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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3/02/21 13:13:38수정됨
Name   마아아대
Subject   아버지와의 관계
어떻게 글을 시작해야 하나 모르겠지만, 주섬주섬 써보겠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합니다. 제가 7살쯤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했고, 외가쪽 친척과 사촌이랑 보낸 시간이 더 많을 만큼 아버지와의 관계는 멀기만 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1990년대에 결혼하셨는데, 그 시대의 남자답지 않게 가정 폭력을 저지르지도, 불륜을 저지르지도 않았습니다. 누구랑도 교감하지 않지만 또 누구한테 피해를 주는 성격도 아닙니다. 겉으론 오히려 젠틀하다고 교양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가까이서 지내다 보면 정말 질리는 성격을 가졌습니다. 아버지 성격은 한 마디로 정말 이기적입니다. '살면서 타인에게 선행이란 걸 해본 적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자신밖에 모릅니다. 어머니 말론 10년 결혼 생활동안 집안일이라고는 청소 2번과 설거지 1번 한 게 다라고 얘기하셨을 정도로 남을 위한 마음 씀씀이가 너무 좁습니다.
현재 이혼하고, 아버지는 할머니랑 같이 사는데 할머니가 힘든 몸 이끌고 밥을 차릴 때 거드는 법이 없습니다. 할머니가 말이 많으신 편인데, 할머니가 같은 얘기를 반복하기라도 하면 그렇게 소리를 질러댑니다. 어릴 땐 그게 제법 무서웠는데, 이젠 그 꼴을 보면 처참함과 지겨움을 느낍니다.
그 특유의 냉소 때문에 10분만 얘기하면 누구든 지치게 만드는 재주도 있습니다.
청소년기에 엄마랑 싸우면서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 "너 아빠 닮았다"는 얘기였을 정도로 아버지를 증오했지만, 웃긴 건 아버지와 할머니는 제게 크게 잘못한 점이 없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아버지는 당신의 서툰 방법으로 어떻게든 저랑 관계를 이어가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직업이 있었을 땐 제게 용돈도 챙겨주시고 제가 쉽게 못하는 경험을(예를 들어, 박물관 방문, 유럽 여행) 시켜주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당하시고도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해야 한다고, 명절 때 연락이나 방문을 권하는데 전 솔직히 연락도 버겁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 돌아가시면 후회한다고 연락하라고 재촉하시는데, 솔직히 그런 일이 생겨도 제가 후회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호로 놈은 맞지만, 제가 냉혈한은 아닙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 그리고 자연한테도 연민과 유대감을 느낄 만큼 감수성도 풍부하고, 남한테 공감도 잘하는 성격인데 이상하리만치 아버지에겐 마음이 닫혀 있네요. 욕심도 별로 없어, 남들과 마음이든 뭐든 나누는 걸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아버지한테는 '굳이?', '내가 왜?'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버지는 젊었을 때 벌어놓은 돈으로 20년간 무직 생활을 즐기셨는데, 이제 그 돈도 다 떨어져 혹시나 제게 도움을 요청하면 저는 어떻게 해야할지... 총체적 난국입니다.
저랑 비슷한 경험을 가지신 분들 있나요? 쓴소리도 좋고, 조언도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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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슷한 면이 많네요. 저 자신도 극복하지 못한 입장에서 무슨 조언을 드리겠습니까. 다만 선생님의 질림과 힘듦이 이해가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미워하고 버려도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성인이었던 어머님 자신도 견디지 못한 관계를 어린 아이에 불과했던 선생님이 성숙하게 감싸야한다는 말을 누가 감히 하겠습니까. 아버님과 관계를 맺고 도와드리는 쪽을 택하든, 아버님과 연을 끊든 어느 쪽이든 완전히 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요. 어려운 상황에서 항상 결단을 강요받는 듯한 선생님의 괴로움이 당연하다는 말씀밖에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6
    듣보잡
    복잡하네요. 이건 전문상담사도 쉽게 뭐라 말하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저도 아버지에 대한 호감이 참 없는 사람으로서 위로만 드리고 갑니다.
    1
    골든햄스
    전 보다 더 최악인 형태의 아버지를 뒀는데도 한참을 주위에서 도리를 다하라, 억지 아버지 미화(...)를 하여 고생했습니다. 그렇지만 원래 충, 효는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적인 개념이라고 하네요. 현대에 와서 왜곡된 거죠. 어찌됐든 선생님이 아버지에게 존경을 못느꼈고, 그렇게 어린 나이부터 따로 사셨다면 아버지는 아버지 노릇을 객관적으로 못하신 겁니다.
    7
    고구마별
    이 의견에 한 표 드립니다.
    눈사람
    공감하고 갑니다. 저도 부모님께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데 관계를 완전히 끊지는 못하고 어느 정도 거리만 두고 있는 상태입니다. 인터넷이니까 표현해보는 말이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저를 짓누르는 돌덩이가 없어지는 기분이 들 것 같아요.
    2
    저도 생물학적 아버지와 절연하고 살고있고 연락도 무시하며 살고있는데 세상 편합니다. 후회 절대로 안 할 것 같고요. 그냥 본인 편한대로 사는게 제일 좋습니다.
    2
    자몽에이슬
    가정 파탄을 만든 것만으로도 직접적인 피해 준게 맞습니다.
    1
    하마소
    관계를 맺는다는 게 책임을 지고, 지우는 일이라는 건 뻔한 이야기지요. 그냥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지탱하는데 꽤나 큰 품을 감당해야 하니까. 주어진 정보만으로 지레짐작해 보자면, 아버님은 그런 책임에 대한 인식이나 의중이 몹시 부족한 입장 아니셨을까 싶읍니다. 쉽게 말해 관계를 책임지는 방법도 모르며 의사도 없는 그런. 그래서 역설적으로, 그 어떤 입장에도 서지 않을 수 있기에 그 어떤 타인의 입장에서도 나쁘게 볼 이유가 없었을 거예요. 타인이니까. 모든 입장에 대해 타인일 수 있기에 그저 옳은 듯 보이기만 하는 막말을 성토하듯 ... 더 보기
    관계를 맺는다는 게 책임을 지고, 지우는 일이라는 건 뻔한 이야기지요. 그냥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지탱하는데 꽤나 큰 품을 감당해야 하니까. 주어진 정보만으로 지레짐작해 보자면, 아버님은 그런 책임에 대한 인식이나 의중이 몹시 부족한 입장 아니셨을까 싶읍니다. 쉽게 말해 관계를 책임지는 방법도 모르며 의사도 없는 그런. 그래서 역설적으로, 그 어떤 입장에도 서지 않을 수 있기에 그 어떤 타인의 입장에서도 나쁘게 볼 이유가 없었을 거예요. 타인이니까. 모든 입장에 대해 타인일 수 있기에 그저 옳은 듯 보이기만 하는 막말을 성토하듯 뿜어낼 수 있는 것처럼.

    그리 잘못한 게 없음에도 증오하는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느낍니다. 그저 싫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함을 넘어 아빠로서의,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그 어떤 능동적인 무언가도 하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점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면 '저지른' 잘못이 없다는 말이 틀리진 않겠죠. 그러나 알까요. 그 자체로 잘못인 것을. 능동성을 내던지며 책임을 방기한 잘못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이에게 돌아갈 잘못이겠죠. 냉소는 소속없는 이의 가장 좋은 친구란 말이 생각납니다. 그정도의 냉소가 가정에 있던 아버님께 흘러나왔다면, 이젠 의문이 걷힐 수가 없어지네요. 대체 그 아버님께 가정이란 어떤 존재였는지.

    심하게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다만 선생님께서 스스로에 품는 의구심이 제한된 정보로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전혀 의아할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었읍니다.
    2
    뉴클레오타이드
    나중에 아버지한테 잘하지 못한 것을 혹~시 후회하실 수도 있겠지만 잘해드리기 싫은데 억지로 하면서 아버지가 살아계신 내내 괴로운 것과, 나중에 종종 후회하는 것 중 저는 후자가 선생님께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어찌할 수 없었던 과거에 대한 인간의 후회는 그렇게 절망적인 감정이 아닐 때가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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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내린비수정됨
    저희 아버지도 극도의 이기주의자 셨어요.
    제 꿈(직업) 보다는 어디가서 자랑 할 수 있을만한 직업인지가 더 중요하고..
    제 건강보다 자신의 체면이 훨씬 중요하고..
    따로살면서.. 일손이든 능력이든 제가 필요할때만 연락하는 사람이었어요.
    덕분에 연락 한번도 안하고 지나간 해도 몇해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6년째가 되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잘 할 걸 이라는 생각이 든적이 한번도 없네요.
    많은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시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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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테일면에서 약간 다르지만 큰 줄기는 놀랍게도 똑같군요 가장 고통 많이 받은 엄마가 도리 얘기하는 것 까지... 다만 저는 이혼 즉시 끊어냈고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별 생각이 없네요. 그냥 평상시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처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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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꿀래디에이터
    누군가는 자식 키우면 이해 한다고 하던데
    저는 반대로 아빠가 되어보니 더더욱 이해가 안되더군요
    '아니 이렇게 내 자식이 좋은데, 저 사람은 그렇게 집에 돈을 안갖다 준다고?, 본인이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산다고?'

    기존에 있었던 좋은 기억 조각들 일부 마저 사라져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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