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1/06/06 02:29:15수정됨
Name   쿠팡
Subject   행복 추구를 멈추기
우리 헌법에는 행복 추구권이 있다고 합니다. 국민이라면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길래,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목표로 설정하고 찾아 나섰습니다. 연애도 해보려고 했고, 돈도 많이 벌어보려 했고, 커리어를 위해 달려보기도 했고, 인간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노력도 해보면서, 마치 이러한 것들을 해내면 행복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추구할 수록 점점 행복과 멀어지는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떠한 목표들은 이뤘지만 순간의 행복 뒤에 허무한 기분 뿐이었고, 대부분의 목표들은 이루지 못했다는 상대적 박탈감 속에 불행했었습니다. 행복을 추구하면 할 수록 역설적으로 불행해지는 모순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때 영화 «행복을 찾아서»에서 "헌법에 행복 추구권에 '추구'라는 표현이 있는 것은 행복이 추구할 수 있는 것일 뿐 가질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대사가 떠올랐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행복을 가질 수 없다는 생각에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제 자신을 발견했지요.

그때 삶의 의지를 잃은 채로 넋을 놓고 살다보니 해탈해버린 것이었을까요.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역사와 시대의 흐름 속에서 한없이 작은 개인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더욱 잔혹하고 불행한 시대에 살았지만, 그래도 살아남기는 했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으면서 말이지요.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니, 행복이라는 것은 취약하고 불분명한 가치였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수많은 삶의 고통들 중에 감내할 가치가 있는 고통을 선택하는 것이었지요. 내 삶을 맞바꿀 수 있는 의미있는 목표를 추구한다면, 그것을 추구하는데 수반되는 고통을 감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로서는 개인적인 학문적 관심사를 사회에 실현하는 것이 제 삶을 맞바꿀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뭔가 제가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사회적인 발전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고, 다양한 사람들이 기억해준다면 좋을 것만 같아요. 물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고통들이 있겠지만, 그래도 의미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생각을 이렇게 정리하다 보니, 제 삶을 대하는 방식이 초연해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사람인만큼 일상에서 수십 번씩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고 상대적 박탈감에 울적해질 때도 있지만, 매번 이러한 생각을 하며 삶을 의연하게 바라보고자 노력합니다.



10
  • 행복을 찾아 노력하시는 향후의 과정도 이어서 연재해주셨으면 좋겠네요. 비슷한 고민을 하는 입장에서 궁금합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1912 일상/생각주44시간제 -> 주 40시간제 바뀌던 시절 12 Picard 21/07/22 3918 2
11909 일상/생각납득이 안가잖아.. 납득이.. 8 Picard 21/07/22 3557 1
11907 일상/생각그날은 참 더웠더랬다. 6 Regenbogen 21/07/21 3274 40
11886 일상/생각인적자원(HR)은 비인격적인 표현인가? 34 정중아 21/07/15 5109 3
11882 일상/생각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21 Picard 21/07/14 4147 13
11877 일상/생각회피를 통한 극복 3 lonely INTJ 21/07/13 3270 8
11869 일상/생각공교육+온라인 강의? 32 moqq 21/07/11 4584 1
11867 일상/생각보증기간 만료 14 사이시옷 21/07/10 3694 17
11865 일상/생각귀여운 봉남씨가 없는 세상 35 문학소녀 21/07/09 4224 74
11861 일상/생각이게 연재물이 될거라고는 나도 생각치 못했지 7 Picard 21/07/09 3477 17
11856 일상/생각부정청탁방지법(aka 김영란법) 9 Picard 21/07/08 3193 1
11854 일상/생각갑분 커뮤니티 구상기 11 순수한글닉 21/07/08 3535 0
11850 일상/생각재밌다 재밌어 유 쏘 퍼~니~ 7 Picard 21/07/07 3564 2
11849 일상/생각나는 그 공원에 가지 못한다. 3 Regenbogen 21/07/06 3269 15
11847 일상/생각장마라고 했는데 12 마음아프다 21/07/06 3480 0
11844 일상/생각사내 정치 싸움의 후폭풍 15 Picard 21/07/05 4390 5
11831 일상/생각확진자 급증하네요.. 5 마음아프다 21/06/30 3244 0
11828 일상/생각안티테제 전문 25 순수한글닉 21/06/29 4315 32
11796 일상/생각저는 메리포핀스리턴즈를 보지못하였읍니다 6 매뉴물있뉴 21/06/17 3022 1
11759 일상/생각행복 추구를 멈추기 6 쿠팡 21/06/06 3599 10
11750 일상/생각엄마는 내 찢어진 츄리닝을 보고 우셨다 3 염깨비 21/06/04 4013 29
11735 일상/생각정확하게 이해받고 설명 없는 대화를 하고 싶다는 욕망 11 21/05/30 3854 14
11726 일상/생각에펠탑 마그넷 레고 나눔 이벤트 해봅니다 31 콜라콜라니콜라 21/05/27 3644 5
11719 일상/생각뒷산 새 1년 정리 38 엘에스디 21/05/25 4763 51
11693 일상/생각허비행콕이 마일스 데이비스에게 배운 것 4 ikuk 21/05/20 4510 5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