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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8/01 18:28:49수정됨
Name   알료사
File #1   주수인.jpg (138.1 KB), Download : 26
Subject   야구소녀


영화 스포 있어요



이태원 클라쓰에서 트랜스젠더 연기를 한 이주영 배우가 인상적이어서 검색해 보다가  <야구소녀>라는 영화가 있다는걸 알았어요. 뭐지 크로스게임 아오
바 같은건가 하고 별 기대 안하고 봤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나왔던 스포츠 영화가 다 그렇고 그랬어서.. ㅋ

예전에 스타리그 볼 때 항상 저를 뭉클하게 했던건 게임 자체보다도 매 대회 결승전마다 관중석에서 응원하고 있는 양 선수 부모님들이었어요. 살아온 과정이나 사회적 위치 같은 것도 다 다를텐데 어쩜 하나같이 어머님들은 두손을 꼭 모은 채 간절한 눈빛을 하고 있고 아버지들은 올곧은 자세와 입술을 일자로 굳게 다문 무표정한 얼굴 속에 자식 응원을 숨기고 있었죠. 부모가 자식 응원하는게 어느 스포츠라고 다르겠냐만 어려서부터 게임 때문에 온갖 구박을 받고 성장해온 1세대 게이머들은 알고 있죠. 지금 결승 무대에 올라와 있는 선수들이 저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큰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야 했고 갈등을 겪어야 했을지. 이 세상에서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사랑하고 응원해 주어야 할 것 같은 부모님이 바로 그 사랑 때문에 가장 나를 반대하고 나를 포기시키려고 그토록 큰 억압으로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절망스러운 일인지.

SO1스타리그 4강에서 박지호는 임요환에게 2:0으로 앞서고 있는 3경기에서도 압도적으로 유리했으나 임요환의 탱크라인에 어처구니없게 드래군을 <꼬라박>으면서 2:3으로 역전당하고 결승 진출에 실패해요. 선수 본인이나 팬들이나 그 3경기가 두고두고 한으로 남았고 나중에 그 <꼬라박> 순간에 대한 인터뷰를 하게 되는데 박지호가 그러더라구요. 어설퍼 보이는 테란의 수비진을 본 순간 결승전에 나를 응원하러 와줄 부모님 모습이 어른거렸다.. 그게 이제 곧 손에 잡히는 것 같았다.. 라고. 서지훈의 '엄마.. ' 는 말할 것도 없고 김준영이나 이제동의 첫 우승 때에도 결국 이 선수가 최고가 되어 트로피를 들고 맨 먼저 자랑하려고 달려갈 사람이 부모님이라는 그 당연한 사실에 왜 그렇게 가슴이 저렸는지. 엄마 아빠 그동안 걱정 많이 하셨죠, 나 잘 됐어요, 이제 나 인기도 많고 돈도 잘 벌어요, 보이시죠, 저기 저 많은 사람들이 다 제 팬이고 저를 응원하고 환호하고 있어요, 이제 걱정 안 해도 돼요..



야구소녀에서도 고3인 주인공 '주수인'과 어머니와의 갈등이 극심하게 그려져요. 아버지가 백수라서 힘겹게 가계를 꾸려나가는 어머니는 그래도 고3때까지는 자식이 하고 싶은거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다는걸 어떤 협상의 수단으로 삼습니다.  내 할일을 다 했으니 이제 너도 너 할일을 해라. 너의 할일은 야구를 포기하는 것이다. 당연히 딸이 말을 들을 턱이 없고 급기야 딸의 글러브를 불태우고 반 강제적으로 공장에 취직시키면서까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 합니다. 근데 이런 과정에서 어머니가 나쁘게 묘사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딸을 위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져서 오히려 딸이 못되게 보이는 장면도 있어요. '나는 엄마처럼 돈 돈 하면서 안살아! 나는 나 하고 싶은거 하면서 살거야!' 라고 소리치는 딸 앞에서 참담한 표정으로 '내가 처음부터 네 엄마였는줄 아니.. ' 할때는 주인공에게 엄마가 돈 돈 하면서 벌어온 돈으로 너가 야구 할 수 있었던 거라고 한마디 해주고 싶더라구요ㅋ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당신 수인이 야구하는거 한번이라도 본 적 있느냐' 라고 던진 한마디에 어머니는 수인이의 입단테스트를 관전하러 갑니다. 먼저 구속 테스트를 하는데 130km를 밑도는 수인이의 구속에 같이 테스트를 받으러 온 다른 남자 선수들의 비웃음이 터집니다. 그다음 실제로 타석에 들어선 상대로 수인이가 삼진을 잡아내자 지켜보고 있던 감독은 팀의 간판타자에게 너가 한번 쳐보라고 지시합니다. 어처구니없어하다가 감독의 불호령에 투덜대며 타석에 들어선 간판타자에게 투 스트라이크가 카운터됩니다. 덕아웃이 술렁거리다가 그동안 비웃던 선수들 무리에서 누군가 한명이 주수인 화이팅을 외치고 연달아 응원의 함성이 이어져요. 그때 어디선가 제가 많이 본 장면이... ㅋ  그동안 딸의 야구를 결사반대하던 어머니가 두 손을 모으고 간절하게 수인이를 바라보고 있는거죠.. ㅋ  



드디어 구단으로부터 연락이 오고 우왕 드디어 프로 되는건가 설레는 마음으로 한걸음에 달려간 자리에서 구단주는 그동안 여성으로 선수생활을 계속해온 노고?를 치하하면서 프론트 직원으로 일해달라고 제의합니다. 지금까지는 여자였던게 단점이었지만 앞으로는 여자인게 장점으로 활용될 수 있는 자리라고. 수인이는 <내가 입단테스트에서 그렇게 못했냐>고 묻습니다. 왜 선수로 뽑지 않느냐는 항의죠. <야구계에는 160km를 던지는 투수는 지옥에서라도 데려온다 라는 말이 있다. 확률적으로 야구의 70%는 투수에서 나오고 그 투수의 가장 큰 무기는 강속구다.>라는게 구단주의 대답. <야구는 그렇게 쉬운 운동이 아니다. 빠르고 느린게 중요한게 아니라 상대방이 못치게 만드는게 중요한거다. 야구는 남자도 여자도 할 수 있고 내가 여자라는건 지금까지의 단점도 아니었고 앞으로의 장점도 아니다. 나는 느리지만 이길 수 있다. 그게 내 장점이다>라는 말을 끝으로 수인이는 자리를 박차고 나옵니다.  


천신만고 끝에 2군 선수로서 연봉 6천만원을 제의받은 수인이 어머니. 얼떨떨해져 있는 수인이 어머니에게  <2군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라며 옆에서 코치가 조언해줍니다. 어머니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구단주에게 사정합니다. <수인이가 야구만 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하겠는데 저희가 형편이 그렇게 넉넉치 못해서 6천만원은 너무 큰 돈이에요. 몇달만, 아니 한두달만 시간을 주시면 제가 어떻게든 준비해 보겠습니다.. > 어머니는 구단에서 수인이가 프로가 될 조건으로 6천만원을 요구하는걸로 오해한거죠..  여태까지 어머니가 겪어온 이 판이 그런 식이었던 거죠.. <어머니 그게 아니라요. 구단에서 수인이한테 6천만원을 주는거예요. 수인이는 이제 연봉 받고 직업으로 야구 하는거예요>라고 코치가 설명해 주자 어머니는 그제서야 감격에 겨워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수인이 직구 구속 130km는 전 세계에서도 몇 없을거라는 여자 선수 최고 수준이었지만 이 구속에 와와 거리는 기자들에게 수인이는 화가 납니다. 나는 150km던져서 프로 스카웃되야 되는데 130km로는 느려서 한참 모자라는데 쟤들은 빡치게 왜저러는거야..  결국은 자신의 체격조건으로 강속구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코치에게 너클볼을 배우지만 이제 또 작은 손이 문제가 됩니다. 해결책은 손톱을 이용하는 것. 같이 야구하는 친구가 손톱을 보호하는 매니큐어를 선물해 줍니다. 고된 연습을 끝내고 자기 방에 돌아온 수인이가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고 있는데 아직은 어린 동생이 들어와 묻습니다.


언니, 이거 바르면 예뻐지는 거야?


아니. 단단해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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