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1/09/09 00:52:15
Name   私律
Subject   환타
콜라냐 사이다냐 이야기가 나와서ㅡ 전 환타파입니다.

어릴 때 부모님께서는 콜라사이다 따위를 거의 안 사주셨습니다. 그 시절도 물론 그게 있긴 했는데, 생각해보면 지금처럼 마음대로 사먹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잔칫날은 되어야 한두잔 맛 봤고, 학교에서 소풍갈 때나 사주셨죠. 소풍날 어머니께서 사이다 환타 서너개를 싸주셔서 가져 갔더니, 그 것도 못 싸온 같은 반 친구 몇이 무척 부러워하던 게 생각납니다.

청량음료ㅡ요즘 잘 안쓰는 말입니다만ㅡ를 마실 수 있던 또 다른 기회는 세째 고모가 오시는 날이었습니다.
세째 고모는 가난 덕분에, 더구나 딸이라서 학교를 거의 못 다니셨던 양반이죠. 그래도 똑똑한 사내에게 시집가서 삶이 좀 나아지나 싶었습니다만.... 고모부는 사업실패 후 달동네의 흔한 술꾼이 되어버렸고 오래 살지도 못 했습니다. 고모는 말 그대로 모든 걸 떠 맡고 살아야 했죠.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고모는 도시락 행상을 하셨습니다. 가게도 없이, 양은도시락에 싼 김밥을 가지고 다니며 파셨죠. 그 때 도시락과 같이 팔던 게 콜라/사이다/환타였습니다. 팔다남은 환타를 저와 누나에게 하나씩 주신거죠. 꼬맹이 시절 고모가 가져온 음료수 중 콜라를 잡자, 그건 팔 거라 안된다고 하시던 게 생각나네요. 가장 안 팔리는 게 환타라 환타만 주셨던 게지요. 그 때는 어린 마음에 콜라를 마시고 싶었는데, 지금은 입맛이 길들여져서인지 환타가 가장 좋습니다.
이렇게 쓰니까 딱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는데, 그건 절대 아니고 그 시절 서민들은 다 그랬던 것 같습니다. 소풍 때 저만 못하게 싸온 친구도 반은 넘었던 것 같으니까요.

고모는 어찌 되셨냐구요?
사람들의 벌이가 나아지면서 도시락을 찾는 사람들도 줄어들었고, 고모도 장사를 접으셨죠. 그 뒤로도 여기저기 일을 계속 다니셨지만, 조카에게 자랑스레 내세울만한 직업은 없었나봅니다.

평생 고생해 달동네에 마련했던 집 한칸이 재개발 덕에 아파트로 된 모양입니다만, 그 집 때문에 자식들에게 서운할 일도 생겼나봅니다.

끝내 백혈병에 걸리셔서 요양병원에 들어가셨죠. 한번 뵙고 용돈을 드리려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면회를 못 하는 사이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코로나 때문에 자식들이 면회를 오지 못하자 버림받은 줄 알고 절망하셨답니다. 간병인들이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오지 않는 자식들을 이해하지 못하셨다죠.
통유리를 사이에 두고 전화를 하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전염 걱정없이 면회할 수 있을텐데... 그 정도 시설도 못 갖추면, 그냥 1층 창문있는 방으로 모셔오고, 자식들은 창 밖에서 전화하면서 면회하면 될텐데 왜 그런 것도 안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환타를 좋아합니다. 고모 때문에.



9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2195 일상/생각신입사원_v2 18 아이캔플라이 21/10/22 3777 12
    12194 일상/생각가정법원에서 바라본 풍경들 6 shadowtaki 21/10/22 4341 28
    12181 일상/생각거시기한 상사 외전 : 대충돌 8 Picard 21/10/18 3222 2
    12180 일상/생각마치츄카町中華 5 向日葵 21/10/18 3913 34
    12170 일상/생각X 같은 상사 vs X 같은 팀원 13 Picard 21/10/15 3883 12
    12165 일상/생각만만한 팀장이 옆팀 꼰대 팀장을 보면서 드는 생각 17 Picard 21/10/13 4707 7
    12164 일상/생각미국 핀테크 스타트업 인터뷰 후기 19 개랑이 21/10/13 4108 5
    12155 일상/생각약간의 일탈과 음주 이야기 2 머랭 21/10/11 3210 15
    12151 일상/생각제가 홍차넷에서(재미로) 해보고 싶은 것들 16 化神 21/10/10 4006 7
    12145 일상/생각공채시대의 종말과 회사에 대한 충성심 18 Picard 21/10/07 4329 2
    12129 일상/생각주4일제를 하면 급여를 깎아야 할까? 19 Picard 21/10/01 4787 2
    12124 일상/생각고백을 받은지 일주일 째인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32 경제학도123 21/09/29 5481 1
    12121 일상/생각문득. 4 하우두유두 21/09/28 2969 18
    12119 일상/생각오징어게임 엄청 인기 많네요 1 이유있는생수 21/09/28 3095 1
    12116 일상/생각집 인테리어하면서 겪은 일. 29 비사금 21/09/27 4424 5
    12114 일상/생각화천대유.. 몰라요.. 37 Picard 21/09/27 4835 1
    12109 일상/생각검단 신도시 장릉 보고 떠오른 일 22 Picard 21/09/23 4486 3
    12101 일상/생각경제적 1%가 되는 길 10 lonely INTJ 21/09/20 4092 5
    12097 일상/생각합리적인 약자 7 거소 21/09/19 4574 27
    12082 일상/생각왜 (나보다)어린애들은 생각없이 사는가? 라떼는말이야 127 흑마법사 21/09/16 5983 4
    12062 일상/생각손님들#2 - 할매 고객님과 자존심을 건 대결 26 Regenbogen 21/09/09 3734 42
    12061 일상/생각CGV에 진상짓을 했던 썰(?) 5 녹차김밥 21/09/09 4030 6
    12057 일상/생각환타 5 私律 21/09/09 3879 9
    12055 일상/생각그동안 홍차넷에서 그린것들 73 흑마법사 21/09/08 3993 27
    12051 일상/생각'난 떡볶이 별로....' 이신분들 계십니까? 50 Groot 21/09/06 4589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