리치고 가 버렸다.

손씨는 가만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허생이 성수동 오피스텔로 들어가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한 요기요 배달원이 오토바이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손씨가 말을 걸었다.

“저 조그만 오피스텔이 누구의 집이오?”

“허생원 댁입지요. 가난한 형편에 웹서핑만 좋아하더니, 하루 아침에 집을 나가서 5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으시고, 시방 부인이 혼자 사는데 별로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것 같지 않더이다.”

손씨는 비로소 그의 성이 허씨라는 것을 알고, 탄식하며 삼성동 사무실로 돌아갔다.

이튿날, 손씨는 성수동 그 집에 찾아가서 돈도 돌려 주며 VC 업계로 입문을 권유했으나, 허생은 모두 거절하였다.

“내가 부자가 되고 싶었다면, 1조로 엑시트 하고 천억만 가져왔겠소? 이제부터는 당신의 도움으로 살아가겠소. 어드바이저로 이름이나 올려주고 법카나 하나 주도록 하오. 일생을 그러면 족하지요. 왜 포트폴리오로 정신을 괴롭힐 것이오?”

손씨는 허생을 여러 가지로 권유하였으나, 끝끝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손씨는 그 때부터 허생의 오피스텔에 양식이 떨어질 때쯤 되면 샛별배송 음식들을 주문해 주었다. 허생은 그것을 흔연히 받아들였으나, 혹 과도한 포장용기가 오면 좋지 않은 기색으로,

“나에게 분리수거를 맡기면 어찌하오?”

하였고, 혹 발렌타인 21년산을 들고 찾아가면 아주 반가워하며 서로 취하도록 마셨다.

이렇게 몇 해를 지나는 동안에 두 사람 사이의 신뢰가 날로 두터워 갔다. 어느 날, 손씨가 5년 동안에 어떻게 1조를 벌었던가를 조용히 물어 보았다. 허생이 대답하기를,

“그야 가장 알기 쉽지요. 한국이라는 나라는 외국과 언어가 통하질 않고, 육지로 다른 나라와 통하지 않아서 창업팀들이 다 제자리에서 머물지요. 무릇 100억은 적은 돈이라 Pre-IPO 딜은 독점할 수 없지만, 그것을 열로 쪼개서 10억을 열군데 투자할 수는 있겠지요. 단위가 작으면 굴리기가 쉬운 까닭에, 한 건에서 실패하더라도 다른 투자건에서 재미를 볼 수 있으니, 이것은 보통 수익률 맞추기에 급급한 조그만 VC들이 하는 짓 아니오? 대개 100억이면 족히 한 섹터의 핫 딜들은 슬그머니 독점할 수 있기 때문에 돈은 벌 수 있는데, 이는 벤처 생태계를 해치는 길이 될 것입니다. 사모펀드(PE)들이 만약 나의 이 방법을 쓴다면 반드시 나라를 병들게 만들 것이오.”

“처음에 내가 선뜻 100억을 투자할 줄 알고 찾아와 피칭 하셨습니까?”

허생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당신만이 내게 꼭 투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모태펀드를 받은 VC들은 누구나 다 주었을 것이오. 내 스스로의 아우라로 족히 100억은 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투자 결정은 투심에 달린 것이니, 낸들 그것을 어찌 알겠소? 그러므로 내 말을 믿어주는 심사역은 복 있는 사람이라, 이 딜을 엑시트하면 승진할텐데 어찌 투자하지 않았겠소? 이미 Series A 후에는 마일스톤만 보고 일을 한 까닭으로 하는 일 마다 성공했던 것이고, 만약 내가 사사로이 내 연봉이나 올리려 했다면 성패는 알 수 없었겠지요.”

+++

손씨는 본래 청와대 창업지원실 김실장과 잘 아는 사이였다. 김실장이 손씨에게 유니콘 창업자 출신 중 쓸만한 인재가 없는가를 물었다. 손씨가 허생의 이야기를 하였더니, 김실장은 깜짝 놀라면서,

“기이하다. 그게 정말인가? 그의 이름이 무엇이라 하던가?”

하고 묻는 것이었다.

“소인이 그분과 3년동안 술 마시면서도 여태껏 페북 친구도 못 되었습니다.”

“그는 기인이야. 자네와 같이 가 보세.”

밤에 김실장은 수행비서들도 다 물리치고 손씨만 데리고 성수역에서 내려 전동킥보드를 타고 허생을 찾아갔다. 손씨는 김실장을 오피스텔 건물 밖에서 서서 기다리게 하고 혼자 먼저 들어가서, 김실장이 몸소 찾아온 연유를 이야기했다. 허생은 못 들은 체하고,  한쪽 구석에서 리니지만 하는 등 딴청을 피우며,

“당신이 들고 온 발렌타인이나 어서 이리 내놓으시오.”

했다. 그리하여 즐겁게 취중 게임을 이어갔다. 손씨는 김실장을 밖에 오래 서 있게 하는 것이 민망해서 재촉하였으나, 허생은 렙업에만 몰두하다가 야심해서야 비로소 김실장을 안으로 불렀다.

김실장이 들어왔지만 허생은 명함도 건네지 않았다. 김실장은 몸 둘 곳을 몰라하며 애꿎은 리멤버 앱만 만지작 거렸다. 김실장이 범정부 차원의 유니콘 육성 아젠다를 설명하자, 허생은 불편한 표정으로 노이즈캔슬링 에어팟 프로를 귀에 끼며 말을 끊었다.

“밤은 짧은데 말이 길어서 듣기에 지루하다. 너는 지금 몇급 공무원이냐?”

“1급이오.”

“그렇다면 너는 나라의 신임받는 신하로군. 내가 이해진 같은 이를 천거하겠으니, 네가 대통령께 아뢰어서 삼고초려를 하게 할 수 있겠느냐?”

김실장은 고개를 숙이고 폰으로 이해진 의장의 네이버 지분 가치를 검색하더니,

“어렵습니다. 플랜 B를 듣고자 합니다.”

했다.

“나는 원래 플랜 B라는 것은 모른다.”

하고 허생은 생까다가, 김실장의 간청을 못 이겨 말을 이었다.

“너는 국회에 건의하여 종부세를 인상하고, 재벌기업의 세금을 인상해 팁스 자금이 바닥난 스타트업에 나누어 줄 수 있겠느냐?”

김실장은 또 머리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

했다.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 하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느냐? 가장 쉬운 일이 있는데, 네가 능히 할 수 있겠느냐?”

“말씀을 듣고자 하옵니다.”

“무릇, 4차 산업혁명을 이루려면 남의 나라를 벤치마킹 하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는 법이다. 지금 중국 대륙은 텐센트와 알리바바가 천하의 주인이 되어서 딥러닝, 빅데이터, 핀테크를 필두로 온 IT 산업을 호령하는 터이다. 진실로 우리 자제들이 중국으로 유학가서 인공지능 박사를 받도록 장학금을 줄 것과, 위챗의 안면인식 기술 수입을 허하면, 저들도 반드시 자기네에게 친근하려 함을 보고 기뻐할 것이다. 과학고 출신의 영특한 자제들을 가려 뽑아, 중국 옷을 입히고 유학시켜 저 나라의 실정을 정탐하는 한편, 저 땅의 마윈, 마화텅과 일촌을 맺는다면 천하를 뒤집고 미, 중, 일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고, 못 되어도 IT 강국의 지위를 잃지 않을 것이다.”

김실장은 힘없이 말했다.

“과학고 영재들은 모두 의사가 되려하는데, 누가 중국 옷을 입고 중국에 유학을 하겠습니까?”

허생은 크게 꾸짖어 말했다.

“소위 엘리트란 것들이 무엇이란 말이냐? 금수저로 태어나 국가 고시만 준비하면서 자칭 엘리트라 뽑내다니, 이런 어리석을 데가 있느냐? 학벌이나 스펙을 중히 여기는 것은 80년대 습속에 지나지 못한데, 대체 무엇을 가지고 미래에 먹고 살려 한단 말인가?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만들기 전에 아타리(Atari)에서 인턴생활을 마다하지 않았고, 빌 게이츠는 하바드를 때려친 뒤 IBM에 머리를 숙이고 MS-DOS 납품한 걸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제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해 청년 창업을 육성한다고 하면서, 있는 규제들도 과감히 철폐해야 하는 판국에 없는 규제까지 만들면서 유니콘을 기대한단 말이냐? 내가 세가지를 들어 말하였는데, 너는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한다면서 그래도 신임받는 신하라 하겠는가? 너 같은 자는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받아야 할 것이다.”

하고 좌우를 돌아보며 얼음물과 양동이를 찾았다. 김실장은 놀라서 일어나 급히 비상계단으로 뛰쳐나가 도망쳐서 돌아갔다.
이튿날, 다시 찾아가 보았더니, 오피스텔은 텅 비어 있고, 허생은 간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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