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8/06/17 21:36:12
Name   Erzenico
Subject   [Cafe Carioca - 2] Begining of pour over days
1편 : https://kongcha.net/?b=3&n=7676

==============================

가장 처음, 1편에서 말한 후배의 집에서 경험했던 드리퍼는 하리오 V60로,
최근에도 가장 편리하고 재현성이 뛰어나 개인용은 물론 상업용 환경에서도 흔히 사용되는 드리퍼입니다.
2000년대 후반 ~ 2010년대 초반은 싱글 오리진 커피에 대한 관심이 국내에서 조금씩 확대되는 시기였으며
이 관심을 이끌던 큰 명제는 '좋은 드립커피는 적당한 산미를 특징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고
따라서 high ~ city 사이의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city ~ full city 정도의 콜롬비아 수프리모 등이 인기를 크게 끌었고
상대적으로 밸런스 잡힌 원두로 평가되는 만델링이나 케냐 등도 full city 언저리에서 주로 로스팅 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무튼 나름대로 그 집에서 어깨 너머로 배운 드립 기술을 레지던트 숙소에서 적용하고자 보았더니
아뿔싸, 의국 동기가 가지고 있던 드리퍼는 칼리타 드리퍼였던 것입니다!


하나의 큰 추출구와 길게 경사진 rib를 가지고 있어 비교적 추출 속도가 빠른 하리오에 비해
추출구가 3개지만 작고, 긴 바닥을 갖고 있어 물이 고여 있다가 나가도록 만들어 진 칼리타


그런데다가, 넓은 분쇄범위로 간혹 에스프레소 용으로도 사용하는 자동그라인더인
바라짜(Baratza)의 보급형 모델 엔코(Encore, 여담이지만 미국 브랜드라서 이렇게 읽는다고 합니다)를 사용했기 때문에
소유자의 취향에 따라 좀 가늘게 세팅되어 있는 점 때문에, 평소에 마시던 것과는 달리
같은 콜롬비아 수프리모나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등의 원두를 갈아서 내리더라도
결과물에는 확연한 차이를 보일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그것이 맛이 다르다고 느낀 이유라는 것도 알고, 그런 맛도 나쁘지 않다고 즐기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는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당시 의국(병원에서 각 과의 사무실이라고 보심 됩니다)에서 제공하던
믹스 커피나 커피메이커와는 확연히 다른 맛을 내어줬기 때문에
병원 로테이션으로 인해 다른 숙소를 쓰게 된 상황에서 새로 드립 세트를 마련할 때도
당시 계속 사용하면서 느낌이 손에 익은 칼리타를 주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동 그라인더는 비싸니까, 핸드밀로 잘 갈아보자, 라고 찾아보다가 구매한 것이
하리오 스켈톤 (Skerton입니다. 그 판타지에 나오는 덜그럭 거리는 놈 아니라...) 세라믹 핸드밀이었습니다.


그럭저럭 큰 크기로 인해 원두를 충분히 담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뚜껑이 따로 있어서 갈아 낸 원두를 잠깐 보관하기도 용이한 제품.


사실 핸드밀에는 구조상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약점이 있습니다.
맷돌식 핸드밀은 한 쪽이 몸체에, 다른 한 쪽은 긴 축에 달려 있고
그 축을 나사를 통해 몸체에 결합시켜 원두를 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데,
그 축이 좀처럼 고정이 잘 되지 않고 축의 수직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원두가 고르게 갈리지 않고 의도하지 않은 미분이 더 잘 생기는 것이 그 약점이죠.

그러나 그로 인해 우연이지만 평소보다 큰 입자로 갈아내어 드립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예전에 경험했던 드립 커피의 맛을 되찾게 되었고, 산미가 있는 커피를 즐기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러나 위에 기술했던 두 가지 조건으로 인해 뜻하지 않게 바디감이 묵직한 커피를 즐기게 된 저는
어느샌가 산미가 나는 엷은 커피로는 나른함을 떨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고
이제 케냐, 탄자니아 등의 소위 '흙맛'이 난다고 하는 아프리카 원두들과
엘 살바도르, 과테말라 등의 라틴아메리카 원두, 그리고 인도네시아 만델링 등의 원두에 조금씩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

첨언
1. 그렇다고 마시면 어느 동네 원두다, 보면 어디 원두를 얼마나 볶은 거다 아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걍 이것저것 마셔보는 것이지요.
2. 다들 카페인 중독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1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0630 6
    14620 음악[팝송] 테일러 스위프트 새 앨범 "THE TORTURED POETS DEPARTMENT" 김치찌개 24/04/24 77 1
    14619 일상/생각나는 다마고치를 가지고 욕조로 들어갔다. 8 + 자몽에이슬 24/04/24 439 16
    14618 일상/생각저는 외로워서 퇴사를 했고, 이젠 아닙니다 16 + kaestro 24/04/24 1022 17
    14617 정치이화영의 '술판 회유' 법정 진술, 언론은 왜 침묵했나 10 과학상자 24/04/23 649 8
    14616 꿀팁/강좌[해석] 인스타 릴스 '사진찍는 꿀팁' 해석 20 *alchemist* 24/04/23 638 13
    14615 경제어도어는 하이브꺼지만 22 절름발이이리 24/04/23 1323 6
    14614 IT/컴퓨터re: 제로부터 시작하는 기술 블로그(1) 2 kaestro 24/04/22 332 1
    14613 음악[팝송] 밴슨 분 새 앨범 "Fireworks & Rollerblades" 김치찌개 24/04/22 107 0
    14612 게임전투로 극복한 rpg의 한계 - 유니콘 오버로드 리뷰(2) 4 kaestro 24/04/21 320 0
    14611 사회잡담)중국집 앞의 오토바이들은 왜 사라졌을까? 21 joel 24/04/20 1200 30
    14610 기타6070 기성세대들이 집 사기 쉬웠던 이유 33 홍당무 24/04/20 1528 0
    14609 문화/예술반항이 소멸하는 세상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소녀들 5 kaestro 24/04/20 670 6
    14608 음악[팝송] 조니 올랜도 새 앨범 "The Ride" 김치찌개 24/04/20 121 1
    14607 요리/음식드디어 쓰는 쌀국수 투어 모음집 2편 15 kogang2001 24/04/19 377 8
    14606 요리/음식드디어 쓰는 쌀국수 투어 모음집 1편 4 kogang2001 24/04/19 352 10
    14605 게임오픈월드를 통한 srpg의 한계 극복 14 kaestro 24/04/19 540 2
    14604 일상/생각개인위키 제작기 6 와짱 24/04/17 814 12
    14603 정치정치는 다들 비슷해서 재미있지만, 그게 내이야기가 되면... 9 닭장군 24/04/16 1250 6
    14602 오프모임5월 1일 난지도벙 재공지 8 치킨마요 24/04/14 780 2
    14601 꿀팁/강좌전국 아파트 관리비 조회 및 비교 사이트 11 무미니 24/04/13 890 6
    14600 도서/문학떡볶이는 좋지만 더덕구이는 싫은 사람들을 위하여 13 kaestro 24/04/13 1106 5
    14599 일상/생각가챠 등 확률성 아이템이 있는 도박성 게임에 안 지는 방법 20 골든햄스 24/04/12 1114 0
    14598 음악[팝송] 코난 그레이 새 앨범 "Found Heaven" 김치찌개 24/04/12 192 1
    14597 스포츠앞으로 다시는 오지않을 한국야구 최전성기 12 danielbard 24/04/12 1045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