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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4/02/22 13:31:29
Name   meson
Subject   지식이 임계를 넘으면, 그것을 알리지 않는다
위키 사이트들에 기여가 이루어지는 이유, 그리고 그들 중 일부가 성공하여 영향력을 얻은 이유에 대해 흔히 이야기되는 동인(動因) 중 하나는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역시 없다.” 그러니 설령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라고 할지라도, 각자 선의에 따라 아는 것을 작성하면 (그리고 부단한 감시와 수정을 통해 내용이 적절히 걸러지면) 그것만으로도 문서가 풍성해지기에는 충분하다는 것이죠.

어떠한 위키에 족히 누만 자는 첨삭해 본 경험을 가진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 말은 과연 사실입니다. 경제적 보상이나 사회적 명성과 같은 대가가 없음에도 다수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이유에는 분명 정보를 보급한다는 자그마한 공명심이 놀랍도록 커다란 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특정한 선까지는 그것만으로도 정보의 보고(寶庫)로 인식되기에 충분한 양과 질이 보장됩니다. 따라서 이 글 역시 이러한 점을 부정하거나 그 역기능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쓰여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논의해 보고자 하는 것은, 예의 ‘특정한 선’을 넘어가면 그러한 자발적인 기여가 주저되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비단 위키뿐 아니라 지식 공유를 표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적용되는 난점일 것입니다.

단적으로 말해 국내의 어떤 위키에서든, 다루는 분야의 유관 논문들을 폭넓게 인용하여 종합적이고 단단한 정보를 전달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치적 논쟁과 같은 과열로 인해 특별히 동원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간혹 발견되는 논저의 인용문들은 오로지 그 단일 논저의 관점을 반영하여 향후의 서술을 전개하기 위한 예고에 불과한 경우가 잦습니다. 물론 위키의 경우는 어쨌든 인용의 출처라도 비교적 충실히 표기되어 있는 편이므로, 그마저도 없고 모든 내용이 작성자의 뇌피셜에만 의존하는 커뮤상의 ‘정보글’에 비교해서는 훨씬 낫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생각해 보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앞 문단에는 비판조로 적었지만, 기실 어떤 주제에 대해 [ 유관 논문들을 폭넓게 인용하여 종합적이고 단단한 정보를 전달 ]한다면 그런 글은 이미 학술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 아무런 대가 없이 소소한 보람만을 바라고 그런 일을 수행하라는 것은 꽤 지나친 요구처럼 느껴지는 것이죠. 게다가 대부분의 위키처럼 무수한 기여자들의 서술이 겹쳐져 특정 작성자의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도 않는 환경에서는 더더욱 그런 일을 종용할 유인이 희박합니다.

물론 이런 견지에서 보면 사실 인터넷 커뮤니티의 경우에는 조건이 조금은 나은 셈입니다. 적어도 양질의 글을 누가 작성했는지는 잘 드러나고, 이를 통해 높은 관심도와 막대한 추천을 얻을 수도 있으며, 이것이 지속된다면 마침내 ‘네임드’에 등극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비록 ‘사회적 명성’이라고 칭하기에는 아직 저어되지만, 어쨌든 [ 유관 논문들을 폭넓게 인용하여 종합적이고 단단한 정보를 전달 ]할 만한 유인이 비교적 강한 것은 사실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럼에도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지만 말이죠.

그리고 여기서도 [ 그런 일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 요인을 짚어내는 것은 쉽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또 그처럼 단단하여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한 글이라면, 그것을 하필 인터넷에 올려 모두에게 공유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글의 작성자가 학문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논문으로 제출할 것이고, 업계에 종사하는 중이라면 보고서로 제출할 것이며, 혹 학생이라면 과제에 써먹을 생각을 먼저 하겠지요. 설령 당장은 그런 주제를 발표할 지면이 없더라도, 글의 가치를 자신한다면 미래를 위해 자료를 홀로 쥐고 있는 편이 훨씬 ‘수지’가 맞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인터넷상에서 [ 인용 표시가 충실하고, 근거가 자세하며, 내용이 풍부한 ] 글을 – 예컨대 특정 이슈에 대한 학계의 입장을 소개하거나, 연구사를 정리하거나, 새로운 관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글을 – 만나기 위한 조건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 글을 쓸 의지와 능력을 갖춘 사람이 우선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이 글을 쓰고도 이를 공식적인 지면에 발표하지 않아야 하며, 마지막으로 본인의 저작이 일반에 유포되어 희소성을 잃어버리는 것을 감수하기까지 해야 합니다. 사실 다른 것은 어찌어찌 충족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구축한 자료를 오픈 소스로 공개한다는 것은 확실히 쉬운 결정은 아닙니다. 대형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몇몇 연구자분들이 대부분 본인이 ‘이미 논문으로 쓴’ 내용을 추후에 공유하는 방식으로 정보글을 작성하는 것도 이러한 요소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데 사정이 이렇다면, 좋은 주제와 자료로써 실제로 글을 작성하고 난 뒤에 이를 널리 퍼뜨리고자 공개하는 것은 과연 미련한 일이 되는 것일까요. 아까움으로 말미암아 지식을 공유하지 않는 것은 실로 이기심이라기보다는 익명 커뮤니티 시스템의 한계인 것일까요. 이미 알려져 버린 통찰은 향후 커리어에 사용할 수 없기에 모두가 유포를 꺼려하는 것일까요.

내부자가 아닌 이상에야 실제로 그러한지는 물론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추측해 볼 뿐입니다.

다만 혹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해본 분이 계신지는 궁금하여,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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