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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3/05/20 01:31:02
Name   구밀복검
Subject   팬은 없어도 굴러가는 공놀이: 릅신이 주도하는 질서는 거역할 수 없읍니다.
사실은 작년에 쓴 글이지만 곰곰이 다시 봐도 스스로 재미있어서 재탕해 봅니다.
딱 작년 이맘 때 리니지 BM을 공부하다가 이하의 김실장의 리니지 영상을 보게 된 것이 계기였는데요.

https://www.youtube.com/watch?v=0-Ut4fM9I7g
긴 영상일 테니 요약하면 김실장의 논리는 이런 겁니다.
['많은 팬들이 돈을 쓰지 않는 게이머에게도 일정한 배려와 혜택을 부여해서 전체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야 게임이 잘 된다, 고로 NC소프트 같은 게임사들의 과도한 과금 강압은 근시안적인 경영 행태다'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이건 틀린 소리다. 이미 엔씨는 리니지를 포기할 수 없는 일부 코어 유저들만 끌고 나가면 되는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한 상태고 리니지에서 무과금 유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전혀 없으며 무과금 유저는 게임을 해주지 않는 게 오히려 NC입장에서는 도움이 된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상황이다, 적어도 NC 내부에서는 지금까지는 그렇게 생각해 왔다]
이걸 요약하면 돈을 내지 않는 게이머에게는 엑스트라 역할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드론은 인구수에 방해만 될 뿐인 거죠.

어찌 보면 굉장히 무서운 함의가 있다고 볼 수 있지요. 결국 NC는 '게임에는 게이머가 필요하지 않다, 게임사는 게이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라는 걸 실제로 입증했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게임을 팔아먹지 않아도 게임으로 돈을 긁어모을 수 있는 자기완결적인 BM을 정립해버린 것. 그리고 이건 다른 게임사들도 모방할 수 있는, 실제로 모방한 지 오래인 BM이라는 것이고요.

이게 지금은 일개 게임 산업에 국한된 논의지만 실은 전체 산업에 적용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섬뜩하지요. 예를 들어 스포츠 산업에서는 '팬이 없는 (구기)스포츠는 한갓 공놀이일 뿐'이라는 식의 주장이 정론인 것처럼 떠받들여지고 있는데, 근년에는 야구를 중심으로 이런 논리가 많이 깨지고 있는 상황이라죠. '실제로 야구 산업을 지탱하는 건 팬들이 아니라 기업주와 스폰서의 관후함이다, 사실 팬들의 시청료와 티켓값은 야구인들에게 별 의미가 없다'라는 식의 논리를 이미 팬들끼리도 자주 주고 받고 있습니다. 이는 '참여 그 자체는, 소비자 자체는 의미가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이고. 사실은 이렇게 특수한 BM인 것처럼 말하는 게 어폐가 있겠죠. 대중보다 밥줄이 되어줄 큰손, 기업, 혹은 코어 팬덤이 중요하다는 건 아이돌 산업에서는 무수히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예고요.



이걸 넘어서.. 아예 '팬은 팬으로 교체할 수 있다'는, 보다 상위의 멘털리티와 마케팅 전략를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구축해온 존재가 바로 릅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르브론은 그야말로 팬을 헌신짝처럼 버려온 선수고 디시즌쇼, 리얼월드, 빅3, 수퍼팀 등의 키워드가 그 행보를 증거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르브론의 팬덤은 계속 커져만 갔습니다. 왜냐하면 배신감을 느끼고 이탈한 팬보다 새로이 유입되는 팬이 더 많았으니까. '지금까지의 단골 팬은 더 많은 팬으로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다'라는 것을 몸소 증명한 사람이 바로 릅신이지요. 지금에 와서 NBA에서 대체 불가능했던 존재가 팬덤인지 릅신인지는 명약관화 합니다. 리니지의 BM이 그렇듯이요. 릅신은 리얼월드의 팬들 너희는 이 NBA 씬에서 깔개조차도 아니라고 진짜로 선언했고 실제로 이를 입증했습니다.

이상의 사례들은 무관계하게 독립적으로 발생한 현상들이지만 하나의 방향성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조금 낱말이 뻣뻣해질 것 같습니다만 요즘 식으로 '능력주의적 개인'의 탄생인 거죠. 즉 사회와, 대중과, 시민 공동체와 소통하지 않아도 온전히 독립적으로 살 수 있고 되레 더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개인과 집단과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와 대화하고 교류하고 어울릴 생각이 없다. 하지만 나는 왕따가 아니고 너희가 왕따다. 왜냐하면 내가 너희를 왕따시킬 수 있으니까. 나는 너희를 외면하고 살 수 있지만 너희는 나를 외면하고 살 수 없을 것이다'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커버그의 페이스북도 마찬가지입니다. 페이스북은, SNS는 소통과 교류를 위해 만들어진 플랫폼이지만 정작 저커버그는 페이스북 유저들로부터 해자를 구축하고 완전히 독립적인 왕국을 건설하여 자기만의 제나두 범위에서만 살아갑니다. 그는 페이스북 초기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대중과 교감하려고 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을 통해서 대중들을 자신의 노예로 부렸습니다. 저커버그가 대중의 비위를 맞추는 게 아니라 대중들이 저커버그의 비위를 맞추는 구조가 어느새 만들어진 것입니다. 시민 케인 시절이었다면 저커버그는 로즈버드나 웅얼거리고 있었겠습니다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죠. 되레 현재 로즈버드를 웅얼거리는 쪽은 인스타그램의 노예들입니다.

저커버그가 이걸 구조적으로, 부작위적으로 슬쩍 가랑비에 옷 젖게 만드는 듯한 과정을 통해 실현시켰다면 일런 머스크는 요란을 떨며 그걸 더 명료하게 실현시켰는데 결과적으로는 릅신과 마찬가지로 머스크는 세상을 외면할 수 있어도 세상은 머스크를 외면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실은 루나-테라의 권도형도 이런 걸 해보려고 한 건데 - 연준이고 영란은행이고 일본은행이고 글로벌 매크로 경제고 뭐고 그 모든 것으로부터 독립적인 나만의 루나 생태계를 구축하겠다 - 실패했지만 결국 공유하는 멘털리티는 같은 것입니다. 그런 세상 ㅈㄲ, 대중 ㅈㄲ, 평등 ㅈㄲ, 참여 ㅈㄲ, 민주주의 ㅈㄲ의 마인드다 보니까 돈은 느금마가 대줄 거야 같은 패드립이 나올 수 있는 것이죠.



말하자면 이방인의 시대가 된 것입니다. 뫼르소는 그랬죠.

'그때 한밤의 끝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에게는 영원히 관계없는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는 것이었다.... 나도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내 괴로움을 씻어주고 희망을 안겨 준 것처럼, 나는 이 징후와 별들이 드리운 밤 앞에서 처음으로 [세계의 다정스러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었다. 그처럼 세계가 나와 다름없고 형제 같음을 느끼며 나는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성취되고 내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위하여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증오의 함성을 울리며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즉 위에서 말한 것처럼 '세상이 나를 왕따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왕따시킨다는 것'이 이방인 역시도 공유하는 궁극적인 정서인 건데, 까뮈 시절에는 사형수가 되었을 뫼르소가 현대에는 일런 머스크나 릅신이나 저커버그로 화하여 대중을 모두 들러리로 만들고는 권위를 얻고 카리스마를 획득하여 독재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구경꾼들의 증오의 함성'조차 그네들에게는 네임밸류를 올려주는 뽐뿌질과 별풍선과 레버리지 투자액에 불과할 뿐이고요. 나훈아가 그랬죠 진정한 수퍼스타는 빠와 까를 동시에 미치게 만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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