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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8/11/07 22:57:44
Name   化神
Subject   착각

항상 다른 사람에게서 인기와 사랑을 받는 사람이 있다. 마치 무대에서 하이라이트는 주인공에게 비춰지는 것처럼. 아무리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더라도 한 눈에 알아볼 수 밖에 없는 그런 사람.

그 사람을 옆에서 지켜본다는건 의외로 좋은 일이다. 일단은 예쁘니까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거지. 그 이상으로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게 아니라 사랑이 사람에게 들어오는거라던데. 어느날부터 남자는 여자가 자신의 마음 속에 들어왔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남자가 여자를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여자는 항상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었다. 사랑의 형태가 어떻게 되었든.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는 많았다. 여자는 때때로 그들중 한 사람을 선택했다. 사랑이었을까? 그것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많았다.

남자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별로 사랑하지 않았다. 한번씩 남자친구가 되면 어떨까 생각은 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망상이라고 부른다.

특별히 계기라고 할 것은 없었다. 어쩌다보니 친해졌고 어쩌다보니 자주 어울리게 되었다. 단 둘이서만 만난 것은 아니었고 보다 자세히 말하자면 여자의 무리에 남자가 끼어들 수 있게 되었다.

남자가 다니던 학교 앞에 새로 술집이 생겼다. 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사장이 본인의 감성으로 만든 술집이었다. 얼마 안 되는 자본금으로 만든 구멍가게같은 술집이었지만 왠지 그마저도 낭만적이라고 할만큼. 아직 홍대감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시절이었다. 외국에는 펍이라고 부르는 술집이 있다는데 어쩌면 그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전등을 달기엔 돈이 많이 필요했을까? 싶을 정도로 불빛이 거의 없는데다가 심지어 지하에 있는 술집이었는데 어두컴컴한 분위기에 음악 소리는 항상 컸고 그런 분위기는 학교 근처 어느 술집에서도 찾기 힘들었다. 그리고 남자는 그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어? 너 여기서 일하니? 왠일이야."

가게에서 일하는 남자를 알아본 여자가 먼저 알은체를 했다. 사실 남자는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차렸다. 다만 왠지 먼저 아는체를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꾸벅 인사를 했다.

여자는 술집의 단골 손님이 되었다. 혼자 올 때는 없었고 항상 두 세 명씩 같이 어울려다니는 사람들과 함께였다. 이 무리는 그렇게 소수로 시작해서 점점 인원이 늘어나는 신기한 능력이 있는 집단이었다. 가게의 매상을 올려주는 귀한 손님이었다.


"같이 놀자."

하루는 먼저 그들의 무리에서 남자를 불렀다. 손님이 많지 않을 땐 맥주 한 두 잔 정도는 마셔도 된다고 하는 사장이었다. 애초에 사장이 손님들하고 노는 곳이었고 덕분에 남자는 조금의 여유를 부릴수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여자의 무리에 낄 수 있었다.  

- 어디야. 왜 가게에 없어?
- 저 매일 일하는거 아닌데요...
- ㅋㅋ 빨리와 우리 벌써 와있음

여자는 남자가 일하지 않는 날에도 가끔씩 부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남자는 다른 생각을 했다. 아마도 멤버로 부른것일텐데 다른 이유로 불렀으면 좋겠다고.

-


- 오늘 몇 시 까지 일해?
- 매일 한 시 까지 해요.
- 나 오늘 가면 놀아줘?
- 오세요 ㅋㅋ

그 날은 이전의 다른 날들과 달랐다. 여자는 혼자서 가게를 찾아왔다. 평일 저녁이었고, 하필 가게는 손님이 없었다. 여자는 두 시간 정도 술을 즐기다 갔다. 여자 앞에는 남자가 있었고 화기애애한 시간이었다.

"저 갈게요~"
"네 조심히 가세요."

한껏 취해서 기분이 좋아진 여자는 흔쾌히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섰다.

"야, 데려다주고 와."
"네?"
"저 친구 많이 취했으니까 데려다주고 오라고."
"저 아직 안 끝났는데."
"아이 참 눈치없네. 쟤가 너 좋아하잖아."
"... 에이 아닐걸요?"
"쟤 간다."

남자는 반신반의하면서 여자의 뒤를 쫓았다. 발걸음은 경쾌했을까? 무겁지는 않았을 것 같다. 여자는 학교를 가로질러가려는 듯 했다.

"어디가요?"
"어? 너 뭐야?"
"데려다주려구요."
"아하하하하하 안 그래도 돼."
"네, 그러세요."

여자는 취한 것이 분명했다. 비틀비틀 거리는데 그러면서도 남자가 옆에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나 괜찮다고~ 너 가라고~"
"네네"

남자는 여자의 취한 모습을 보는것이 신기했다. 평소에는 이렇게까지 취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아까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나? 하고 속으로 생각해보았다.

"안녕 나 간다~"

여자는 어느새 집 앞까지 함께 온 남자에게 인사하고 문 너머로 총총총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남자는 사장이 해준 얘기를 곱씹어보았다.

-

무리에 남자가 완전히 동화되었을 무렵
1차는 2차가 되고 2차는 3차가 되고 3차가 끝나니 한 시가 넘은 시점이었다.
남자와 여자는 단 둘이 남게 되었고 남자는 여자에게 제안한다.

"술 더 마실래요?"
"그럴래?"

한 시가 넘었지만 불 켜져 있는 가게가 운 좋게도 남아있었다. 둘은 노가리를 시켜놓고 소주를 마셨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도 소주를 한 병씩 더 마실 수 있었다. 남자도 슬슬 헤롱헤롱함을 느끼고 있었다. 판단이 느려질 때쯤 가게는 문을 닫는다고 했다. 둘은 자리를 정리하고 나왔다.

터벅터벅 걷다보니 어느새 여자의 집 앞이었다.

"잘가~"

기분이 좋아진 여자가 남자에게 인사를 했다. 남자는 손을 흔들어주었다.

"너 왜 안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남자를 보며 여자가 물었다.

"그러게요."

집으로 들어가던 여자가 되돌아 나왔다.

"너 집에 가~"

남자는 아무말 못하고 서 있기만 했다.

"뭐야, 왜~ 뭔데?"

남자는 왜 입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하루종일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해서 할 이야기가 없었을까?라고 생각하기에는 할 이야기가 있었다.

"좋아해요."

한참을 머뭇거리던 남자가 말했다. 술 김에 한 말일까? 그렇지만 말 하고 난 뒤엔 술 기운이 사라졌을것 같다. 자신이 한 말보다도 여자의 반응때문에.

"뭐?"

그 전까지 발랄하던 목소리의 여자가 아니었다. 아마도 그 순간, 여자의 목소리에 실린 냉기는 남자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너 뭐라고 그랬어?"

"좋아한다고요."

"아 씨... 짜증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을 들은 남자는 자신이 불과 3분전에 해버린 말을 후회했지만 후회한다고해서 없던 일로 만들수는 없었다.

"왜... 다들... 잘 해주면 나한테 이러는거지... 아 짜증나... 짜증나!!!"

남자는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여자가 갑자기 화내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지만 그 대상이 자기라는 사실이 억울하기도 했다. 난감해진 남자를 구원해준 건 뜻밖의 인물이었다.

"아이씨, 지금 시간이 몇시고, 잠 좀 자자!!! 하, 별 일이 다있네. 이 밤중에 먼 지랄이고."



9
  • 여자가 나쁘고 사장이 제일 나쁨
  • 힘내세요
  • 기운내세요 ㅠ
  •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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