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자가 질문을 받을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AMA는 Ask me anything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는 뜻입니다.
Date | 16/09/21 08:58:05 |
Name | [익명] |
Subject | 아버지가 목사님, 전 모태신앙입니다. |
모 목사의 성추행 및 [일부]리거들에 대한 비난이 많은데, 개신교인들에 대한 궁금점이 있다면 아는 것 답변해드리겠습니다. 아버님은 큰 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현재는 독립하셔서 작은 교회의 담임 목사이십니다. 전 모태신앙이지만, 신앙이 확고하진 않습니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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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몇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1. 예수의 모습이 기독교의 진리라고 생각하신다고 답변하셨는데.. 성경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종교에서의 정의와 인간으로서의 정의가 충돌할 때 어떠한 점을 따라야 할까요? 예를 들어, 구약에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기도 하고 이집트의 모든 장자를 죽이시기도 하는데, 이건 인간으로서 볼 때는 과연 따라야 하는 것인가 싶은 점도 있잖아요. 이럴때요.
좀 더 현실적으로 과거 십자군 전쟁의 당위성, 그리고 다른 종교지만 이슬람들의 폭탄테러 등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단지 잘못... 더 보기
몇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1. 예수의 모습이 기독교의 진리라고 생각하신다고 답변하셨는데.. 성경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종교에서의 정의와 인간으로서의 정의가 충돌할 때 어떠한 점을 따라야 할까요? 예를 들어, 구약에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기도 하고 이집트의 모든 장자를 죽이시기도 하는데, 이건 인간으로서 볼 때는 과연 따라야 하는 것인가 싶은 점도 있잖아요. 이럴때요.
좀 더 현실적으로 과거 십자군 전쟁의 당위성, 그리고 다른 종교지만 이슬람들의 폭탄테러 등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단지 잘못... 더 보기
안녕하세요~
몇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1. 예수의 모습이 기독교의 진리라고 생각하신다고 답변하셨는데.. 성경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종교에서의 정의와 인간으로서의 정의가 충돌할 때 어떠한 점을 따라야 할까요? 예를 들어, 구약에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기도 하고 이집트의 모든 장자를 죽이시기도 하는데, 이건 인간으로서 볼 때는 과연 따라야 하는 것인가 싶은 점도 있잖아요. 이럴때요.
좀 더 현실적으로 과거 십자군 전쟁의 당위성, 그리고 다른 종교지만 이슬람들의 폭탄테러 등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단지 잘못된 종교적 신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시나요?
2. 우리나라를 볼 때 개척 교회도 많고 사실 여기저기 교회들이 산개해 있는데요. 또한 교회에서는 정복이라던가 승리라던가 라는 말도 상당히 많이 사용하고 있고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한다는 명목으로 많이 행해지고 있지만 보여지기로는 세를 불리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보여지는 것도 사실이고요. 이러한 우리나라의 전도 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이러한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전도가 타당하다고 생각하시면 그 한계나 제한선은 어느정도라고 생각하시나요?
3. 믿음이 깊어질 수록 개인을 위한 기도를 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보편적으로 그런가요? 우리나라 기독교 역시 상당히 구복신앙에 가까운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요. 또한 기도 내용이 개인적이지 않더라도 실질적으로는 교회 지인들, 교회 사업들을 위한 기도가 대다수인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러한 점 역시 개인에 대한 기도와 전혀 차이가 없지 않나요?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4. 예수님 하면 사랑이라는 말이 떠오르는데요. 불교하면 '자비'라는 말이 떠오르듯이요. 실제로 성경의 말씀 그리고 기독교의 모습을 보면 사랑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도 많이 보여집니다. 특히 다른 종교의 사람, 종교를 대하는 모습을 볼 때 더욱 그러한데요. 이러한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5. 신부와 평신도로 구분되어 있는 천주교와는 다르게 개신교는 목사와 평신도는 동일한 위치라고 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회는 목사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고 생각되며, 목사의 말에 따라 신도들이 많이 좌우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대형교회 목사의 경우 그러한 모습은 더욱 크게 나타난 것으로 보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 역시 결혼도 하고 가정도 꾸리고 있습니다. 즉, 목사는 많은 평신도들을 이끄는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정을 갖고 있는데요 그러하면 목사의 직무와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충돌이 발생할 여지가 많지 않나요? 아무래도 핏줄이다 보니 평신도보다는 자식들에게 좀 더 신경쓸 수 밖에 없고요. 그러한 모습은 목회자로서 사람을 이끌어야 되는 직무와는 상당히 배치된다고 보이는데요. 천주교의 결혼하지 않는 신부와 다르게 결혼하는 목사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상입니다.
혹시 질문 내용중에 무례한 내용이 있다면 사과의 말씀 드리며, 해당 부분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혹 공격적인 부분이 있더라도 무지의 소치로 봐주십시요.;;
몇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1. 예수의 모습이 기독교의 진리라고 생각하신다고 답변하셨는데.. 성경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종교에서의 정의와 인간으로서의 정의가 충돌할 때 어떠한 점을 따라야 할까요? 예를 들어, 구약에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기도 하고 이집트의 모든 장자를 죽이시기도 하는데, 이건 인간으로서 볼 때는 과연 따라야 하는 것인가 싶은 점도 있잖아요. 이럴때요.
좀 더 현실적으로 과거 십자군 전쟁의 당위성, 그리고 다른 종교지만 이슬람들의 폭탄테러 등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단지 잘못된 종교적 신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시나요?
2. 우리나라를 볼 때 개척 교회도 많고 사실 여기저기 교회들이 산개해 있는데요. 또한 교회에서는 정복이라던가 승리라던가 라는 말도 상당히 많이 사용하고 있고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한다는 명목으로 많이 행해지고 있지만 보여지기로는 세를 불리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보여지는 것도 사실이고요. 이러한 우리나라의 전도 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이러한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전도가 타당하다고 생각하시면 그 한계나 제한선은 어느정도라고 생각하시나요?
3. 믿음이 깊어질 수록 개인을 위한 기도를 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보편적으로 그런가요? 우리나라 기독교 역시 상당히 구복신앙에 가까운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요. 또한 기도 내용이 개인적이지 않더라도 실질적으로는 교회 지인들, 교회 사업들을 위한 기도가 대다수인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러한 점 역시 개인에 대한 기도와 전혀 차이가 없지 않나요?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4. 예수님 하면 사랑이라는 말이 떠오르는데요. 불교하면 '자비'라는 말이 떠오르듯이요. 실제로 성경의 말씀 그리고 기독교의 모습을 보면 사랑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도 많이 보여집니다. 특히 다른 종교의 사람, 종교를 대하는 모습을 볼 때 더욱 그러한데요. 이러한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5. 신부와 평신도로 구분되어 있는 천주교와는 다르게 개신교는 목사와 평신도는 동일한 위치라고 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회는 목사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고 생각되며, 목사의 말에 따라 신도들이 많이 좌우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대형교회 목사의 경우 그러한 모습은 더욱 크게 나타난 것으로 보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 역시 결혼도 하고 가정도 꾸리고 있습니다. 즉, 목사는 많은 평신도들을 이끄는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정을 갖고 있는데요 그러하면 목사의 직무와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충돌이 발생할 여지가 많지 않나요? 아무래도 핏줄이다 보니 평신도보다는 자식들에게 좀 더 신경쓸 수 밖에 없고요. 그러한 모습은 목회자로서 사람을 이끌어야 되는 직무와는 상당히 배치된다고 보이는데요. 천주교의 결혼하지 않는 신부와 다르게 결혼하는 목사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상입니다.
혹시 질문 내용중에 무례한 내용이 있다면 사과의 말씀 드리며, 해당 부분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혹 공격적인 부분이 있더라도 무지의 소치로 봐주십시요.;;
제가 글쓴분은 아니지만 저도 기독교 관련 AMA를 받아 볼까 하는 참에 글쓴분의 글에 숟가락 얹어 봅니다.
용기0님의 글을 보니 질문이라기보다 평소 기독교에 대해 생각하셨던 것을 쓰신 듯합니다. 글로나마 이렇게 소통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1.
먼저 창세기에 나온 이야기는 글자그대로를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과 시대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는 석기시대 혹은 청동기시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예로 드신 ‘소돔과 고모라’, ‘이집트 장자’의 스토리는 저도 용기0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너무 한 거... 더 보기
용기0님의 글을 보니 질문이라기보다 평소 기독교에 대해 생각하셨던 것을 쓰신 듯합니다. 글로나마 이렇게 소통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1.
먼저 창세기에 나온 이야기는 글자그대로를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과 시대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는 석기시대 혹은 청동기시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예로 드신 ‘소돔과 고모라’, ‘이집트 장자’의 스토리는 저도 용기0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너무 한 거... 더 보기
제가 글쓴분은 아니지만 저도 기독교 관련 AMA를 받아 볼까 하는 참에 글쓴분의 글에 숟가락 얹어 봅니다.
용기0님의 글을 보니 질문이라기보다 평소 기독교에 대해 생각하셨던 것을 쓰신 듯합니다. 글로나마 이렇게 소통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1.
먼저 창세기에 나온 이야기는 글자그대로를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과 시대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는 석기시대 혹은 청동기시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예로 드신 ‘소돔과 고모라’, ‘이집트 장자’의 스토리는 저도 용기0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너무 한 거 아닌가?, 왜 죄 없는 사람들을 혹은 죄 있더라도 용서해 줘야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이 바로 목사입니다. 예배 중에 설교로서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서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군 전쟁이나 이슬람 폭탄테러나 그 외, 시오니즘 같은 종교문제는 개인적으로 다 잘못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라는 것이 세대를 흐르며 그 세대의 권력자나 다른 무리들에게 이용당하거나 종교인들이 잘못된 행위를 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진정한 이슬람교도라면 IS가 하는 짓을 잘못 되었다 말합니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2.
이 문제는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됩니다. 처음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 온 것이 일제 강점기입니다. 기독교는 먼저 중국과 일본에 전파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알게 되었고 본국에 보고하여 조선에도 선교사를 파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00년이 지난 지금, 중국과 일본은 기독교의 세가 적으나(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막은 것이라 볼 수 있지만) 유일하게 한국만 엄청난 성장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제 생각에 기독교는 조선, 즉 당시 한국인들에게 해방의 종교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대중이 기독교를 중국인이나 일본인보다 쉽게 받아들였고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폭발적인 성장세로 성장하였으며 그 성장세는 80년대 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제가 어렸던 80~90년대 당시만 하더라도 무조건 교회는 성장 우선주의였습니다. 큰 교회, 만 명 모이는 교회, 5만 명 목표 등등. 하지만 인류의 역사로 보았을 때 르네상스가 시작되며 중세가 마감되었듯이 80년대를 지나 90년대가 되자 한국 기독교의 양적 성장은 한풀 꺾이기 시작했습니다.(저는 한국 사회의 질적 성장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사회적 변화로 인한 기독교의 변화를 교회 내에서 빨리 캐치를 해야 하지만 한국 기독교는 아시다시피 리더가 없습니다. 리더가 없다보니 각각의 교회들이 스스로 대비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리더인 목사님들이 만일 60~80년대의 성장을 보고 자란 세대라면, 그 분들의 사상은 어떠할까요?
이제 양적성장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교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사회변화를 읽지 못한, 읽더라도 대처할 능력이 안 되는 분들은 어쩔 수 없이 예전의 사상을 되풀이 할 뿐입니다. 제가 2년 정도 주변의 많은 교회들을 돌아다녀 봤습니다. 큰교회, 작은교회, 카페교회, 사회봉사교회 등등. 말씀하신 정복이나, 승리라는 단어를 쓰며 전도에 힘쓰라는 목사님들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 교회는 대부분 교인들 수가 적었고, 앞으로도 양적성장 하기는 힘들어 보였습니다.
3.
이 질문은 답변하기가 힘든데, 기도는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이 다 다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인데 말하는 스타일이나, 그 사람의 평소의 철학이 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저를 예로 들면, 식사기도 할 때 마다 이 음식을 만들어 주신 분, 재료를 배달해 주신 분, 재료를 기르거나 잡아 주신 분들에게 짧게 감사를 드립니다. 물론 만들어 주신 분 외에는 모르는 사이지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제가 먹을 수 있게 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상황에 따라 다 다르게 합니다. 예배 중 대표기도라면 나라를 위해, 교회를 위해, 그 예배를 위해, 만일 교인 중 어려운 문제에 빠졌다면 그 교인을 위한 것이 주 내용입니다. 자신 혼자서 하는 기도는 몰래 엿듣지 않는 이상 어떤 기도를 하는지 들어 볼 수가 없기에 저는 답변 드리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의 혼자 하는 기도를 들어 본 적이 없어서..
4.
기독교는 사랑이 핵심 교리입니다. 그리고 유일신 사상 또한 핵심 교리입니다. 하나의 신만 섬기며 그 신이 말한 사랑을 하며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질문을 ‘유일신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도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것 아닌가?’로 이해하고 답변 드리겠습니다.
사실 다른 종교를 갖고 있거나 종교가 없는 분들도 사랑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사람들 중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다만 알려지지 않을 뿐입니다. 그리고 2번의 답변과도 이어집니다. 더 이상의 양적성장 보다 질적성장을 현재 교회들은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전도가 아닌 사회를 따듯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 결론적으로 다른 종교나 무신론자들에게 사랑을 베풀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5.
질문의 요지가 ‘목사가 결혼하는 것이 잘못된 것 아닌가?’인가요?
천주교에서 신부님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은 교리에 따른 것입니다. 온전히 자신의 삶을 하나님과 교회, 세상을 위해 바치기 위함이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교리 중에는 목사의 결혼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80년대 이전 목회자들 중 ‘나는 교회와 결혼했다.’ 라고 말한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 가정을 돌보지 않은 분들의 스토리도 꽤 들었습니다. 질문 중에 말씀하신 목사들 중 교인들 보다 자식들에게 더 신경 썼다는 말씀은 그 분들에게 해당 되지 않는 것이고, 물론 자기 자식만 챙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용기0’님께서 교회를 다니시는지 모르겠으나, 목사들은 교인들의 눈치 엄청 살핍니다. 대형교회 목사들이 권력 있어 보이지만 그 분들도 다 월급쟁이입니다. 만일 자신의 자식들만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면 교인들 사이에서 좋지 않은 말이 나올 것입니다. 일반 교회의 목사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교인들이 떠나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의 목회철학과 교인이 달라서 헤어질 수는 있으나 목사의 잘못으로 인해 떠나는 교인은 목사로서 치욕적인 일입니다.
기독교의 시작은 그 유명한 종교개혁을 이룬 루터로 볼 수 있습니다. 루터는 자신이 설교에서 가정의 소중함을 말한 것을 실천하기 위해 전 수녀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 이후로 기독교의 목사들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목사가 결혼 하는 이유는 세상에 바른 결혼생활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실제적으로 그렇게 못한 사실이 있기에 슬픕니다.
용기0님의 글을 보니 질문이라기보다 평소 기독교에 대해 생각하셨던 것을 쓰신 듯합니다. 글로나마 이렇게 소통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1.
먼저 창세기에 나온 이야기는 글자그대로를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과 시대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는 석기시대 혹은 청동기시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예로 드신 ‘소돔과 고모라’, ‘이집트 장자’의 스토리는 저도 용기0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너무 한 거 아닌가?, 왜 죄 없는 사람들을 혹은 죄 있더라도 용서해 줘야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이 바로 목사입니다. 예배 중에 설교로서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서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군 전쟁이나 이슬람 폭탄테러나 그 외, 시오니즘 같은 종교문제는 개인적으로 다 잘못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라는 것이 세대를 흐르며 그 세대의 권력자나 다른 무리들에게 이용당하거나 종교인들이 잘못된 행위를 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진정한 이슬람교도라면 IS가 하는 짓을 잘못 되었다 말합니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2.
이 문제는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됩니다. 처음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 온 것이 일제 강점기입니다. 기독교는 먼저 중국과 일본에 전파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알게 되었고 본국에 보고하여 조선에도 선교사를 파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00년이 지난 지금, 중국과 일본은 기독교의 세가 적으나(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막은 것이라 볼 수 있지만) 유일하게 한국만 엄청난 성장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제 생각에 기독교는 조선, 즉 당시 한국인들에게 해방의 종교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대중이 기독교를 중국인이나 일본인보다 쉽게 받아들였고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폭발적인 성장세로 성장하였으며 그 성장세는 80년대 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제가 어렸던 80~90년대 당시만 하더라도 무조건 교회는 성장 우선주의였습니다. 큰 교회, 만 명 모이는 교회, 5만 명 목표 등등. 하지만 인류의 역사로 보았을 때 르네상스가 시작되며 중세가 마감되었듯이 80년대를 지나 90년대가 되자 한국 기독교의 양적 성장은 한풀 꺾이기 시작했습니다.(저는 한국 사회의 질적 성장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사회적 변화로 인한 기독교의 변화를 교회 내에서 빨리 캐치를 해야 하지만 한국 기독교는 아시다시피 리더가 없습니다. 리더가 없다보니 각각의 교회들이 스스로 대비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리더인 목사님들이 만일 60~80년대의 성장을 보고 자란 세대라면, 그 분들의 사상은 어떠할까요?
이제 양적성장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교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사회변화를 읽지 못한, 읽더라도 대처할 능력이 안 되는 분들은 어쩔 수 없이 예전의 사상을 되풀이 할 뿐입니다. 제가 2년 정도 주변의 많은 교회들을 돌아다녀 봤습니다. 큰교회, 작은교회, 카페교회, 사회봉사교회 등등. 말씀하신 정복이나, 승리라는 단어를 쓰며 전도에 힘쓰라는 목사님들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 교회는 대부분 교인들 수가 적었고, 앞으로도 양적성장 하기는 힘들어 보였습니다.
3.
이 질문은 답변하기가 힘든데, 기도는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이 다 다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인데 말하는 스타일이나, 그 사람의 평소의 철학이 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저를 예로 들면, 식사기도 할 때 마다 이 음식을 만들어 주신 분, 재료를 배달해 주신 분, 재료를 기르거나 잡아 주신 분들에게 짧게 감사를 드립니다. 물론 만들어 주신 분 외에는 모르는 사이지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제가 먹을 수 있게 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상황에 따라 다 다르게 합니다. 예배 중 대표기도라면 나라를 위해, 교회를 위해, 그 예배를 위해, 만일 교인 중 어려운 문제에 빠졌다면 그 교인을 위한 것이 주 내용입니다. 자신 혼자서 하는 기도는 몰래 엿듣지 않는 이상 어떤 기도를 하는지 들어 볼 수가 없기에 저는 답변 드리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의 혼자 하는 기도를 들어 본 적이 없어서..
4.
기독교는 사랑이 핵심 교리입니다. 그리고 유일신 사상 또한 핵심 교리입니다. 하나의 신만 섬기며 그 신이 말한 사랑을 하며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질문을 ‘유일신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도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것 아닌가?’로 이해하고 답변 드리겠습니다.
사실 다른 종교를 갖고 있거나 종교가 없는 분들도 사랑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사람들 중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다만 알려지지 않을 뿐입니다. 그리고 2번의 답변과도 이어집니다. 더 이상의 양적성장 보다 질적성장을 현재 교회들은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전도가 아닌 사회를 따듯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 결론적으로 다른 종교나 무신론자들에게 사랑을 베풀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5.
질문의 요지가 ‘목사가 결혼하는 것이 잘못된 것 아닌가?’인가요?
천주교에서 신부님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은 교리에 따른 것입니다. 온전히 자신의 삶을 하나님과 교회, 세상을 위해 바치기 위함이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교리 중에는 목사의 결혼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80년대 이전 목회자들 중 ‘나는 교회와 결혼했다.’ 라고 말한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 가정을 돌보지 않은 분들의 스토리도 꽤 들었습니다. 질문 중에 말씀하신 목사들 중 교인들 보다 자식들에게 더 신경 썼다는 말씀은 그 분들에게 해당 되지 않는 것이고, 물론 자기 자식만 챙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용기0’님께서 교회를 다니시는지 모르겠으나, 목사들은 교인들의 눈치 엄청 살핍니다. 대형교회 목사들이 권력 있어 보이지만 그 분들도 다 월급쟁이입니다. 만일 자신의 자식들만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면 교인들 사이에서 좋지 않은 말이 나올 것입니다. 일반 교회의 목사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교인들이 떠나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의 목회철학과 교인이 달라서 헤어질 수는 있으나 목사의 잘못으로 인해 떠나는 교인은 목사로서 치욕적인 일입니다.
기독교의 시작은 그 유명한 종교개혁을 이룬 루터로 볼 수 있습니다. 루터는 자신이 설교에서 가정의 소중함을 말한 것을 실천하기 위해 전 수녀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 이후로 기독교의 목사들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목사가 결혼 하는 이유는 세상에 바른 결혼생활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실제적으로 그렇게 못한 사실이 있기에 슬픕니다.
이러한 성경의 해석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목사입니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면 어린시절 파이가 궁금증이 생길때 마다 교회를 찾아가 목사에게 물어 보는 부분이 있습니다. 성경에 대해 궁금하면 교회를 찾아가서 물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성경에 대해 물어 봤다고 무조건 등록해라, 우리 교회다녀야 알려준다 이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진짜 그러면 어쩌지..)
성경의 해석은 교단마다, 목사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천국에서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가 어떤 의미인지 제 생각을 적어 보면, '이 세... 더 보기
성경의 해석은 교단마다, 목사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천국에서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가 어떤 의미인지 제 생각을 적어 보면, '이 세... 더 보기
이러한 성경의 해석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목사입니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면 어린시절 파이가 궁금증이 생길때 마다 교회를 찾아가 목사에게 물어 보는 부분이 있습니다. 성경에 대해 궁금하면 교회를 찾아가서 물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성경에 대해 물어 봤다고 무조건 등록해라, 우리 교회다녀야 알려준다 이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진짜 그러면 어쩌지..)
성경의 해석은 교단마다, 목사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천국에서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가 어떤 의미인지 제 생각을 적어 보면, '이 세상에서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천국에서는 모두 동등하다.'
다시 말해, 천국은 세상의 유명세나, 힘이나, 권력이나, 모두 필요 없다고 말씀하신게 아닐까 싶습니다.
기독교 내에서 아까 말씀드린대로 해석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큰 틀은 일치합니다. 세례요한은 마지막 예언자이고, 기독교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실족했다, 그는 실패했다, 의심했기 때문에 천국에 가지 못했다고 하는 말은 조금 위험해 보입니다.
성경의 해석은 교단마다, 목사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천국에서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가 어떤 의미인지 제 생각을 적어 보면, '이 세상에서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천국에서는 모두 동등하다.'
다시 말해, 천국은 세상의 유명세나, 힘이나, 권력이나, 모두 필요 없다고 말씀하신게 아닐까 싶습니다.
기독교 내에서 아까 말씀드린대로 해석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큰 틀은 일치합니다. 세례요한은 마지막 예언자이고, 기독교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실족했다, 그는 실패했다, 의심했기 때문에 천국에 가지 못했다고 하는 말은 조금 위험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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