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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9/10/29 10:23:25
Name   호라타래
Subject   낭만적 사랑을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을까?
들어가며

태평양으로 떠나기 전 고등학교 여자 후배를 만났어요. 하릴없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옛날 이야기가 나오고, 후배가 웃으며 얘기했어요. 고등학교 때 보면서 '이 X끼는 연애 못 하겠구만' 했었다고요. 그 얘기를 듣고 둘이서 한참을 깔깔거렸어요. 말미에 후배가 덧붙였지요. 그 때와 비교하면 참 많이 변했다고요. 돌이켜보면 삶은 사랑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했던 듯해요. 달라지는 건 없었으리라 다짐하지만,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 알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소박한 희망은 언제나 남아요.

낭만적 사랑을 학교에서 가르친다는(Curricuclum for doing romantic love) 것이 가능할까요? 만약 가르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후배와의 일화를 떠올린 이후 며칠 동안 이 질문을 여러 사람들에게 던지고 다녔어요. 의견은 제각각이더군요. 경험을 통해 개인이 더듬어 나갈 뿐 가르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회의론부터, 가능은 하겠지만 사랑은 개인의 것으로만 남겨두어야 한다는 반대론, 이론은 사랑의 실제 앞에서 무력하지만 성찰의 자원이 된다는 찬성론, '시험은 어떻게 보고 평가는 어떻게 하지?'라는 현직 교사의 소박한 의문, 배울 수 있다면 배우고 싶다는 희망까지요.

낭만적 사랑을 다루어보겠다는 생각은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냐는 의심을 받고는 해요. 앤 스위들러는 Talk of Love(1994)의 서문에 다음과 같이 적습니다. 자기가 사랑에 대한 연구를 시작할 때, 많은 동료들은 사랑이 너무나도 개인적인 것이라 하면서, 사랑은 사랑하는 이들의 것으로 남겨두라 말했다고요. 사랑에 대한 커리큘럼이라는 아이디어에 대한 반응도 유사한 듯해요. 사랑은 교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말했던 이들은 무엇보다도 사랑이라는 체험의 개인성을 손에 꼽았지요.

그러나 사랑의 개인성을 바탕으로 교육의 가능성을 전부 부정하는 건 섣부르다 느낍니다. 먼저 인간의 삶에서 사랑이라는 체험이 차지하는 비중이 큽니다. 대중매체의 수많은 사랑 이야기, 연애 카운셀링을 찾아 나서는 막막한 사람들, 인터넷에 올라오는 절절한 사랑 고민들은 비근한 삶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강렬한 경험인지 보여줘요. 낭만적 사랑의 변화를 추적한 연구들은 배우자 선택에서 사랑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U. Beck & E. Beck-Gernsheim, 1990; A. Giddens, 1992; S. Coontz, 2006). 현대 사회에서 사랑의 중요성이 크다면, 교육에서 '사랑하기'를 진지하게 다루어볼 필요 또한 크지 않을까요?

또한 교육에서 사랑을 다루는 것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전통적인 교수학습 모델을 상정하더라고요. 일반적으로 커리큘럼(Curriculum)은 경기장 트랙(track)이라는 메타포를 중심으로, 무엇을 언제 배울지 정해놓은 교육과정 정도로 이해되고는 하니 자연스러운 비판입니다. 하지만 커리큘럼(curriculum)은 훨씬 복잡하고 모순적인 개념이에요. 단순한 예를 들자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개념은 처방으로서의 커리큘럼(curriculum as presciription)에 국한될 뿐, 학교에서의 학생들이 경험하는 모든 것 또한 커리큘럼이라는 관점에서 포괄할 수 있습니다(curriculum as experience). 다양한 커리큘럼 이론들은 때로 경합하고 상호 모순적이기도 하지만, 그 다양성 덕분에 교육의 가능성을 폭넓게 탐구할 수 있지요. 그러니 삶 그 자체를 학교에서 배워야 한다는 존 듀이의 신념이나, 'the curriculum of becoming human'을 역설했던 칼 레고(2004)처럼 사랑 또한 교육에서 다루지 못할 이유가 없지요.

이 글에서는 '사랑하기'를 가르치기 위해 어떠한 교육적 접근이 필요할지 커리큘럼 이론을 바탕으로 살펴봅니다. 구체적으로는 상호 경합적인 커리큘럼 이론의 세 축(Learner-centered approach; LC, society-centered approach; SC, knowledge-centered approach; KC)을 바탕으로 각각의 이론이 사랑하기를 가르친다는 기획에 어떠한 대답을 할 수 있는지 파고듭니다. 먼저, 사랑의 개인성을 다루고, 지식이 아닌 정서적/신체적 체험으로서의 사랑을 포괄하기 위해 학습자 중심교육(learner-centered approach)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이어 사랑이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사회중심 교육(society-centered) 방식의 조언들을 참고합니다. 마지막으로 제롬 브루너(Jerome bruner)의 지식탐구방법(way of knowing)를 바탕으로 지식중심 교육(knowledge-centered) 이론에서 끌어쓸 수 있는 자원들도 제한적이지만 제안하고자 합니다.

학습자 중심 교육: 사랑의 내적작동 모델로부터 시작하기 &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을 수용하기

학습자 중심 교육(learner-centered approach)은 자아 실현(self-realization)을 교육의 핵심 목표로 삼는 커리큘럼 이론입니다. 이러한 핵심 가치 하에서 개별 학습자는 자신의 선택과 책임에 따라 개인의 관심사를 발전시켜 나가지요. 학습 환경은 학습자의 욕구와 필요에 따라 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교수자는 학습촉진자(facilitator)로서 학습자의 성장을 돕는데 주력합니다. '학습자가 곧 커리큘럼이다'라는 표현은 이러한 관점을 집약합니다.

학습자 중심교육의 기조는 사랑이 지닌 개인성을 다루는데 적합해요. 개인성이라는 용어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욕구, 욕망을 지닌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교수자가 무엇이 해야하는 가는 외부에서 미리 결정되지 않고, 학습자에 대한 분석과 관찰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즉, 위에서 아래로의 접근이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의 접근을 상정합니다. 상향식 접근은 사랑을 해석하기 위한 심리학적 접근인 애착 모델(attachment model)과 조화를 이룹니다. 유아는 초기 양육자와의 반복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초창기의 애착 관계를 형성합니다. 이 애착경험은 자신, 다른 사람, 환경을 이해하는 신념 혹은 정신적 표상인 내적작동모델(internal working model)의 형성으로 이어집니다. 내적작동모델은 전생애에 걸쳐 영향을 끼치는데, 우리가 관계망의 형태를 다변화하고 경험을 누적하면서 내적작동모델은 복잡화와 재조직화를 겪게 됩니다(Collins & Read, 1994 in 이정희 & 심혜숙, 2007). 한 개인이 낭만적 애착에 대해 지니는 신념체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에서부터 출발할 필요가 있지요.

교육이라는 접근 자체가 특정한 형태의 낭만적 관계를 정상적인 것으로 강요하지 않냐는 비판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퀴어 이론에서는 사회제도 전반이 이성애, 혹은 특정한 형태의 성관계를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그 외의 다른 섹슈얼리티를 배제한다는 지적을 하지요. 이러한 지적은 교육제도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습자 중심교육은 특정한 형태의 내용을 교육하는데 주안점을 두지 않습니다. 대신에 학습자들이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하는 것을 돕지요. 그 구체적인 형태로는 자기지도, 의사결정, 자기반성, 자기평가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있습니다. 학습촉진자로서의 교사는 상호 신뢰를 보장하는 교육 환경을 조성하고, 학생들이 생각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돕고, 토론과 같은 그룹 활동을 조직합니다.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는 외부에서 주어지지 않습니다. 특정한 단계에서 완결되지도 않습니다. 캐나다 교육의 구루인 칼 레고는 '인간이 되기(becoming human)'란 윤리적인 딜레마 앞에서 계속해서 선택을 내리면서 삶을 구성해 나가는 것이라 했고, 동시에 삶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위험을 두려워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던지는 일이라 했지요. 세상이 우리에게 특정한 문법을 강요하지만, 그것을 해체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문법을 구성하는 일이라고도 했고요. (C. Leggo, 1998; 2004). 그러니 고정된 '사랑'을 추구하는 커리큘럼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실천으로 존재하는 '사랑하기'를 위한 커리큘럼만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유연하고 진지한 탐구와 용기는 사랑을 배우기 위해, 그리고 사랑을 하기 위해 우선해야 할 실천적 덕목입니다.

선택, 책임, 윤리, 용기를 강조하는 학습자 중심교육의 전인적인 주장을 사랑에 적용하는 것은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낭만적 애착 관계를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로 강조하지만, 사회통계적인 자료들은 배우자 선택 또한 경제학의 합리적 선택 이론을 바탕으로 상호 교환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지요. 사회학적 접근 또한 친밀한 관계(낭만적 관계를 포함하는)와 경제적 거래는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V. Zelizer, 2005). 이러한 접근들은 낭만적 애착을 개인적인 경험으로 인정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관계일 뿐, 사회제도로 고착된 장기적인 결혼 과정은 낭만적 애착과는 별개의 논리로 돌아가지 않느냐는 입장을 취한다 볼 수 있지요. 결혼과 사랑을 분리하여 비판을 우회할 수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현대 사회의 변화가 결혼에서 사랑이 차지하는 비중을 더욱 증가시킨다는 입장을 취합니다.

먼저 결혼제도의 변화를 분석한 스테파니 쿤츠의 역사학적 입장을 끌어올 수 있습니다. 그녀는 서구 사회 결혼의 역사에서 중세부터 전후 경제 회복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사랑과 결혼은 별개의 것으로 취급되었지만, 경제적 발전과 개인의 선택에 대한 강조 속에서 사랑이라는 이상이 역으로 결혼을 전복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S. Coontz, 2006). 이어 울리히 벡과 엘리자베스 벡 게른하임 부부 또한 1960년대 독일 사회의 이혼율 증가와, 당시 젋은 세대가 결혼계약서를 작성하는 현상 등을 분석하면서 개인의 선택을 강조하고, 개인이 선택해야 하는 범위를 확장시킨 개인화 테제가 북유럽의 결혼 풍토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U. Beck & E. Beck-Gernsheim, 1990).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억압적이기도 했던 전통적 결혼의 구속력이 약화되면서, 이제 지독하지만 너무나도 정상적인 사랑이라는 혼란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혼란을 다루어나가기 위해 선택, 책임, 윤리, 용기는 더욱 중요해지지요(U. Beck & E. Beck-Gernsheim, 1990; A. Giddens, 1992).

학습자 중심교육이 강조하는 정서적 교육(affective education)과 발달적으로 적절한 실천(Developmental appropriate practice) 또한 사랑의 실제를 교육에서 다루기 위해 중요합니다. 인간이 사랑을 경험하는 형태는 다양하지만, 강렬한 정서적/성적 끌림은 다른 인간관계와 사랑을 구분하는 핵심적인 기준 중 하나입니다. 사랑 속에서 인간의 복잡한 감정은 열광적으로 분출되며, 윤리나 도덕과 같은 가치담지적인 주장만으로는 사랑을 온전히 포괄할 수 없습니다. 학습자 중심교육은 학습 과정에서 느낌, 감정, 꿈, 열망과 같은 정서적 경험을 중시합니다. 전통적인 학교교육 방법이 인지적 학습에 주안점을 두어 개인의 정서적 체험을 주변화 하는 것과 다르지요. 한 개인이 자신의 정서적 체험을 접근하는 방식은 동시에 그 개인이 타인의 정서를 다루어나가는 방식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Bouchard et al, 2008; Dunbar, 2014). 사랑의 정서적인 강렬함과, 사랑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나간다는 점을 고려하면 감정과 정동을 중시하는 교육을 체험하는 것은 그 자체로 사랑을 교육하는 한 방법이 됩니다. 설령 사랑이 학교 교육의 한 목표로 공개적으로 천명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학생들이 학교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화를 이루는 숨겨진 커리큘럼(hidden curriculum)로서 학생들에게 사랑하기를 교육하는 수단이 될 것입니다(Kentil, 2009).

발달적으로 적절한 실천이라는 테마 또한 교육에서 사랑을 다루기 위해 중요합니다. 보울비(bowlby)가 주장했던 초기애착 이론부터 신체적 자극과 애착형성 사이의 중요성은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지요. 또한 낭만적 애착 경험은 어떠한 형태로든 성적 정향(sexuality)와 연관되는데, 우리의 성적인 체험은 신체가 조형하는 한계와 가능성 속에서 구성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큽니다. 비록 발달적으로 적절한 실천이라는 개념이 피아제의 인지발달 모형을 중심으로 해석되기는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인간의 신체적/정신적 변화를 단순한 생물학 지식의 암기가 아니라 통합적인 형태로 교육에서 다룰 것을 요청하지요. 이는 2차 성징 이후 대별되는 성별 간 차이와 경시되는 성별 내 차이를 각자의 오해 혹은 사회적 담론 속에만 놓지 않고, 학습자 간 대화를 바탕으로 각자가 탐구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요.

학습자 중심교육은 학습자 개인을 교육의 중심에 놓고, 학습의 과정적 성격에 주목하며, 정서적/신체적 경험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사랑이 지닌 개별성, 미결정성, 정서/신체성에 들어 맞습니다. 현대 사회의 개인화가 결혼의 사회적 구속력을 약화시키고, 사랑의 중요성을 강화하고 있다는 맥락 하에서 개인의 선택과 책임을 강조하는 접근 또한 더욱 필요해 질 것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습자 중심교육이 사랑을 교육하는 데 있어 한계는 남습니다. 학습자 개인을 사회문화적 맥락과 유리된 존재로 간주하게 될 가능성이 크며, 실제 사회에서 사랑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경시할 가능성이 크지요. 뿐만 아니라 '그래서 교육에서 실제로 경험하게 할 수 있느냐?'는 질문도 여전합니다. 학교에서 교사가 친구 관계를 조직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교사가 학교에서 낭만적 사랑을 조직할 수는 없지요. 어떠한 교육 방식을 택하더라도 사랑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 한계를 인정하면서, 난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하에서 사회중심적 교육과 지식중심적 교육의 방식 중 일부를 끌어옵니다.  

사회 중심/지식 중심 교육: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을 탐구하기 & 사랑을 알아가는 방법을 구성하기

사회중심 교육(society-centere approach)는 지식 전수 중심의 교육을 벗어나고자 한다는 점에서 학습자 중심교육과 마찬가지로 진보주의 교육철학(progressive education)의 한 형태에 속합니다. 그러나 학습자 중심교육이 학습자의 흥미를 최우선으로 두는 것(the doctrine of interest)과는 달리, 학교 교육이 실제 사회에 존재하는 의제들을 다루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주장하지요. Beane에 따르면, "교육과정에서 지식의 활용은 의미있는 타자와 사회적 이슈에 대응하는 것을 우선해야 합니다"(Beane, 1997, p. 96 in Elils, 2004, p. 73).

사회중심 교육의 접근 방식은 학습자 중심의 접근이 사회문화적 맥락을 경시하게 될 위험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젠더와 퀴어라는 용어가 함의하듯이 낭만적 애착 관계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위하느냐는 사회문화적 영향 속에서 구성됩니다. 성각본(sexual script)은 이러한 사회문화적 영향력을 잡아내기 위해 적절한 관점입니다. 예를 들어, 구애와 성적 접근이라는 행위에서 남성과 여성에게 다른 사회문화적인 기대를 부여하는 성각본은 개인적 차원에서 약화되면서도 문화적 수준에서는 오랫동안 존재하고 있지요(Masters el al., 2012). 이러한 기대가 미디어를 혹은 대인관계를 통해 각 개인에게 어떻게 기입되는지, 실제 낭만적 애착 관계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성 각본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대안적인 방식을 발견하는지를 탐구하는 다양한 학생 집단 간 토론을 조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모바일 기기의 보급, SNS의 대중화 등을 통해 '미디어 속의 삶'이라 할 정도로 인간의 삶에 미디어가 미치는 영향력이 더욱 강해지고 있는데(Madianou & Miller, 2013), 미디어 속에 재현되는 '사랑'을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미디어 리터러시의 학습도 사회중심 교육의 관점에서 포괄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서 학습자 중심교육의 이론적 중요성에서 언급했던, 사랑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맥락의 변화 또한 그 자체로 사랑하기 위한 교육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측면입니다. 스위들러(2001)는 미국인들이 실제로는 복잡한 차이를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개인주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사랑의 의미를 구성한다는 점을 세밀하게 보여주었지요. 사회에서 사랑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다양한 사례를 문제화하고 그 맥락을 탐구하는 접근 방식은, 사랑을 초역사적이고 낭만적인 관점에서 절대화하지 않고 현대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구체적인 형태가 형성되어 가는 것으로 바라보게 할 수 있습니다.

사회중심 교육은 다분히 사회변혁적인 목표를 품고 있습니다. 학교가 사회문제 해결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이상을 지니기 때문이지요. 혹자는 사회에서 특정한 형태로 드러나는 '사랑'을 비판적으로 접근한다는 아이디어는, 앞서 학습자 중심교육에서 강조했던 사랑의 개인성을 되려 경시하는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적은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사회중심 교육에서 강조하는 문제해결(problem-solving)을 문제와 해결의 대립구도가 아니라, 실제 사회에 존재하는 의제들에 관여하기 위한 참여의 과정으로 해석하여 한다는 점을 놓친 관점입니다. 사회중심 교육은 학교를 지식의 공간으로 보지 않고, 활동의 공간으로 바라봅니다(Ellis, 2004, p. 74). 활동은 특정한 시공간을 배경으로 일어난다는 국지성을 지니며,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 없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랑이 지닌 개인성과 순간성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사랑을 활동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식중심 교육(knowledge-centered approach)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앞서 전통적인 교수학습법 관점에서 사랑하기를 교육할 수 없다고 기술해놓고 다시금 지식중심 교육의 이야기를 하려는 까닭을 의아하게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지식중심 교육의 세부 패러다임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그 중 브루너의 관점은 사랑하기와 같은 개인적이고, 혼란스럽고, 순간적이고, 암묵적인 영역에도 활용 가능합니다. 지식을 과정으로 바라보기 때문이지요(Ellis, 2004, p. 98).

제롬 브루너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학생들이 지식의 꼬리만 따라다니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봅니다. 과학, 수학, 역사와 같은 과목의 지식을 배우기보다 각 영역에서 어떻게 지식을 탐구하는지 그 과정과 논리를 파악하고 익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지식탐구 과정의 참여와 활동을 중시하는 브루너의 관점이 지식중심 교육에 포괄된다 설명하는 건 말장난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브루너는 학습자의 지적인 성장을 중시하고, 기존에 확립된 지식을 바탕으로 학습자들이 한걸음 더 나아가는 깊이의 교육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지식중심 교육에 들어갑니다. 기본개념과 원리가 서로 다른 수준과 맥락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이해를 심화시키는 나선형 교육과정은 그 대표적인 적용이지요(Ellis, 2004, pp. 100, 115-116).

'사랑'은 독립된 분과학문이 아니며, 지식의 구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식탐구 과정을 이해한다는 것은 동일한 사안을 바라볼 때 어떠한 관점을 택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또한 서로 다른 관점을 종합할 때 특정 사안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더욱 풍성해질 수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Ellis, 2004, p. 100). 우리가 경험을 통해 체화한 '사랑하기' 또한 하나의 관점일 뿐이며, 완결된 지식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과 관점을 더해가면서 계속해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나가며

이 짧은 글은 '사랑하기를 가르친다'는 아이디어와 커리큘럼 이론의 세 가지 주요 관점 사이의 관계를 탐색합니다. 사랑의 개인성과 체험성에 주목하여 학습자 중심 교육을 핵심에 놓지만, 사랑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영향력을 고려하기 위해 사회중심 교육의 접근을 함께 채택해야 하며, 지식 형성의 과정을 강조하는 지식중심 교육의 한 분파도 수용 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합니다.

낭만적 사랑 그 자체를 학교에서 경험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은 주관적인 체험이자, 관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합의로 말미암아 생겨나고 그 안에서만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사랑하기'는 전인적인 역량을 필요로 하고, 사회문화적인 자장과 별개의 것으로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학교는 학습자가 자신의 신체적/정서적 체험과 관계 속에서의 윤리에 대한 민감성을 유지하고, 사랑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며, 본인의 체험 속에서 사랑하는 방법을 계속해서 구성/재구성해 나가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상기한 접근 방식은 대부분 진보주의 교육철학의 이념에 부합하며, 사회 전반적으로 확립되어 있는 교육 방식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애들 시험은 어떻게 보지?'라고 물어봤던 현직 교사의 답변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여실히 보여주지요. 사랑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는 현대사회의 맥락을 고려하면 이러한 괴리는 씁쓸할 뿐입니다. 하지만 개별 교육 현장은 학생과 교사의 상호작용 속에서 언제나 변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고, 이론적 작업은 장기적으로 다른 미래를 상상하기 위해 가치있는 작업입니다. 포기할 필요는 없지요.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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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객관적인 어조와 분석으로 따뜻한 사랑을 표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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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7 역사 AI를 따라가다 보면 해리 포터를 만나게 된다. 4 코리몬테아스 24/02/18 1056 11
1366 체육/스포츠(데이터 주의)'빌드업 축구'는 없다. 우루과이전으로 돌아보는 벤투호의 빌드업. 13 joel 24/02/12 1330 30
1365 기타자율주행차와 트롤리 딜레마 9 서포트벡터 24/02/06 1187 7
1364 영화영화 A.I.(2001) 18 기아트윈스 24/02/06 1118 23
1363 정치/사회10년차 외신 구독자로서 느끼는 한국 언론 32 카르스 24/02/05 2558 12
1362 기타자폐아이의 부모로 살아간다는건... 11 쉬군 24/02/01 2154 69
1361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4, 完) 6 양라곱 24/01/31 2816 37
1360 기타텃밭을 가꿉시다 20 바이엘(바이엘) 24/01/31 1002 10
1359 일상/생각한국사회에서의 예의바름이란 18 커피를줄이자 24/01/27 6534 3
1358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3) 17 양라곱 24/01/22 6162 22
1357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2) 17 양라곱 24/01/17 5693 14
1356 요리/음식수상한 가게들. 7 심해냉장고 24/01/17 1256 20
1355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1) 9 양라곱 24/01/15 2674 21
1354 기타저의 향수 방랑기 31 Mandarin 24/01/08 3296 2
1353 의료/건강환자의 자기결정권(autonomy)은 어디까지 일까? 7 경계인 24/01/06 1280 21
1352 역사정말 소동파가 만들었나? 동파육 이야기. 13 joel 24/01/01 130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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