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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3/10/14 12:41:55수정됨
Name   소요
Subject   '남자'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이야기해볼까요?
https://kongcha.net/news/36320#286792

댓글에 이어 뭔가 써보려다가, 노예처럼 구르고 오느라 이제 왔습니다 헥헥.

처음에는 혼자 뽀짝뽀짝 공부하고 고민했던 내용들을 인용도 달고 근거고 대고 하면서 뭔가 정리된 주장을 해볼까 했었어요. 근데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너무 '남성'다운 글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 있죠. 그 있잖아요. 각자 전제를 촥촥촥 쌓아올린 후 그 안에서 내적 완결성을 최대한 만들어서 전제를 부정하지 않는 한 무너지지 않는 성채를 만드는 그런 글이요. 어차피 그런 식으로 내 단단함을 주장한다고 읽는 사람의 생각이 꼭 달라지는 건 아닌데 말이여요.

그럼 어떤 식으로 얘기를 풀어볼까 생각해보니, 오히려 각자 잘 안 하는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탐라든 티타임이든 아니면 홍차넷이 아니라 다른 사이트든 살펴보면 우리 남성 동무들은 자기 얘기를 못/안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내가 아닌 세상 이야기는 기가막히게 하고 또 열과 성을 다해서 하는 것 같고요. 근데 또 가만 보면 세상 이야기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은 자기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는 말이지요. 이를테면, "20대 남성은 연애 시장에서 약자지요"라고 하면 흡사 "사람들은 남성이 강자라는데 저는 연애가 어렵고, 속상한 경험을 많이 했어요"처럼 들릴 때가 있어요.

남성학 연구자인 래윈 코넬은 남성성은 단일하지도 않고 역사적 상황에 따라 계속 변한다고 했어요요. 간단한 예를 들자면 페미니즘 담론이 보다 가시화 되면서 많은 남성 동무들이 이를 더 의식하게 되었지요. 요 글을 쓰게 만들었던 골딘 교수의 노벨상 수상 소식과 그 핵심 주장도 우리가 각자 다양하게 반응하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되는 메세지고요.

각자 자기 자기 이야기를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왜곡은 익스큐즈하고, 적당한 선에서 한 번 경험을 얘기해봐요 ㅋ 인터뷰 한다는 느낌으로 질문 몇개 깔아볼게요. 꼭 이대로 답하지 않으셔도 되고, 그냥 골라서 하고 싶은 답변만 하셔도 되요. 상세하게 답하지 않아도 되고요 ㅇㅇ 다만 민감한 질문들도 몇 개 포함한 만큼 여성 동무들 마음도 감안해서 답을 해주셔요.

//


1. 지금 어떻게 살고 계세요?
2. 어렸을 적에 남자라면 어때야 한다고 들어왔나요? (혹은 모델이 있었나요?) 그 '남자다움'은 내가 따라갈 수 있는 것이었나요?
3. 남성들과의 관계는 어땠나요??
4. 여성들과의 관계는 어땠나요?
5. 결혼을 하셨다면 가사는 어떤 방식으로 조직하고 계신가요? 그 배경에는 어떤 이유나 생각이 있으신가요?
6. '남자'로 살아가기 때문에 즐거운 점 혹은 편한 점은 무엇인가요?
7. '남자'로 살아가기 때문에 슬픈 점 혹은 불편한 점은 무엇이신가요?

//

1.

미국에서 박사 졸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연구 프로젝트에서 나온 데이터를 가지고 논문을 새로 쓰고, 기존에 냈던 논문에 대해 저널에서 수정 요청 들어온 거를 머리 쥐어짜면서 수정하고, 새로 프로젝트를 또 발전시키고 그러고 있어요. 내년 5월에는 졸업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학위 논문을 마무리 짓고, 추가로 회사든 학계든 교직원이든 가리지 않고 꾸역꾸역 지원하고 있어요.

소득은 학교에서 받는 생활비 연 2만 달러? 결혼 이후에 아내와 함께 살면서는 집세, 보험비, 공과금 빼면 남는 돈이 없어서, 지난 해부터는 아내가 벌어놨던 돈에서 계속 까먹고 있는 상황이여요. 그래서 뭐가 되든 얼른 박사를 마무리하고 일을 구해야겠다는 불안과 압박을 느끼고요.

워라밸이라는 게 없는 상황이라 음... 연구/공부 빼면 생활을 얘기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어요. 그나마 올해는 연구와 학위논문에 집중하도록 단과대에서 배려를 받아서, 헬스장에서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운동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네요. 아랫배가 아름답게 휜 studying body를 그나마 사람답게 바꿔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래에서 후술하겠지만 요리/설거지를 도맡아서 하는지라 여기에 들어가는 시간도 꽤 많네요. 근데 요리는 그나마 즐기는 편이라 일과 취미의 경계선 정도에 있습니다.

2.

남자라면 이래야 한다라는 모델은 되게 흐릿했어요. 이유를 굳이 찾자면 가정 내에서 아버지가 존재감이 흐릿하기 때문이었던 듯해요. "이래댜 한다"고 요구하는 것도 없고, 때리는 일도 없고, 관심 안 받고 혼자 노는 거 좋아하시는 성격인데다가, 또 제가 완전 어렸을 적에는 워낙 근로 시간이 많았던 때라 집에서는 주무시는 일이 많았어요.

그렇다고 '남성성'에 대한 개념이 없었냐면 그건 또 아니고, 어머니의 훈육이나, 책, TV 등의 매체에서 나온 모습들이 영향을 함께 줬던 듯해요. 어머니가 워낙 이 도-리, 인간-됨, 예-의 이런 걸 욕하고 때려가며 강조하시는 분이라, 참고, 견디고, 극복하고 이런 성향들을 어린 시절에는 무척 강하게 내면화 했었어요. 세상에 유통되는 '남자'의 모습 중 일부에 이런 극기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 금새 경도가 되었지요. 폭력성은 강한지 아닌지 모르겠어요. 다만 옳다/그르다는 것에 강박이 심했었고,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아니다 싶었던 것에는 분노를 크게 느꼈었어요. 지금이야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나는 개미로소이다 이런 마음이지만, 20대 중반까지는 그런 성향이 좀 강했네요. 근데 이게 남성성의 자장아래 들어가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오히려 어머니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흠흠... 옳다/그르다는 도식에 포함되지 않으면 부정적인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던 문제가 있지 않았나 싶고요 ㅇㅇ

'남성성'에 잘 부합하는 요소를 외적 신체, 능력, 성격이라는 측면으로 보면, 외적인 면에는 진짜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와, 넓은 어깨! 이런 건 진짜 1도 신경을 안 썼고, 성격-능력은 같이 묶어서 신경을 많이 썼었네요. 성실해야 하고, 잘 참아야 하고, 노력해야 하고, 견뎌내야 하고, 그러면서도 세상을 잘 헤쳐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고, 더해서 세상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영웅적인 ㅎㅎ; 시도들도 해야 하고? 이런 도덕책적인 요소는 남/녀 모두를 가리지 않는다 생각했지만, TV든 책을 통해서든 나타나는 '바람직한' 인물상 중 다수는 남자였지요.

3.

초중고 때 또래 남성들과의 관계는 대부분 두루두루 잘 지냈어요. 저도 대가리 제육-돈까스-피시방-축구-노래방 밭이라, 막 놀면서 어울리는데 꺼끌꺼끌한 건 없었거든요. 도덕적으로 굴려고 하는 걸 가지고 어허~ 쓰레기도 못 버리겠네 농반진반 장난치기는 했는데, 축구 한 판 뛰고 피시방에서 카오스 한 판 때리고 닭꼬치 먹고 하면 뭐 서로 익스큐즈 하는 그런 정도였고요.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공부는 학교에서 어느 정도 했고, 게임은 제가 1~2등 하는 종목이 많았고,,,, 축구든 농구든 잘은 못해도 열심히 하면서 즐기니, 성적에 대한 부담이 없고 일진이라 할 것도 없는 하위 인문계 학교에서는 우리 모두 칭긔칭긔 하면서 지내기가 편했지요. 위계가 낮아질 속성들은 아니었으니까요. 크게 다른 것도 아니고, 대부분 어느 정도 잘하는?

다만 친밀한 관계 자체는 고등학교~대학교 들어서야 조금씩 구축할 수 있었어요. 이건 꼭 남/녀를 구분하는 문제는 아니고, 사춘기 들어가기 직전인 초등학교 5학년 때 한 번 집단괴롭힘을 당했어서 그 이후로 마음에 어둠의 다크니스가 좀 있었거든요 크큭. 고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좀 색깔이 칠해졌지요.

그나마 남성들과의 관계에서 제일 어렵다는 건 막 선을 깊게깊게 넘나들면서 장난치는 점이었어요. 어린시절부터 건드려지지 않고 싶은 '나'가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어서 그런지, 소위 말하는 서로 까고 무시하고 하면서 우정을 확인하는 그런 양상은 몸에 잘 안 맞았거든요. 또 이상한 건 그러는 형들과는 잘 받아주면서 지내는데, 정작 제가 그런 식으로 남동생들이나 또래와 관계설정은 못하겠어요 으으. 그래도 뽀로로 같은 성격 - aka 친구가 제일 좋아 - 이라 친한 남자 동무들과는 지금도 계속 연락하고 지내요.

4.

여성들과의 관계는 어려웠었어요. 남자들과의 관계는 you know you know 하는 것들이 체화되어 있다면, 여자애들은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는 그런 느낌이었지요 ㅋㅋㅋ 뭔가 신비롭고 어렵고 그런? 화장실 가는 걸 보면서도, 남자랑 똑같이 볼일을 본다는 구체적인 심상은 안 그려지는 그런 느낌이여요. 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같은 반 여자애들이 워낙 빡세서... 인간적인 면모들은 구체적으로 손에 잡았지만, 여전히 이 인간들이 무슨 감정구조나 생각으로 사는지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책을 많이 읽다보니 중학교 때부터 페미니즘 서적도 접했었어요. 시몬 드 보부아르 식의, 남녀 차이란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산물이라는 입장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지요. 때문에 동네 어르신과 고등학교 때 토론하다보면 특히 이 주제로는 엄청 싸웠었어요. 어르신은 '어휴 아니라고 이 새끼야. 달라 달라'라고 막 설득하셨지만, 그 때는 딱히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요 ㅋㅋㅋ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이 지금 당장 차이가 있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지만, 중고등학교 때는 [조금만 생각을 달리한다면] 금새 타파될 수 있는 그런 걸로 생각했었거든요.

이건 다른 한 편으로는 급식 때까지는 남자들이랑만 놀아서 그런 것도 컸어요. 당장 게이트웨이에서 질럿 뽑고, 배럭에서 그런트 뽑고, 악동으로 헥스 걸어야 하는데 수업 시간 외에 뭐 교류할 일이 있겠습니까... 1년에 한 두 번 앞뒤자리 애들이랑 캔모아 가서 파르페 먹는 정도? 이거 점점 응답하라 200X가 되어가는 느낌이군요. 그러다보니 실제 여자 동무들이랑 대화를 하고 뭘 같이 하는 것보다는, 책으로 ㅋㅋㅋㅋㅋㅋㅋ 구성한 심상이 더 강했었어요.

이런 건 여자들이 더 많은 학과를 다니고, 연애를 시작하면서 조금씩 달라졌어요. 당장 눈앞에 있는 친구들이 남자와는 몬가 몬가 다른 도덕논리, (표면적) 감정논리, 관계양상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면 동아리 활동이건 학생회 일이건 할 수 없더라고요. 예를 들자면 6명 무리가 4 / 2가 되고, 4명 무리가 2 / 2가 되고, 누가 엠티를 가면 누구는 안 나오는데 참석은 독려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요. 연애는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관계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걸 더더욱 깊게 인식하는 계기였고요. 100일인데 동아리 엠티 가겠다는 걸 존중할테니 잘 다녀오라고 했더니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며 차이고, 썸이 무르익어갈 때 태연하게 손을 잡았더니 '새끼 좀 치네?'라며 (본인의 후술담으로) 좋아한다던지요.

근데 웃긴 건 그냥 바라보는 관점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고 나니까 오히려 주변 여성들과의 관계가 부드러워졌다는 점이였어요. 이게 따로 조금씩 읽던 젠더 관련 공부와 현실적인 경험이 조화를 이룬 건지, 아니면 과거의 제가 둥둥 떠다닐 때는 관계가 어렵다가 현실적인 혹은 일부는 냉소적인 관점을 더 강하게 장착하고서는 오히려 풀린건지는 모르겠어요. 후자인 면도 있고, 전자인 면도 있어서 아직도 고민을 하지만요.

다른 한 점은 오히려 '남성성'이라는 걸 연애 관계를 통해 더 인식하게 되었었다는 점이에요. 이들은 나에게 바라는 어떠한 모습들이 있구나, 깊은 차원에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표면적인 수준에서는 세상에서 나에게 주어지던 메세지와, 나와 피부로 부딪치는 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기대하고 요구하는 무언가가 겹쳐지는구나 이런 느낌이요. 그러다보니 헤테로에 더 가까운 남성으로서 연애가 끝나거나 혹은 구애가 실패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던 생각은 신체-외모-능력-성격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드러나는 '남성성'에 대한 고민이었어요. 남성들 사이에서 적당히 잘 문제 없이 지내고 성장하면서 제가 가지고 왔던 '남성성'과, 내가 사랑을 하고 섹스를 하고 싶은 사람이 나에게 바라는 '남성성'의 양상과 수준은 차이가 있다는 점이 크게 다가왔었거든요. 물론 여기에도 함정은 있는 게, 이 사람들이 나에게 바란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궁극적으로는 저의/주변의 해석이 관여되는 지점이 있으니, 기존에 존재하는 담론들에 포섭되기 쉽지요. 앗 또 복잡한 얘기로 가버린다.

이제는 결혼을 해서 아내가 있고, 시간을 지내면서 쌓아온 여자 동무들과 복잡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오히려 그들의 언어와 관점을 통해 '여성성'의 다양성과, 한 개인이 '여성성'과 맺는 관계의 다양성을 살펴볼 수 있게 되었어요. 신기한 건 개인이 사적 삶에서 '여성성'과 맺는 양상은 되게 다양한데, 남성과의 관계 혹은 자기들끼리의 관계에서 보이는 '여성성'은 피상적인 수준에서 묘하게 닮아있다는 인상이었어요. 겉으로는 웃으면서 한 번 앙금 쌓이면 적대시 한다는 '여적여' 같은 혐오표현만으로도 잡히지 않고, 반대로 서로가 서로의 깊은 부분을 알아주고 지지한다는 자매애나 정치적 레즈비어니즘만으로도 포착되지 않고, 이 모든 것들이 교차하면서 계속 파도치는 양상이랄까요. 남성과의 관계에 대한 인상은 6/7에서...

5.

결혼하기 전까지는 가사라는 것에 크게 관심을 안 뒀던 듯해요. 마이너스의 손이라 고기 써는 것만 봐도 사람들이 "야 그냥 나한테 줘라"하고 가져가는 닝겐이기도 했고, 자취할 때도 걍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도만 해서 먹는? 본가에서 힘쓰는 일이나 이런 건 도와도, 청소는 워낙 주기가 늦어서 어머니가 답답하다고 먼저 해버리셨지요. 설거지 정도만 꾸준히 했네요.

그런데 결혼하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요리를 하게 되었어요. 아내가 요리를 워낙 싫어해서 그럼 내가 배워야겠다 했고, 코로나 기간에 유튜브 요리 컨텐츠들이 막 쏟아져나왔거든요. 관심가지고 하다보니 의외로 성향이랑 잘 맞는 면이 많더라고요. 주어진 레시피의 결을 따라가면서도 이것저것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맛을 바꿔가는 것이요. 또 요리에 들어가는 에너지보다도, 바로바로 성과를 확인하면서 효능감을 느끼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최대한 효율화 해서 일주일에 요리에 들이는 시간을 6~7시간 정도로 조절하고 있습니다. 밥짓는 시간 이런 건 빼고요.

설거지는 본가에서도 종종 하던 일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이어받아서 하고 있어요. 또 아내가 피부가 약해서 손에 물이 묻으면 안 되거든요. 고무도 안 되고. 그래서 우짤 수 없지... 하고 있어요. 재미를 느끼지는 못해요. 또 설거지 해두면 아내가 행보관처럼 검토하고 다시 하라고 지시하기 때문에 우씌...

아내는 대신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 청소기를 돌리고, 한 번 정도 화장실을 청소해요. 그 외 쓰레기 버리기, 전구 갈기 등등 잡다한 일들은 제가 하고요. 장은 같이 봅니다.

가사는 이런 방식인데, 반대로 운전은 아내가 해요. 저보다 운전 경험이 많고, 제가 한 번 차를 부셔먹은 ㅠ 이후로는 미국에서 운전면허증 다시 따기 전까지는 자기가 한다고 해서 ㅎㅎ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레 지금의 가사분담 형태가 결정되었어요. 육아를 하게 된다면 또 다른 방향으로 조절이 되겠지요? 다만 아내도 올해 입학을 해서 졸업 이전까지는 아이를 가지지 않을 생각이고, 이후에도 상황에 따라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6.

남자로 살아가서 즐겁거나 편했던 건 좀 자유롭다는 점이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어머니와 으르렁 거리면서 이건 된다 저건 안 된다를 가지고 싸웠지만, 대학교 입학 이후부터는 배낭 여행도 가고, 학교 과방/동방에서 사흘씩 자고 하면서 통제를 거의 안 받았거든요. 이건 집안 분위기를 넘어, 제가 남자였던 영향이 있지요.

남성에게 더 많은 성취와 책임을 요구하는 게 막 부담스럽지는 않았어요. 남성성을 받아들였다기보다는, 애초에 성격 자체가 경쟁과 도전을 즐기거든요. 새로운 무언가에서 위험보다는 기회를 먼저 엿보고요. 남들이 부담스러워서 안 하는 거 총대 잘 메는, 소위 나다 싶으면 알아서 까는 성격이라 책임을 요구하는 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속상할 때도 있지만 내가 납득하고 받아들일만한 이유가 있다면, 그냥 의무를 수행하는 것에 만족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그러다보니 군대에 대해서도 별다른 생각이 없어요. 그 2년 동안 더 나은 경험을 할수도 있었겠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지냈던 것도 값어치 있었고, 어쨌거나 시민으로 주어진 의무를 다했다는 약간의 성취감 정도가 있네요.

7.

남자라서 슬프거나 괴로웠던 건 감정을 다루는 방식었어요. 어렸을 때는 감정의 고저도 크고, 생각도 많고, 감정선도 무척 세세했는데, 넌 남자애가 왜 그렇게 복잡하고 예민하냐고 치부당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ㅋㅋ 어머니와 많이 아웅다웅 했었지요. 또 주변 남성 어른 중에서 자신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섬세하게 잘 전달하는 사람들이 여성 어른들보다 적은 편이었던지라, 역할 모델을 찾기가 힘들었다는 점도 있네요. 때문에 공부를 따로 해서 스스로의 여러 면모와 화해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감정을 다루기가 힘들었었어요. 그러니 자연스레 다른 사람의 감정도 손에 잘 안 잡혔었고요.

여러 여성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느슨하게 공통되거나 겹치는 경험들을 통해 잡히는, '남성성' 또한 괴로웠던 점이었어요. 이건 남성에 대한 기대 뿐만 아니라 이들의 시각 속에서 보이는 '남성성'에 대한 공포나 의심을 함께 담고 있어요. 예를 들자면, 학교에서 새롭게 알게 되는 여자 동무들이 있으면, [난 너에게 이성으로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결혼도 했고, 그냥 댕댕이 같은 인간이라 안부 묻고 말 걸고 그러는 거다]라는 걸 증명해야 하는 그런 거? 한 지나가다 얼굴 볼 때 인사하고 살짝 안부 묻고 그런 걸 3~4번 정도는 하고, 모두에게 그런다는 걸 보야줘야 이 새끼가 나의 감정이나 사회관계망에 위험한 짓을 할 놈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더라고요. 그렇게 된 이유가 다들 있다는 걸 이해하고 납득하니 그러려니 하기는 하는데, 감정적인 짜증이 강하게 담긴 0고백 1차임 같은 상황을 겪으면 한숨 쉬게 되기는 해요. 내가 남자여서 이렇게 해석이 되는 건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는 그런 모먼트들이 많지요.

'남성성'에 대한 여성들의 기대가 모순적이라 느껴기도 했어요. 이 사람이 기대하는 건 저 사람에게는 불쾌한 것이고 그래서 갈피를 못 잡았었어요. 지금은 모두에게 겹치는 부분들은 조심하면서,  나와 함께 하는 내 주변 여성 동무들의 마음이라는 차원으로 좁혀서 대응하면서 살고 있어요.

추가로 불편한 점이라면 외적으로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점이 제한된다는 면? 패션이든 화장이든 '남성'이기에 하면 안 되는 것들이 꽤 있거든요. 그런 압박이 없었으면 화장도 하고, 치마도 일상 속에서 종종 입었을 듯해요. 성별 정의에 대한 불편감을 느끼는 건 아니라, 그냥 화려한 걸 좋아하고 [할 수 없음]에 대한 거부가 강한 청개구리 성격이라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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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러니저러니 해도 홍차넷만큼 자신의 이야기를 할 무대가 있는 공간이 흔치는 않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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