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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4/08/31 01:44:44수정됨
Name   골든햄스
File #1   IMG_5513.jpeg (236.2 KB), Download : 0
Subject   충동적 강아지 입양과 그 뒤에 대하여


*강아지 ‘설렘’. 입양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모습이다.


교황.
그러니까, 현재 교황.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
그 사람이 내가 이 강아지를 데려오게 한 근원이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도 이상해 보일 것 같아 말을 못하다가 홍차넷에만 슬며시 고백한다.

“그 강아지, 사실 교황 성하가 안겨준 강아지예요~”

내가 그렇다고 아시시의 성자의 이름을 따신 현재 교황님을 어디서 뵌 건 아니고. 문득 어느 날 교황에 대한 문서를 읽고 있던 중이었다. (왜 읽었냐고는 묻지 마시라. 현대인들은 모두 겪는 ‘아무 위키 문서 타고 가서 읽기’ 신드롬 무엇무엇으로 하여금) 하여간. 현 교황의 칭송받던 즉위 초와 최근의 도덕적 논란들을 대비하여 읽고 있던 차였다.
..
2022년 1월 5일 바티칸 교황청에서 열린 일반인 미사에서 "요즘 사람들이 아이를 갖기를 원하지 않거나 한 명만 갖기를 원하면서도 개와 고양이는 두 마리씩 키운다"며 "이는 이기주의의 한 형태이고 인간성을 상실한다는 의미다"라고 발언

…이 부분을 읽는데 흥미롭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인간성 상실? 너무 좋은데? 당장 고?

이랬던 건 아니고.

사실 나만 해도 홍차넷 발 독서모임 홍당무에서 “개, 고양이를 키우는 건 그들의 자유의사를 확인해보지도 않고 키우는 것으로 사실상 노예주인데 반려인이란 표현은 부당하다”(!)라는 말을 반농담삼아 했던 차였다.

동물을 키운다는 건 아주 고대적부터 인간이 해온 일인데. 우리는 참 복잡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황은 ‘그럴 힘으로 왜 고아 안 키워’ 이러고 있고.
나도 사실, 깊은 속내에선 어딘가에 굶주리고 힘든 사람이 있는데 강아지에 각종 옷을 입혀 소위 ‘개모차’를 끄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영 껄끄럽고는 했다.

그런데 내가 누구인가. 귀납적으로 오래 전부터 통계적으로 일들을 생각하기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런 내가 확신하는 진리 중 하나가 ‘어른들 꼰대 말씀 반대로 살면 중간은 간다’였다. (창의적으로 되지 마시고 리더가 되지 마십시오!!)

이런저런 도덕적 씁쓸함과 여러 논의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펫 시장이 확대, 상승, 상승되는 이유?
부잣집 자산을 상속하는 강아지가 나오는 이유?

역시 그만큼 ‘좋아서’가 아닐까?

살아보니 세상의 진리는 ‘말할 수는 없지만 다들 행하는 것들’에서 온다는 걸 많이 느끼고 있는 차였다.

그리고 좀 이제는,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 없이 편히 본능대로 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본능대로라면야.
어릴 때부터 개는 키우고 싶었었다. 당연하잖은가.

귀여운 복슬강아지. 형편이 안 돼서 못 키운 거지. 마침 공부에 집중한다고 외롭게 지방에 있을 때였다. 근처에서 강아지를 내놓는단다.

옳지. 그대로 가!
데려온 설렘이는 바로 나의 손을 핥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나는 세상 사는 데 근간이 되는 힘인 ‘설렘’을 이름으로 붙여주었다.

검은 강아지는 잘 먹고, 잘 싸고, 성격상 잘 짖지 않고 하품 소리를 잘 내고, 단추를 부수고, 주위 사람들을 잘 반겼다.

그리고 무럭무럭 잘 커 5개월의 2.3키로의 강아지가 되었다. 나는 새로운 꿈을 갖게 됐는데, 그건 개랑 제주도 여행을 가는 거다. 알고 보니 개랑 동반 여행으로 잘 가는 로망 여행지란다. 집의 천장 한칸은 개 간식으로 가득 차게 됐다.



결과적으로 그래서 교황 성하의 잔소리에 데려온 강아지가 그렇게도 특별했냐. 막 그렇게까지는 아니다. … 무심해보일 수 있지만, 개는 개긴 하다. 나에게 트라우마를 해소하는 특별한 성분을 분비하는 것도 아니고, 어느 날 입을 열어 말하지도 않는다.

예방접종은 귀찮았고, 동물병원을 다니다 생긴 소소한 트러블에 마음을 다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강아지는 항상 내 뒤를 쫓아다녔다. 매일 쌓이는 똥오줌 등을 치워주며 나는 내가 적당한 육체적인 잡일이 있는 쪽을 선호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잡념이 쌓이지 않게 개가 도와주니 좋았다.

사람들 사이에 할말이 없을 때도 그냥 개 얘기를 하면 되니 편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항상 강아지는 내게 입맞추며, 애정을 주었는데 사실 이것 하나면 모든 이야기는 종결되는 셈이다. 설렘이는 나이 치고는 놀라운 집중력으로 30초 가량을 내 입과 코, 눈 주변을 핥아대고는 했다.

“나한테 이렇게 친절한 암컷은 지금껏 없었어.” 라고 나는 남자친구에게 여아인 설렘이를 두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계량적으로 생각하면 특이한 트라우마와 출신 성분으로 교류하는 사람을 만나기 힘든 내가 개로 부족한 애정을 채우는 셈이다.

더 간단히 생각하면 그냥 귀여운 개를 데려온 거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비 오는 구미에서 혼자 공부하던 내가 어느 날 문득 교황의 말에 살짝 반기를 들어본 셈이다.

법을 공부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면 웃길지 모르겠지만. 더는 ‘사람은 ~해야 한다’ 같은 명제로 말하거나 생각하기가 싫어졌다. 그건 아무 효용도 없으니까.

쾌락과 계산으로 가득한 현대 사회에서 홀로 서있는 의미없는 선택지가 싫어졌다.

남들과 통하게 되지도 않고, 외롭게 고립되게 하는 사상들이 싫어졌다.

법조차 고려하지 않는 영역들을 혼자 생각하는 밤들이 싫었다.

쉽게 남들 하는 대로 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했고, 나도 그러고 싶어졌다. 그냥 교황에게 혼나는 많은 우매한 민중 중 하나가 되고 싶어졌다.

그렇게 안아든 내 강아지.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되기로 한 나의 신호탄이 된, 내 검은 강아지는 언제나 그랬듯 뻔뻔히 집안을 활보한다.

여전히 나는 과거의 버릇과 상처 속에 고민이 되어서 가끔 뉴스 앞에 고민하고는 하지만, 그러다가도 강아지가 ‘낑’ 놀아달라고 소리를 내면 후다닥 달려간다.

그거면 된 게 아닐까. 어차피 아무리 아무리 고민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섬이 되어버릴 뿐이라면.

지금 적어도 나는 ‘개와 친구인 여자’니까 이전보다는 나은 게 아닐까.

천하의 교황조차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 등에 골몰해봤자. 천하의 교황조차 괜히 잘 지내고 있는 다른 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원망스러워질 정도로 눈앞의 사람들이 윤리적이지 않다고 화가 쌓이는 판에.


참. 내 강아지의 버릇은 사람 만나면 좋아서 오줌 싸기다.

우리가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을까. 적어도 좀 더 웃고 살 수 있을까. 노력해보려고 한다.

오늘 설렘이를 위해 연어야채 스틱을 사며 생각한다.

다양한 맛을 맛보게 해줘야지. 아직 어려서 애견카페도 못 가니 간식이 주된 즐거움일 테니까.

그냥 사는 것을 배우고자, 몸의 힘을 빼고자 노력하는 나날이다. 지난 내 노력들은 무의식의 컵에 담아두고서.
아직까지 강아지 입양에 대해서는 대만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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